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구글 학교
첫 학기가 끝나는 날, 다음 학기부터 실습할 학교를 알게 되었다. 그 학교는 내가 사는 곳 옆 동네인 Worcester Park에 위치해 있었다. 첫 번째 학교에서 마지막 달이 힘들었기에 어디를 가든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방학 동안 이 학교를 구글에서 찾아보고, 멘토인 피비에게 연락이 와서 반갑다고 인사도 나누었다.
내가 배정받은 학교는 멀티 아카데미 트러스트에 속한 곳으로, 영국의 공립학교는 국가에 속해 지역 교육청에서 관리하는 일반 State school과, 좀 더 자율적인 관리가 가능한 Academy school으로 나뉜다.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곳을 Trust라고 부르는데, 내가 배정받은 학교는 약 10개의 아카데미를 통합 운영하는 multi-academy trust에 속한 한 학교였다. 이 학교는 널서리, 리셉션, 1학년, 2학년까지만 있는 infants school로, 한 학년당 4반이 있었다.
영국 초등학교는 Nursery부터 6학년까지 있는 Primary school과 내가 실습한 학교처럼 Nursery부터 2학년까지 있는 Infants school,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있는 Junior school로 나뉘기도 한다.
내 멘토인 피비는 나처럼 학부 졸업 후 1년 과정의 PGCE를 하지 않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에서 3년간 BA로 초등교육을 공부하고 졸업하여 19세에 바로 교사가 된, 약 5년의 경력을 가진 젊은 선생님이었다. (영국에서 교사로 일하려면 QTS는 필수이고 PGCE는 선택사항이다.) 피비는 어렸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온몸에서 묻어나며, 웃음이 예쁜 내가 상상했던 이상적인 선생님이었다. 피비는 절대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아이들에게 사근사근 설명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좋은 곳에 왔음을 느꼈다.
1학년 선생님들도 날 무척 반겨주었고,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라고 해줘서 감사했다. 1학년 아이들은 아직 어린 나이답게 감정 표현도 솔직하고 늘 내게 'I love you, Ms Jung!'이라며 와서 안기곤 했다. 요즘 교사가 먼저 아이들을 만지는 것이 금지되기 때문에 아이들이 달려들 때 어정쩡하게 안아주곤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먼저 달려오면 좀 더 따뜻하게 맞아줄 수 있게 되었다. Key Stage 1에서는 phonics를 배우기 때문에 나도 아이들을 가르쳐야 했다. 외국인이 원어민인 아이들에게 포닉스를 가르친다는 것이 웃기기도 했지만, 제대로 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어떤 발음은 어려워 주눅이 들 때도 있었지만, 나중에는 함께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이 나의 발음을 이해하고, 자신들이 똘똘하다고 자랑스러워하니 기분이 좋았다. 가끔 스펠링 테스트를 할 때는 내 발음 때문에 틀리면 안되니까 단어와 문장을 주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The word is 'would'. I 'would' be happy to help you. The word is 'would'), 문맥을 보고 단어를 적는 아이들이 많아졌고, 단어 연습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다.
영국, 특히 런던에는 다양한 인종의 선생님들이 있지만, 내가 있던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은 모두 백인 영국인이었다. TA(티칭 어시스턴트)들 중에는 인도나 중국 출신도 있었지만, TA도 대부분은 백인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환경이 조금 낯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적응하게 되었다. 결국, 사람이 정말 적응의 동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수업 시간이 점점 늘어가면서 힘들었지만, 피비와 좋은 관계를 맺어 수업 전에 오늘 할 일을 항상 알려주었고, 이를 바탕으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할 수 있었다. 수업 후에도 집에 가지 않고 남아서 정리하고 다른 잡일을 도와줬으며, 덕분에 피비는 교장 및 다른 선생님들에게 나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해주었다. 이 덕분에 이곳에서의 생활이 무척 편하고 좋았다.
피비는 아이들이 산만해질 때면 마법사처럼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의 시선을 잡곤 했다. 나도 따라 하고 싶어 시도했지만 처음에는 너무 부끄러웠다. 그러나 아이들이 더 집중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어 꾸준히 연습하니, 이제는 자신 있게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에게 똑바로 앉거나 공부할 준비를 하도록 요청할 수 있게 되었다. 노래를 활용하는 수업 방식은 나에게 큰 자신감을 주었고, 아이들과의 관계를 더욱 좋게 만들어주었다.
이 학교가 속한 트러스트의 특징 중 하나는 아이들에게 크롬북을 무료로 제공하고, 수업 시간에도 Google Classroom을 이용하여 다양한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영국에서는 구글 클래스룸을 사용하는 학교가 많지 않아 처음에는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컴퓨터를 오래 사용해온 덕분에 몇 번 사용해보니 익숙해졌고, 나중에는 구글로 수업 자료를 만들어 올리기도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사용하다 보니 1학년을 마칠 무렵에는 모두 타이핑을 잘하고 과제를 능숙하게 찾는 모습을 보고 교육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선생님들이 이렇게 잘하는지 의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컴퓨터를 잘 다루는 선생님들이 수업 자료를 준비하고, 나머지 선생님들은 자료를 열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나는 배우는 입장에서 모든 것을 잘하고 싶어 남아서 연습하고, 모르는 부분은 컴퓨터를 잘하는 선생님에게 물어보며 나중에는 Nearpod, Thinglink, Now Press Play, Scratch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어렵지 않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내 실습은 6월 말까지였고, 아이들은 7월 중순에 방학을 하는 거여서 나는 아이들과 조금 일찍 작별 인사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마지막 날 대성통곡을 하며 울어서 내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알 수 있었고, 마음이 찡했다. 사실, 3월에 내가 실습한 학교 트러스트에서 교사 모집 공고가 나서 지원했지만, 내가 끝나는 날까지 어떤 학교에 배정될지 몰랐다. 마지막 날, 내가 실습한 이 학교의 2학년 담임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들에게는 내가 다시 온다고 말할 수 없어서 (학교에서는 부모님께 먼저 안내가 가기 전까지 교사가 먼저 말하면 안 되는 규칙이 있다) 아이들이 울 때 나중에 다시 온다고 할 수 없어 엄청 민망했다.
7월 'Meet the Teacher Day (새 학년 선생님 만나는 날)' 때 다시 학교에 갔더니 아이들이 달려와 안아주며 반갑게 맞아줘서 정말 고맙고 감사했다. 내가 실습했던 반 아이들이 그대로 2학년 우리 반으로 올라와서, 아이들의 이름과 성향을 이미 알고 있는 덕분에 아이들도 나를 잘 알고 있었고, 새 선생님이 아니라 덜 겁먹었다는 점이 장점이었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 조금 불편한 점도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훌륭한 선생님인 피비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아이들은 친절하고 사근사근한 피비에게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자격지심이 들기도 했다.
외국인으로 초등 교사하기는 어떤가?
내가 초등교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 가장 큰 장애물은 내 영어 수준이었다. 주변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이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교사라는 직업이 내게는 먼 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마카오 출신의 중국인 1.5세 여자분이 동네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여기서 태어나 자라지 않았어도 초등학교 교사가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분을 보며 나도 조금씩 정보를 알아보게 되었고, 점점 외국인 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체로 외국인 교사들은 중고등학교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는 중등교사가 부족한 직업군이어서 취업이 비교적 용이하고, 한 과목만 가르치기 때문에 특정 과목에 특화된 전문 용어만 잘 쓰면 되기 때문에 언어적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물론 중등교사도 학생과의 의사소통 능력, 수업 관리, 부모와의 소통 이 요구되므로 영어 능력은 중요하다).
반면, 초등학교 교사로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을 찾기 어려웠다. 찾는다고 해도 대부분은 이곳에서 태어난 2세이거나 어린 시절에 이민 온 1.5세들이었고, 나처럼 성인이 되어 영어를 배우고 교사가 된 경우는 아직 만나 보지 못했다. 이 때문에 나는 초등교사가 되는 것을 주저했던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영어를 잘한다고 해도 발음이 여기서 태어난 사람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발음에 신경 써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의 배움에 오히려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윤리적 고민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에 나선 이유는 개인적인 성취와 도전 의식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 딸을 위한 것이었다. 외국에서의 생활이 쉽지 않지만, 엄마가 도전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딸도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번 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또한, 외국인으로서 영국에서 교사로 일하는 사람들의 수를 늘리고 싶은 개인적인 목표도 있었다. 나는 영국 시민권을 신청할 자격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영주권자로 살고 있다.
교사가 되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있는 학교는 모든 교사가 백인 영국인 (White British)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회의 중에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를 살펴보면서 GDS (학업 성적이 높은 아이들) 중 White British 비율이 적으니 이를 높여야 한다고 이야기하거나, White British 아이들 중 누가 GDS가 될 가능성이 있냐고 물어보며 그 아이들에게 더 신경을 써서 GDS로 올릴 수 있게 하라고 하는 인종편향적인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들이 모두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면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된다.
부모님들 역시 나를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분들도 있지만, 보이지 않게 무시하는 부모님들도 있다. 영국인 부모님뿐만 아니라 외국인 부모님들 중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다. 그분들 입장에서는 자녀가 영어를 잘 했으면 해서 학교에 보냈는데, 갑자기 한국인 교사가 담임이라고 하면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현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핸디캡이 나에게 더 열심히 준비하고 가르치도록 하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물론 아이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 때문에 더욱 사랑스럽고, 그래서 더욱 잘 가르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런 어려움들이 있어 어떤 날은 무척 의기소침해지기도 하지만,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묵묵히 내 일을 계속하고 있다. 기대하기는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외국인들이 초등학교 교사가 되면 학교가 좀 더 다양하고 포용적인 환경이 되리라 믿는다. 다양성은 학생들에게 풍부한 경험을 제공하고,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교사들이 협력함으로 보다 넓은 시각과 이해를 갖출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변화를 만드는 데 작은 역할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나 역시 매일 노력하고 성장해 나가리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