내가 경험한 것을 말하는 것. 지금은 그것이 나의 의무라고 여겨진다.
늘 많이 아는 사람에겐 적게 아는 사람에게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많이 아는 것도, 많이 가진 것도, 그것을 더 가진이에게 나눠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면 어려울 게 없는 것 같다.
지금의 나에겐 삶과 죽음에 관한 경험과 정보에 있어서는 나눠야 할 게 있는 것 같다. 물론 내 경험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니 일반화할 수 없다.
우선 내가 경험한 말기암환자의 삶은 너무 고통스러워서 사랑하는 누구도 경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디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갖고 실천하며 건강한 음식을 먹고 꾸준히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 사랑도 더 많이 품은 사람이 더 나눠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눌 수 있다면 우리 모두의 정신적인 삶이 더 풍요로울 것 같다.
내가 경험한 말기암은… 한순간에 딸깍하고 죽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몸의 부분 부분이 하나씩 망가져가다 그중 여러 곳이 복합적으로 망가져서 되돌릴 수 없어야 삶이 끝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장이 안 좋은 사람은 신부전증, 심장이 안 좋은 사람을 심부전증, 간이 안 좋은 사람은 간 관련 병명으로 사망 이유란에 기록되는 것이었다. 한 기관이 망가지기까지도 얼마나 자주 응급실을 방문해야 하는데… 복합적으로 망가져야 죽을 수 있다니… 물론 독한 항암 치료를 받거나 여러 새로운 치료를 받다가 빠르게 죽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빨리 죽는 게 나을까? 천천히 죽는 게 나을까? 예전에 같은 병실을 썼던 분이 있었다. 산부인과 의사였는데, 나와 같은 암에 걸렸고, 의사인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방식으로 항암 치료를 받았었다. 그분은 절대 항암 치료를 받지 말라고 마치 유언처럼 내게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독한 항암 치료를 받고 빨리 세상을 떠나는 게 어쩌면 더 나은 선택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공항에 들어가서 게이트 앞에 앉아 체크인을 너무 오래 기다리다 보니 이 삶에 대한 원망이 생긴다. 곧 곧 체크인할 것이라는 방송만 몇번짼지…
내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한 삶의 한 부분은 매우 아이러니한 것 같다. 이것만은 절대 안 된다고…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는데 이건 참기 어려울 것 같다고 여기는 아킬레스건에 문제가 생기고 그것을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살피는 것 같은 게 우리네 삶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나처럼 긴 작별 인사를 싫어하는 이가 긴 작별 인사를 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 말이다. 가난한 건 참을 수 있는데, 외로운 건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의 삶은… 부유한데 매우 외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은. 그래서 인생은 고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많은 깨달은 이들, 존경받아 마땅한 분들의 경우는 ‘이것만은 절대로 안돼’ 같은 룰이나 욕심이 적고 열린 마음과 생각으로 자신이 생각했던 삶이 아니더라도 보다 잘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사람마다 삶과 죽음에 관한 경험과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의 경험과 생각에 대해서 남기는 것이 나의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또… 허덕이며 썼다. 깨닫지 못한 부족한 지금의 나는, 불행하다. 이것만은 절대 안 돼!라고 생각했던 불행한 삶의 여러 콤보 속에 있기 때문에… 조금씩 더 신체의 기능이 망가지는 삶 속에 있기에…
하지만 존경스러운 분들은 늘 감사할 것들을 찾았고, 견딜 수 없는 순간마저도 묵묵히 견뎠다. 그래서 눈을 감고 나도 감사할 것들을 찾아본다. 병원에서 죽고 싶지 않다는 말에 모든 힘겨움을 감수하고도 집에서 나를 간호하는 사랑하는 나의 가족. 새벽 몇 시더라도 내가 부르면 벌떡 일어나서 나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엄마빠… 늘 기도와 연락으로 나에게 에너지를 건네주는 소중한 사람들. 나라는 존재는 얼마나 많은 희생과 감사 속에서 살아있는지… 한데 아무리 노력해도 묵묵히 견디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매일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고 다시 세우고를 반복하지만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는 나.
매일 이것이 내 마지막 의무이길, 숙제이길 바란다. 긴 불편한 반복적인 고통이 견디기 힘들다… 부디 은총과 자비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