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은 대부분 식은땀을 흘리면서 잠을 잔다.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은 잠에 몰입해있다기보단 잠으로 통증을 모른척하려고 하는 편이 어울린다. 그러다가 통증의 한계에 도달하면 흥건한 식은땀 속에서 ‘선생님~ 아이알코돈 주세요.. 어어..!’ 하면서 깬다. 사람마다 자신에게 통하는 마약성 진통제가 있는데, 나의 경우는 모르핀도, 나이플, 타진, 앱스트랄, 듀로제식 등 기타 다른 게 잘 안 통한다. 사실 각각 테스트하는 것도 벅차다. 그렇다고 아이알코돈이 항상 통하는 것도 아니라 힘든거다.
그런 상태로 깼는데, 벌컥벌컥 삼키려 했던 진통제를 못 먹겠다는 느낌이 역겹게 올라왔다. 메스꺼움의 한계에 이른 상황. 걷잡을 수 없이 구역질이 치솟는 이유를 모르는 상황.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상태.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환자에게 주어진 거다. 그저 아는 걸 설명할 수 있는 것 마저도 감사하단 것을 느끼는 요즘인데 모르는 상황이 너무 많다는 것. 정말 설명할 수 없어서 못하는 게 너무 많아졌다. 왜 신은 이런 순간을 만들어 두신 걸까… 철저하게 외로운 순간들…
하반신 마비는… 내가 경험한 최악이었다… 라고 언젠가 말할 수 있을까…? 보는 것에 따라 모든 상황이 찰떡같이 최악이고, 모든 상황이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일단 스스로 대소변을 볼 수 없다는 것의 정신적인 충격이 어마어마하다. 내 몸인데 아무리 힘을 줘도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 엉덩이 밑에 한참을 생수통을 깔고 앉아있었다. 분명 내 피부임이 느껴지는데, 다리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또 화장실을 한번 가려면 십분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 등. 아무리 설명해도… 진짜 느낌은 아마 의사 선생님도 무슨 말인지 모를 것 같다.
그 새벽. 그렇게 미칠 것 같은 약도 못 먹을 것 같은 식은땀의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소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건 매우 안타깝게도… 기저귀를 한 상태인데, 기저귀 밖으로 나온 거다. 수치심.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두 팔이 할 수 있는 힘껏 몸을 질질질 끌고 화장실로 갔다. 내 양손이 두 다리를 끌어올리고 내 바지를 벗겼는데 그 이후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또 그 수많던 어느 새벽 중 하나였다.
그러다 어떻게 돌아온 기억도 없이 침대로 돌아왔다. 한데 바지를 들고 돌아올 수 없었다. 맞은편 침대 아줌마 환자가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화장실에 바지를 벗어두면 안 된다고 . ‘선생니임… 지금 제가 할 수 없어서 그렇게 한 거예요... 여기 여사님께 치워달라고 말씀드릴게요…’ 몸에 있는 힘을 다 끌어올려 말했다. 그 정도 말하면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한데 화장실에서 ‘두 손으로 뭐하고?!’라는 야박한 소리를 듣게 되었다. 네…?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이 너무 힘들면 사고의 영역에 문제가 생기는 걸까…? 자녀에게 세상 다정한 모닝콜을 하던데, 이런 상황은 왜 생기는 걸까? 입원이 길어질수록 아주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한다. 언젠가 그런 걸 글로 풀어낼 수 있을까… 여튼 그런 말에 집중할 시간에 내 두 손으로 할 수 있는 것들 리스트를 작성하는 게 편한 지원은 말을 아낀다.
난생처음 하반신 마비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두려울까… 허리를 세워 똑바로 앉아있을 힘이 없어서 화장실에 앉아 있어도 어딘가 잡을 데가 없으면 허리가 앞뒤로 푹푹 접힌다는 것. 사람들은 자신의 복부에 힘을 줘서 스스로 소변을 볼 수 있다는 것만도 축복이란 걸 알까…? 성인이 되고 스스로 기저귀를 사는 기분이 어떤 건지 알까…?
생각지 못한 일들이 터지고, 그저 누군가 척척박사처럼 내 일을 알아서 해주는 일 같은 건 없었다. 내 몫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눈물을 닦고 마음을 바로 세워야 한다. 용기를 내야 한다. 정신을 차릴 수 있는 순간이 되면, 상황을 직시하고, 할 수 있는 선택들을 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겨야 하는 것이다. 차근차근. 침착하게. 어른스럽게.
한 유능하고 친절한 천사는 내게 의료기 상사에서 휠체어 상담을 받는 것을 제안했다. 주저앉아 울고 있을 시간에 의료기 상사를 방문해서 어떤 게 더 안전하고 가성비 좋은 휠체어인지 살피는게 낫다. 일정 비용을 내면 매달 휠체어를 빌릴 수 있다. 비싼 돈내고 렌트한 휠체어는 확실히 부드럽고 가볍고 편하다. 내가 모르던 세상이 너무 많다.
누군가에게 내 삶을 의존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휠체어를 이끌어가려면 팔 근육을 키워야 한다. 다리 근육도. 언젠가 내가 다시 걸을 수 있으려면 지금 다리를 움직여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물론 지금 낙상의 위험이 너무 커서 무엇을 잡고서라도 걷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보통 낙상으로 인한 사고로 할머니들이 운동 능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치매가 오거나 일찍 생을 마감하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조심조심 그러나 단호하게 삶을 이끌어가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 예상치 못하게 마주하는 수많은 난관 앞에 선 분들을 응원합니다. 어쩜… 아무도 모를 거예요. 당신 상황이나 기분 같은 거… 하지만, 나 알아요. 그리고 I’m on your side.
이 와중에 제주도에서 직접 농사지으신 귀한 귤 보내주셔서 감사해요. 저희 집 주소 어떻게 알게 되셨고 어떤 인연으로 어떻게 보내주셨는지 잘 몰라요. 감사히 잘 먹었어요. 여기 계신 분들 다 함께 먹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 다음엔 마음만 받을게요~ 오늘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