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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A Apr 04. 2024

영국 유학 첫 썸남은 나사(NASA)를 다니고 있었다

#9 유학생들의 Off The Record

바야흐로 저자가 유학생으로서 처음 영국 땅을 밟았을 때다,


신입생을 환대해 주는 한국 대학과 마찬가지로 영국도 신입생(Fresher)들을 위한 Fresher's week이 있다.


Fresher's week가 되면 학과별로 따로 펍을 빌려 모임을 하는 곳도 있고, 해당 동네나 자체로 기획된 펍 순례길 챌린지, 티 타임, 게다가 동아리 모집도 한 창이며, 무엇보다 학교와 학생 유니언 (Union)에서 주관하는 파티가 정말 많다.


이런 만남의 파티를 열어주는 것은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한 것도 있지만, 재학생들과의 자연스러운 만남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당시 나는 학교에서 오후에 운영하는 tea time에 참석해 그곳에서 여러 나라 친구들을 만들었다.

(*티타임이라니 과연 영국이라는 생각이 드시나요)


그리고 그곳에서 친해진 화끈한 스페인 친구 Noor, 해리포터 광팬인 Ignasi 그리고 키 190의 미국인 친구 John을 만났다.


이그나지(Ignasi)를 제외하고는 모두 신입생(Fresher)였고, 우리는 첫 대학생활이라는 명목 아래 온 클럽과 펍을 도장깨기하러 다녔다.


여동생이 있는 두 든든한 오빠들 덕분에 매번 챙김 받으며 거하게 취해있었던 거 같다.


우리의 루틴은 단순했다.


우선, 전날 저녁에 클럽이나 펍을 간다
-> 아침까지 잔다
-> 오후에 다 같이 놀(Noor) 집에서 요리 쟤료를 사들고 가서 밥을 해 먹는다
-> 이그나지(Ignasi)가 골라온 영어 자막 영화를 본다
->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고 나가자고 하면서 저녁 산책을 하거나 혹은 첫 순서로 돌아간다


미리 이야기하지만 저자의 촉은 생각보다 매우 구리다.

뭔가 방향을 항상 반대로 잡는다, 이상하게도 말이다.


저자는 당연히 두 남정네들이 놀(Noor)을 좋아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누가 봐도 매력적이고 귀엽고 또 사랑스럽기까지 한 내 친구를 누가 싫어할까라고 생각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펍에서 잠깐 나와 바람 쐬는 도중 불쑥 물어봤다,



나: 그래서 존(John)이야 이그나지(Ignasi)야, 빨리 말해.

그러자 놀(Noor)은 까르르 웃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N: 둘 다 내 취향도 아닐뿐더러 뭐라는 거야? 너야 말로 존(John) 마음 언제까지 모른 체 할 거야?


나: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거기서 왜 나와?

놀(Noor)은 Come on..이라는 표정으로 턱짓했다.


N: 존(John)이 왜 매번 우리랑 같이 논다고 생각해? 그것도 저 공돌이가? 매번 따라오잖아 너 보려고!

그녀가 가리킨 곳엔 해맑게 웃으며 내 이름을 부르는 키 190의 미국인, 존(John)이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내 허리를 쿡 찌르며 눈을 찡긋해 보이고선 놀(Noor)은 펍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고개를 위로 치켜들어야지만 눈높이가 맞는 그를 올려다보며 왠지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J: 왜 안 들어와? 벌써 집에 가려고?

친구가 아니라 이성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는 걸 알고 나니 전처럼 편하게 대하기가 어려워졌다.


나: 피곤해서 먼저 집에 가려고

괜스레 쀼루퉁한 표정이 지어졌다.


J: 그래? 데려다줄게 어차피 너 내 옆 기숙사잖아


나: ... 그러던지



매번 걸쭉하게 취해서 깔깔거리면서 돌아가던 길이 이상하게 선명하고, 또 왜인지 모르게 간질간질했다,

기숙사 안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괜히 의식하는 내 모습이 어색했다.


그 후로 다 같이 놀기도 했지만, 둘이서만 기숙사 옆 산책로에서 걷기도 하고, 같이 식료품 사러 마트에 가기도 하고, 시시콜콜한 전화를 하기도 했다.


밤늦게 놀다 오는 날이면, 존(John)은 기숙사 앞까지 나와 안전귀가를 확인해 줬다.




그러다 하루는 존(John)이 새로 산 비디오게임을 같이하자며, 그의 기숙사 공동 구역(Common Room)을 이용하기로 했다.

*(커먼룸은 기숙사에서 공용으로 사용하는 공간으로 다 같이 티브이를 보거나, 밥을 먹거나, 사실 주로 술 마실 때 제일 많이 쓰이는 공간이다.)


한창 게임을 언박싱하고 플레이하고 있는데, 부엌에서 거하게 취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깨지는 소리가 났다.

자칫 위험한 상황이 생길까 걱정이 된 우리는 일단 방으로 잠깐 대피했다.


아니나 다를까 밖은 고함과 시끌벅적한 소리로 금방 가득 찼고,

불안해하는 나를 달래며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디오 게임들을 전부 플레이해도 좋다고 말했다.



나: 하하하! 그게 뭐야

불안하던 마음이 쏙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J: 원한다면 내가 신기록 세우는 중인 젤다도 플레이해도 좋아!.. 이건 정말 굉장한 거라고?



다시 한 창 방 안에서 게임을 하다 문득 존(John)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동안은 존은 게임을 좋아하는 공돌이 정도로만 알고 있었으니까

그의 유년시절,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나게 된 이야기, 게임을 좋아하게 된 계기 등등 시시콜콜하지만 존(John)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나: 그래서, 너는 졸업하면 게임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거야?

게임에 열중하며 그가 중얼거렸다


J: 뭐든 우주랑만 관련 없으면 괜찮을 거 같은데

나는 티브이 모니터를 가리며 실룩였다


나: 갑자기 우주는 왜? 나사(NASA) 같은 데서 업무 제안 오면 바로 수락할 거 면서!

방해에도 골인지점에 들어간 그가 말했다


J: 이미 나사(NASA)에서 일하고 있는 걸?


나: 뭐라고?



알고 보니, 존(John)의 부모님은 두 분 다 나사(NASA)에 근무하시는 사내 커플이셨고, 존은 청소년기 때부터 나사에서 제공하는 십 대, 청년 인턴쉽 등 종종 부모님의 업무를 보조하며 방학마다 미국으로 돌아가서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 그는 성실한 나사(NASA)인으로 자라왔던 것이었다.



나: 아니 잠깐만 그럼 이미 너는 꿈의 직장이 이미 보장됐는데, 왜 영국까지 왔어!


J: 말했잖아, 부모님과 다르게 나는 우주에 관심 없다고 오히려 나는 픽셀(Pixel)들이 더 좋아



어안이 벙벙했다.

내 영국 첫 썸남이, 그것도 영국에서 만난 키 190의 미국인이 나사(NASA)에서 일하기 싫어서 영국까지 왔다니.



나: 기만자. 꺽다리. 재수 없어


J: 너무하네 그래도 부모님은 나사(NASA)에 뼈를 묻으실 거 같으니, 나정도는 빠져도 되지 않을까?


나: 그래도 재수 없어



학비를 아르바이트로 벌었다더니.. 나사(NASA) 근무를 아르바이트라고 분류해야 하는 건가

어쩐지 무논리 우주공상 이야기하는 이그나지(Ignasi)를 너무 한심하게 쳐다본다고 했어...


게임에 한창을 몰두하며 수다를 떨다 보니 시끌벅적했던 밖은 잠잠해졌고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존(John)은 기숙사로 날 데려다주겠다 말했고, 우리는 밤공기로 축축해진 잔디 위를 걸었다.



나: 아까 우주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사실 나는 우주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라 그냥 빛나는 건 별이고 움직이면 비행기겠지

하늘을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J: 사실 그것만 알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물론 스스로 빛을 내는 별과 반사로 빛을 내는 행성이 있긴 해


나: 그럼 반짝반짝 작은 별 노래도 버전이 2개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J: 하하하.. 넌 참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말을 하는구나

존(John)은 내 말이 재미나다는 듯 기분 좋게 웃었다. 난 으쓱하며 대답했다.


나: 내가 한 매력 하긴 하지


J: 맞아 넌 스스로 빛나는 태양 같아...

잠깐의 침묵이 있고 그가 말했다,



J: 그리고 나는 주변을 도는 행성이고.




예상치 못한 대답에 뒤를 돌아보니 머쓱하게 웃고 있는 그가 보였다


방금 그게 고백 같은 거였던 걸까.


그때는 영어가 서툴어서였던 건지, 내 마음을 잘 몰라서였던 건지는 몰라도 대답으로 방긋 웃었다.


아마 그날 밤은 둘 단에게 밝은 밤이라 잠들 수 없지 않았을까.



같이 갔던 공연





그 후로도 시간을 같이 보내고, 다 같이 놀러 다니고 했지만, 나에게 존(John)은 한결같이 좋은 친구이자

오빠 같은 사람이었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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