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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스

by Sunyu

모험가나 여행가들에겐 콧웃음 칠 일이겠지만

나같이 심약한 초보자에게 테러의 위험이 있는 곳으로 떠나는 것은 매우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세상의 기대와 반대되는 선택을 한다는 게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했고

이제야 일을 바로잡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죽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결코 동쪽으로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이나 나는 절망적이었다


우리는 언뜻 생명보다 중요한 것을 떠올리기 어렵다

자연스럽게 인간의 존엄성은 생명과 관련되어 있으며

생명은 마땅히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나 역시 목숨은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것으로 여겼었다


하지만 내가 죽음을 각오했다면 그 말은 곧

내 생명보다 중요한 무엇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게 무엇인지는 짐작할 수 없었지만 분명 인간에게

목숨보다 중요한 무언가 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나는 무엇보다 간절히 그것을 알고자 했었고

내 선택이 거기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일이기를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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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을 향해 갈수록 군부대와 경찰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카르스에 와서는 최고에 달해 매 한, 두 블럭마다 경찰차가 순찰을 돌고 있었고

도시 위쪽에는 커다란 군부대도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작은 도시에 그렇게 많은 경찰과 군인이 있다는 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다음날 이그디어 라는 곳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오토갈(버스터미널)을 찾았으나

때마침 라마단 기간의 축제일과 맞물려 버스가 운행하지 않아 3일간 머물러야 했다

이튿날 도시를 돌아보던 중에는 쑤우밍이라는 한 중국인 여행자를 만났다


이집트에서부터 러시아까지 여행 중인 그는

내가 가야 하는 방향에서부터 거꾸로 오고 있었는데

덕분에 내 루트에 대해 많은 정보와 충고를 들을 수 있었다

나의 원래 계획은 이그디어를 거쳐 아라라트로 가는 것이었으나

이그디어는 그저 지방의 소도시이고 아라라트로 가기 위해서는

도구베이야지라는 지역으로 가야 한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여행 전에 출력한 구글맵에는 나와 있지 않은 지역이어서

하마터면 엉뚱한 곳으로 갈 뻔했던 것이다

게다가 꽤 노련한 여행자인 그는 카르스의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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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스는 깊은 아픔을 가진 도시였다

많은 전쟁으로 인해 한때는 러시아의, 또 한때는 아르메니아의 땅이었고

소수민족인 쿠르드족과 터키 정부 간의 갈등도 끊이지 않는 지역이었다


특히 아르메니아와의 전쟁이 치열했다고 한다

전쟁에 지친 두 나라는 평화를 약속했으나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카르스의 남쪽 산에는 터키와 아르메니아의 화해를 상징하는 석상이

아직 미완성인 채로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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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우밍과 함께 다니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간만에 말벗이 생겼기도 했고 그는 맛집을 찾아내는 데도 재주가 있어서

늘 간단하게 식사를 때우곤 했던 나에게 여러 가지 터키 음식들을 맛볼 수 있게 해주었다


특히 그를 통해 알게 된 '차이'라고 하는 차는 이곳 사람들이 습관처럼 마시는 음료인데

홍차와 보리차를 섞은듯한 음료에 각설탕을 마구 넣어 휘저어 마시곤 한다

쑤우밍은 이미 익숙한 듯 어딜 가든 차이가 담긴 보온통을 찾아내 내가 마실 것도 함께 가져다주곤 했다


그는 상해에 사는 전기 엔지니어로

오랜만에 휴직을 하고 아내와 아이에게 양애를 구한 후 여행을 시작했다고 했다

[ 가족과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나의 말에

자기도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자신의 루트가 조금 위험했고 돈도 충분하지 않았다고 했다


가족을 남겨두고 어떻게 여행할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같이 위험한 지역에 와있는 처지에 누구를 나무랄 것도 아니었다


3일째 되는 날 아침 쑤우밍의 숙소로 찾아가 떠난다는 인사를 하고

그가 알려준 대로 도구베이야지를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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