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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Haru Jul 31. 2022

10분만에 에어컨은 사면서, 남편의 양말은 못사는 마음


에어컨을 사는데 10분이 걸렸다. 고작 10분이다.

결정 장애라는 말을 질리도록 많이 들으며 살았다. 내가 쇼핑을 한다고 하면, 남편과 아이는 제발 뭐라도 사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생각이 많은 나의 기질은 쇼핑에서도 발휘된다.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내  하나 사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니 가정의 공용 물건을 구입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휴지 하나, 세제 하는 사는 것도 두께 외 향을 고민하느라 일주일 내내 쇼핑을 미뤄두며 살았다. 결국 기다리다가 지친 남편의 “내가 살까”라는 말에 떠넘기듯이 미루면 고민은 종결되었다. 그는 자신의 선택에 자신감이 넘쳤다. 심지어 냉장고를 사러 가서도 판매원보다 자신이 적게 안다고 생각하지는 않기에 그들의 말이 성가신 참견, 지나친 영업마인드에 불쾌감을 드러내곤 했다. (실제로 제품에 대해 충분한 시장조사를 통한 논리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그랬던 내가 상당한 돈을 지불해야 하는 가전을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구입했다.

내가 생각한 예산을 말하고, 그에 해당되는 제품을 소개받고 그중에서 고르면 끝.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었다. 선택이 폭이 넓지도 않았다. 구입 가능한 가격의 범위가 협소한 탓에 선택의 폭이 좁은 것도 한 몫했다. 내가 이렇게 짧은 시간에 에어컨을 구입했다고 하니, 친구는 “상대의 평가에서 자유로워져서”라는 말을 했다. 나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는데, 그 말을 듣고 내가 정말 그래서 타인의 평가를 의식해서 결정 장애를 가지고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나는 남편의 양말 하나, 속옷 한 장도 구입해 본 적이 없다. 자신의 기호가 명확한 남편은 본인의 물건은 직접 구입하는 것을 선호했다. 세심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들이 있었기에, 뭐든 대충 고르고 특별히 취향이랄 것도 없는 나는, 괜히 그를 의식했던 것 같다. 내가 고른 것은 이상하게 늘 무언가 부족하거나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나는 세제가 빨래를 깨끗하게 하는 용도로 대중적인 물건을 구입할 뿐인데 남편은 향에 대한 컴플레인은 거는 고객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주도적으로 구입한 물건은 2% 부족한 평가를 받는 일이 잦았고 그런 시간들이 반복되다 보니 나도 남편이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편했다. 남편이 하는 것이 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직접 구입한 후에는) 적어도 나에게 가타부타 말이 없었기에 나는 그것만으로 내 하루가 평온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어쩌면 그에겐 의도 없는 일상의 대화였을지 모를 그 말들이, 나에겐 평가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 평가가 나를 재단하는 말로 들리면서 나는 숨기 시작했다.


취향이 다른 부부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 더 잘하는 사람이 그 역할을 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더 좋아하거나, 덜 싫어하거나를 따져서 역할 구분을 하며 살기도 한다. 무조건 동의해서가 아니라, 적당 혹은 참을만해서 묵인하고 넘어가다. 더 예민한 사람의 취향에 맞춰 살아간다. 나 역시 이렇게 살 줄 알았다. 우리의 취향이 찰떡이라 아무 갈등이나 다툼 없이 살거라 기대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차이들을 대화와 합의,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근거로 조율하는 과정을 함께하면서 살아가는 줄 알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를 고민하다가도, 어쩌면 인생은 앞의 글처럼 정리되지 않은 일들이 더 많은 거란 적당한 체념으로 생각을 덮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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