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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Haru Jul 18. 2022

우울 : 접근 금지

괜찮다. 행복한 날이다.

피곤이 쌓였나 보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유난히 어려웠다.

억지로 아침 알바를 끝내고, 할 일을 다 미뤄두고 무조건 잤다.

청소도 안 하고, 파란색 일색인 주식 창도 안 보고, 빌려와 읽지 않고 쌓아둔 책도 외면하고 잠만 잤다. 

오전 11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침의 고단함의 기억은 사라지고 또 살만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짧은 머리가 어색하다. 얼굴 옆으로 흐르는 머리카락이 불편해서 늘 꽁지라도 묶일 정도를 고수하던 나로선 획기적인 일이다. 어두운 머리 색깔도 조금 밝게 했다. 나는 미용실을 잘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다. 긴 시간이 지루하다는 것과 과한 비용이 너무 아깝다는 것은 허울 좋은 핑계일 뿐이다. 거울로 내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왠지 불편하다. 고된 인생이, 돌보지 않은 내 모습을 직면하는 것이 싫다. 초라해 마지않는 저 모습은 내가 대신 대충 산 것 같은 마음에 부끄럽기도 하고 측은함에 씁쓸해지는 이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다. 

그래서 오늘의 이 짧아진 머리가 마음에 쏙 든다. 활기가 더해진 얼굴이 보기 좋다고 생각을 한다. 얼굴(살을 빼고 피부를 깨끗하게 하고)을 좀 바꿔야 할 것 같지만, 나름의 성과다.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앉아 있다.

눈치가 보여서라고 생각은 해 본 적은 없지만, 다른 사람들도 사용해야 하고 업주의 입장도 고려해서 혼자일 때는 4인석에 앉지 않는 편이다. 오늘은 마침 긴 테이블과 2인석에 만석이다. 본의 아니게,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민폐인 듯 앉아 있다. 마무리 못한 글들도 정리한다. 칼로리 생각 안 하고 달고나 커피와 생크림이 올라간 와플을 주문했다. 달고 달고 달다. 부드러운 와플이 꽤 취향인 듯하다. 좋다. 이 이렇게 부드럽기도 하구나. 부드러운 와플이 꽤 취향인 듯하다. 좋네. 옆 테이블에 앉은 젊은 연인의 모습도,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웃음소리도 평범해 보인다.  시간은 저들과 함께 흘러가는구나.


 박노해 시인의 시집을 빌려가려고 한다. 오랜만에 시집 몇 권을 물색해 보련다. 시를 좋아한다. 함축된 언어로 많은 감성을 담고 있는 시를 나는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생각해서 욕심내 본 적도 있었다. 나는 참 하고 싶었던 것이 많은 사람이었구나. 그런 자질들도 꽤 있는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나 보다. 내 사주에 말과 글재주 두 가지는 타고났다는데, 도대체 너희들 어디에 있는 거니.      


교사 충원은 없지만 주방 조리사 일은 해주면 좋겠다고 예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좋다. 친정아빠에게 말할 직장(아마 보육교사라고 해야겠지- 살아보니, 모든 것에 솔직할 필요도 없더라)이 생기고, 의료보험을 해결할 수도 있다. 

책 선물의 배송 알림 톡이 왔다. 커피 마실 수 있냐는 연락도 받았다. 나 역시 그들과 함께 같은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 나는 사소한 아낌과 챙김을 알고, 일터에서 내미는 약간의 과자에도 하루가 기쁜 사람이다. 곤란해하는 사람을 도울 줄도 알고, 내가 받은 호의에 감사를 표할 줄도 아는 사람이다.

여전히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 위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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