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벗과 통화를 했다. 통화를 하게 되면 나의 우울한 상황을 이야기해야 하고, 대화를 나누면 기력이 많이 소모되어 피했었다. 한데 오늘 문득 친구의 카톡에 그냥 통화 버튼을 눌렀다. 대화의 말미에 ‘너의 하루가 쨍하게 즐겁길 바란다’는 나의 말에, ‘우린 지금 뭘 해야 즐거울까…?’라는 고민에 가 닿았다. 우리의 결론은 사랑을 하는 것. 나도 모르게 후회들이 마음 밖으로 나왔다.
“박사과정 하려고 왜 그렇게 애썼을까…?
그냥 연애할걸… 왜 미루고 미뤘지?
지금이라면 공부 그딴 거 접어두고 연애할 것 같아. 돌아보니… 사랑한 기억밖에 남는 게 없는 것 같아.”
예전 같았으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 것 같은 말인데, 오랜 벗과의 대화에서 술술 나왔다.
“찬구야, 그런데 나 뭐 좋아했었어?!
나… 생각이 잘 안나.”
“내가 기억하는 너는…
특이한 옷 입는 거.
다른 사람들 이야기 들어주고 상담하는 거.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거.
노트 예쁘게 정리하는 거.
필기구 사는 거.
다른 사람들 도와주는 거.
사람 사귀는 거.
좋아했고 잘하는 거 같아.”
내가 잊어가는 나를, 벗이 기억해주었다.
친구야,
나처럼 낯선 말기암환자가 되기 전에, 나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게 되기 전에, 나처럼 아파서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해도 기력이 없어 못하는 날이 오기 전에, 너의 삶을 매 순간순간 열렬히 사랑하길 바란다.
너를 사랑하고 너의 삶을 축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