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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A Mar 27. 2024

21살 유학생 여자가 영국에서 노숙한 썰 푼다

#8 유학생들의 Off The Record

[영국 공항에서 쫓겨나고 노숙까지... 에 이어서 마지막]



항공편 취소에 대한 아무런 안내가 없었지만

우린 했다고 배째 라나오는 KLM 항공사에 말문이 턱 막혔다.


유능하신 하나투어 여행사 직원분의 도움으로 한국행 좌석을 다시 한번 예매할 수 있었지만,

너무나도 당연하게 환불될 줄 알았던 KLM 항공편이 또다시 신경을 긁기 시작했다.


모처럼의 친구가 만들어준 핫케이크로 시작한 아침이 엉망진창이 되는 기분이었다.


계속 우울해하는 나를 계속 먹이신.. 친구..


어쨌든,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태도에 나보다도 화가 나신 여행사 담당자분께서 전쟁을 선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필코 환불을 받아내고 보상까지 뜯어낼 거라고!


든든한 내 편이 생긴 건 좋았지만 당시 이미 몸과 마음이 지친 저자는

빨리 내 나라, 내 고국, 한국 땅을 밟기라도 했으면!...이라는 마음뿐이었다.


친구와 함께 지내는 것은 큰 의지가 되었지만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새로 예매한 항공편은 친구가 한국으로 떠나는 다음날 비행기였고, 즉 친구의 집 계약도 오늘이면 끝이다.


앞서 말했지만, 당시 코로나 대혼돈 시대로 호텔의 숙박이 일시적으로 막힌 상태였다

2배의 페이를 지불한다고 해도 거절당하기 일쑤였고, 이미 날이 서버린 아시아인에 대한 인식으로 에어비앤비조차 구할 수 없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건 런던 공항 노숙이었다.




사실 노숙이라고 해도 거창하게 신문지를 깔고 잔다던지 그런 느낌은 아니지만,

일정한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해서 완전히 눕는 것은 아니지만 편안하게 기대어 잘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친구와 마지막 휴식을 보내며 공항 노숙 전 심신과 몸의 안정을 취하 기했다

당시에 달고나 커피가 유행하고 있었고, 힘든 상황에서도 요즘 트렌드에 뒤쳐지지는 말자며 만들어먹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만드는 게 맞는 거야를 서로 수십 번 물어가면서 만들었던 달고나 커피


친구와 노닥거리다 보니 이제는 런던 공항으로 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비닐장갑, 알코올 소독제, 여분의 마스크 등등 위생에 신중에 신중을 가했다.


또한, 공항 안이라 안전문제가 생길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였으나 당시 아시아인들에 대해 너무나도 험악한 분위기였고 두려웠기에 얇은 담요를 히잡처럼 쓰고 다녔다. (아시아인인걸 들켜선 안돼..)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비행기였기에 이 악물고 타야 한다라는 생각뿐이었고

저자의 만반의 준비가 유난스럽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 당시 나는 정말 하수였다.


방호복을 구비해서 게이트를 지날 때마다 갈아입는 사람,
신발에 비닐을 칭칭 감아서 바스락거리며 걷는 사람,
옆에 다가오지 못하게 우산으로 거리를 재는 사람 등등

정말 다양한 자신들만의 대응법을 가지고 나왔다.


공항이 넓다 보니 앉아있을 곳도 많을 거 같지만 막상 노숙을 하려고 자리를 찾아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화장실과 마트가 가까운 자리는 이미 진을 쳐둔 사람들이 있었고 약간의 커뮤니티가 형성돼서 다들 서로서로 짐을 봐주고 있었다.


차마 그 무리에 끼자니 저자는 너무나도 고독한 늑대 포지션이었고 마트에서 약간의 Meal deal (main, drink, snack으로 구성된 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프로모션 상품)과 물을 조금 더 구비해 두었고

운이 좋게도 콘센트가 있는 인포 데스크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점점 건물이 어둑해지고 사람들이 슬슬 빠지기 시작하자 누울 자리를 만드는 사람부터

콘센트 자리의 치열한 경쟁과 정수기 앞에 줄을 서는 사람들까지 생존을 위한 치열한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는 기분이었다.


원래도 잠자리를 가리거니와 안전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곳에서 잠에 들키란 쉽지 않았다

결국 뜬 눈으로 밤을 꼬박 새웠고 드디어 Boarding Board에 나의 고국, 대한민국이 올라왔다.




빨리 몸만 비행기에 싣자라는 마음으로 먹은 것들을 치우고 짐을 챙기고 다시 마스크를 고쳐 썼다

정부 입국 제한 기준 마지막 날이었으므로 게이트는 이미 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세상에 영국에 이렇게나 많은 한인들이 있었다니,

한국 공항인 줄 알법한 풍경이었다.


그들 중에서도 나는 가장 꼬질꼬질한 한국인이었던 거 같다.

나 공항에서 노숙했어요!라는 패션과 짐을 가지고 있어서 인지 (코로나 때문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내 옆에는 사람들이 다가오지 않았다.


조금 더 기다리자 이제 탑승구에서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이제 남은 건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열이 나지 않는 것...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한국 입국 시 정부 기준에서 열이 높은 사람은 바로 귀가할 수 없었다.
열이 떨어지거나, 코로나 음성 판정 전까지 정해진 숙소로 이동하여 대기와 검사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 절차가 생각보다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말이 돌았었고

비행시간 동안 컨디션을 관리하고 최대한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해야 했다.


코로나로 인해 기내식이 제공되지 않았고 

간단하게 입에 털어 넣을 수 있는 견과류 위주의 식품이 제공되었었다.


나는 마스크를 절대 벗지 않겠다는 집념으로 15시간의 비행동안 음식도 물도 먹지 않았다

밤을 새운 탓인지 계속 잠이 왔다.


잠만 늘어지게 자다 보니 어느덧 나를 깨우는 기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몰라 머리를 짚어보았으나 열은 나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심사장으로 발을 돌렸으나 말 그대로 으악! 인 줄이 눈앞에 펼쳐졌다.


입국 심사에만 2시간 넘게 있었던 것 같다니 저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을 보아라.


예상치 못한 대기 줄에 갇혀 언제쯤 집에 갈 수 있을까만 속으로 외치길 수십 번,

결국 저자의 차례가 왔고 열도 나지 않았기에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입국 심사 끝나고 짐까지 찾았으니 이제 집에 가셨겠네요?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코로나 사태 때의 심각성을 잊어버린 것이 틀림없다.


해외 입국자들은 각자의 지역별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예를 들어 서울, 부산, 경주행 버스가 입구에서 상시 대기하며 입국자들을 태워갔다.


버스 직행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미쳐 시로부터 버스를 지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한국으로 입국한 (그 코로나 시대 때의) 중국인들과 함께 기차역으로 향해야 했다.


그리고 알고 있겠지만, 저자가 좀 워낙 스펙터클하지 않을까

저자도 버스를 지원받지 못한 시에 사는 시민이었다.


그 시기에 중국인 분들과(짐이 정말 많음, 짐 옮긴 카트 정리 안 함, 버스 줄도 안섬) 버스로 이동을 해서

일반 승객들과 분류된 기차 칸에 타고 간다는 게 정말 끔찍이도 싫었다.


*특정 인종을 혐오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때는 너무나도 예민한 시기 었기 때문에 함께 이동하는 모든 사람들이 일단 개 화나있었습니다.


그렇게 불편한 이동을 건너고 또 건너 공복 상태 20시간, 드디어 마중 나온 부모님(사전에 입국자 보호자들도 검사를 받습니다)을 극적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위험성으로 인해 부모님이 저자를 비닐로 감쌌다

소독제로 거의 샤워도 했던 거 같다.


코로나 지원 생필품도 받을 수 있었다


유학을 준비하면서 단 한 번도 예상치 못한 경험이라 지금은 어이없어하면서 글을 쓰지만,

3편에 걸친 이 글이 유학을 준비하는 당신에게, 그리고 누구에게든 돌발적인 상황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인지할 수 있는 에피소드로 남았으면 좋겠다.


언제 인생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혐오를 당하고, 당일에 비행기를 취소당하며, 공항에서 노숙하까지 하는 경험을 해볼 수 있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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