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시강으로 합격?
2월 중순, SCITT 동료 한 명이 취업했다는 소식에 위기감이 엄습했다. 언니의 투병 소식과 여전히 중환자실에 있는 언니의 상태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내게 큰 자극이었다. 망치로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어 곧바로 이력서, 자기소개서, 커버레터 작성에 돌입했다. 특히 자기소개서 (personal statement)는 학교에 맞춰 내용을 수정해야 하므로 기본 틀을 먼저 만들어 놓았다. 동료들과 멘토, SCITT 담당자의 피드백을 받아 수정하며 완성도를 높이려고 했다.
보통 3월부터 5월에 교사 구직 광고가 많이 나온다고 했고 마침 내가 실습 중인 학교가 속한 트러스트에서 교사 모집 공고가 올라와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과정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지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더 놀랍게도 바로 다음 주 화요일에 인터뷰를 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5학년 Reading 수업을 준비해 오라고 해서 멘토인 피비와 교장 레이첼의 도움으로 수업 자료도 정하고 Nearpod로 수업 준비를 했다.
인터뷰는 내가 실습하는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에서 했는데 먼저 시강을 했고 이후에 인터뷰를 했다. 시강은 보통 2-30분 정도 준비하라고 하는데 내 수업에 들어온 면접관이 5분 정도 듣다가 급한 일이 있다고 나가서 시강은 예상치 못하게 짧게 끝났다. 수업도 안 들을 거면 왜 불렀지 싶어 기분이 많이 상했는데 오후에 한 인터뷰는 40분 넘게 진행됐다. 면접관들 (오전에 내 수업에 들어온 면접관과 또 다른 한분이 있었는데 둘 다 트러스트에 속한 학교 교장선생님들이었다)은 다양한 질문을 했다. 왜 선생님이 되려고 하는지, safeguarding (아동 보호) 어떤 식으로 다룰 건지, 좋은 수업은 어떤 모습인지, 내가 잘 못했던 수업을 말해보고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학교 수업에 technology 쓰는 거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른 교사들과 함께 일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는지, 부모님 중에 소리 지르거나 무례한 부모님이 있다면 어떻게 대처할 건지 등 여러 질문들을 했고 솔직하게 답변하려고 노력했다.
인터뷰를 마무리 하면서 그 면접관들이 내게 넌 석사 학위도 있고 한데 교사되면 석사 학위가 있다고 돈을 더 받는게 아닌데 이 돈으로도 일할 수 있냐고 해서 당연히 괜찮다고 했다. 왜 이런 얘기를 할까 당시에는 의아했는데 아마도 영국은 교사의 급여체계가 있고 월급은 근무 기간에 따라 달라진다. 대체로 석사, 박사학위자들이 초등학교 교사로 지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내가 이런 급여로도 불평을 갖지 않고 일할 수 있는지, 그리고 초임 교사 기간을 잘 버틸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 묻는 것 같았다.
시강도 짧았고 그 덕에 인터뷰도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해서 별 기대를 안 했는데 그 다음날 합격 이메일을 받아 놀랐다. 곧바로 SCITT 동료들과 멘토인 피비에게 소식을 전했다. 아무리 합격 통지를 받아도 QTS(Qualified Teacher Status)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에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도 시강 시간이 짧았는데 날 뭘 보고 뽑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취직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 여전히 감사하다.
합격 이메일을 받고 감사 인사를 전한 후, 트러스트에서 계약서와 함께 다양한 자료들을 보내왔다. 직원으로서, 그리고 교사로서 알아야 할 내용들이 체크리스트로 정리되어 있었고, 인터넷에서 강의를 듣고 자료를 읽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양이 방대해서 언제 다 할까 싶었지만, 매일 조금씩 진행해 결국 일주일 조금 넘게 걸려 모두 마무리했다.
이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니 트러스트에서 내 이메일 계정을 다시 열어주었고, 이 계정으로 구글 드라이브에 있는 학교 자료들을 모두 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내가 외국인(나는 영주권을 취득해서 영국 시민권 신청 자격이 있지만, 한국은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시민권을 신청하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영국에서 한국 국적을 가진 외국인으로 간주된다)이기 때문에 영국 정부 사이트에서 영국에서 일할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는 share code를 발급받아 제출해야 했다. 지원할 때 적었던 학위와 자격증의 원본을 제출하고, DBS(범죄 기록 조회) 서류도 다시 학교 이름으로 제출해야 했다. 취업이 확정된다고 해서 바로 직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문서 작업이 너무 많아 합격 이메일을 받은 3월부터 7월까지 거의 4개월 동안 계속해서 자료를 제출하고 서류를 확인받아야 했다. 만약 다시 하라고 한다면 힘들어서 못 할 것 같다.
학교 배정은 이스터 방학 후, 늦어도 5월 하프텀 때는 알게 된다고 했지만 교사 수급의 문제가 있었는지 6월 말이 되야 알게 됐다. 교장 레이첼은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는게 맞지 않다고 트러스트에 자주 컴플레인을 했지만 나는 그냥 어디든 가까운 곳이면 좋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6월, 내가 실습한 학교에서의 마지막 주에 그 학교 2학년 담임으로 발령받았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 없이 이미 알고 있는 학교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특히 교장인 레이첼이 나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고, 트러스트 담당자들에게 날 이 학교로 배정해 달라고 강하게 요청했다는 말을 듣고 감격했다. 내 노력이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매우 기뻤다.
SCITT 과정이 다 끝나면
교사 과정을 시작하면 개인별 고유 교사 번호 (Teacher reference number)를 받는데 이 번호로 교육 당국(teaching regulation agency)에 등록된 내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SCITT 과정이 다 끝나면 교육부에서 QTS 자격증 발급 안내를 받게 되는데, 접속하면 아래와 같은 QTS 자격증을 직접 다운로드할 수 있다.
영국에서는 교사 자격증 취득 후 2년간의 ECT (Early Career Teacher) 기간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 기간 동안에는 수업 시간의 일부를 할애하여 (1년 차에는 10%, 2년 차에는 5%) 교원 연수나 전문 도서 연구 등의 활동을 통해 교직 적응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이는 높은 교사 이직률을 해결하고, 초임 교사들이 학교에 안정적으로 정착하여 장기적으로 교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라고 한다. 과거 1년이었던 NQT (Newly Qualified Teacher) 기간을 ECT 2년으로 확대함으로 교사들의 점진적인 성장과 안정적인 정착을 도모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는 여전히 교사 부족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최근 교사들의 근무 조건 개선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2023년 교사 파업 이후, 잉글랜드 지역 교사들은 2023-24년에 약 5%, 2024-25년에는 5.5%의 임금 인상을 이끌어냈다. 이는 교사들의 이직을 방지하고 교직에 대한 매력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지만 임금 인상뿐만 아니라, 교사들의 업무 부담 경감, 근무 환경 개선 그리고 교직의 사회적 위상 제고를 위한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