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FT로 보는 영국 특수교육의 빛과 그림자
상상해 보자. 런던의 한 교실, 교사는 단 한 명이다. 예산은 삭감되어 보조 교사(TA)의 손길은 늘 부족하고, 그나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 반에 한 명씩 배치되던 TA는 재정 부족으로 사라졌다. 그 교실에는 30명의 아이들이 있다. 그중에는 자폐 스펙트럼(ASD) 아동을 포함한 다양한 특수교육 대상(SEND) 학생들이 일반 학생들과 함께 앉아 있다. 대부분의 SEND 아이들은 교사의 지시를 잘 따르고 배우지만 소리를 지르거나 교실을 빠져나가거나 위험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적어도 한 명은 있다.
당신이라면 이 난관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한 사람의 교사에게 모든 아이의 학습과 정서적 필요를 떠안긴 비현실적인 환경. 이곳에서 교육의 이상은 종종 냉혹한 현실 앞에서 좌절된다.
이 비현실적인 환경의 그림자 뒤에는 영국 교육 시스템을 짓누르는 구조적 압력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특수교육 대상 학생(SEND)의 폭발적인 증가와 만성적인 재정 부족이다. 지난 몇 년간 SEND 학생 수는 급증했으나, 이들을 위한 전문적인 지원 예산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특히 고비용의 전문 서비스나 특수학교 배치를 요청하는 대신, 학교는 최대 £6,000의 추가 비용을 자체 예산으로 먼저 충당하도록 강하게 요구받는다. 이러한 시스템은 교사들에게 “추가 지원 요청 전에 교실 안에서 먼저 해결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동시에, 재정 부담을 일반 교실로 전가하고 있다는 비판을 낳았다.
이러한 구조적 압박은 공립 교육의 이상을 위협하는 사회적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 공립학교의 개별화 지원이 어려워지면서, 일부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의 부모들은 자녀의 학습 환경 악화를 우려하여 사립학교로 자녀를 전학시키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 결과, 공립학교는 더 열악한 지원 환경에 놓이고 사립학교와의 격차가 깊어지면서, 포용 교육이 추구하는 ‘모두를 위한 학교’라는 이상이 사회적·경제적 요인에 의해 다시 분리되는 아이러니를 낳고 있다.
이 상황 속에서 학교는 좌절 대신 “모든 아이는 배울 수 있다”는 신념을 붙잡았다. 그러나 그 신념은 동시에 교사 개인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여했다. 이 극한의 환경 속에서 교사는 스스로 전략가이자 설계자가 되어야 했다. 이러한 헌신과 포용의 실천을 가능하게 했던 철학이 바로 ‘질 높은 교습(Quality First Teaching, QFT)’이다. QFT는 특수교육의 영역을 넘어 모두를 위한 교육 설계를 재정의한 교실 혁명이었지만, 그 실행은 교사 개인의 고군분투가 동반된 적응적 투쟁이었다. 지금부터 QFT가 안고 있는 이상과 현실의 격차를 중심으로 그 철학과 실천을 살펴보려고 한다.
* 영국의 특수 교육 상황에 대해 궁금하다면 이전에 쓴 글 참고( https://brunch.co.kr/@ukteacher/99 )
QFT는 단순한 교수법이 아니다. 이는 2000년대 초 영국 교육부(DfE)가 ‘모든 학습자는 교실 안에서 배워야 한다’는 포용 교육(Inclusive Education)의 이상을 실제 교실에서 실현하기 위해 제시한 교사 중심 핵심 접근 철학이다.
과거 영국은 특수교육 대상 학생(SEN)에게 개별적인 치료나 개입(Intervention)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 방식은 ‘특수교육은 SENCo(특수교육 조정관)의 일, 일반 수업은 담임교사의 일’이라는 이분법적 분리를 낳았다.
이에 2008년 영국 교육부는 선언했다.
“Every teacher is a teacher of children with special educational needs.”
모든 교사는 특수교육 대상 학생의 교사다.
QFT는 바로 이 선언을 현실화한 체제 전환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 체제 전환의 이면에는 만성적인 재정 부족이라는 냉정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특수교육 대상 학생은 늘어나는데 예산 확보가 어려워지자, 영국 정부는 고비용의 전문적인 특수교육 서비스를 최소화하고 일반 교사들의 역량을 끌어올려 비용 효율적으로 모든 학생을 포용하는 방식으로 정책의 무게 중심을 옮겼다. 결과적으로 QFT는 교육의 이상을 실현하는 철학인 동시에, 재정적 압박을 일반 교사들에게 전가하는 구조적 전략이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으며 시작되었다. 특수교육의 책임이 전문가를 넘어 모든 교사에게 확장된 것이다. 이후 이 개념은 ‘적응적 교수법(Adaptive Teaching)’으로 발전하며 영국 포용 수업의 표준이 되었다.
QFT는 모든 학생에게 높은 수준의 학습 목표를 설정하고, 학생이 어려움을 겪을 때 즉각적으로 지원을 조정하는 ‘적응적 교수법’을 중심에 둔다. 과거의 ‘차별화(differentiation)’가 낮은 기대치와 낙인을 불러왔다면, QFT는 그 흐름을 완전히 뒤집었다. 예전에는 빨간 테이블은 못하는 테이블, 별 하나는 뒤처진 아이들이 받는 문제집이라는 식의 분리가 당연했다. 그러나 QFT는 동일한 높은 기대를 유지한 채, 학생의 필요에 따라 ‘입력(Input)’이나 ‘출력(Output)’ 방식을 유연하게 조정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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