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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준 자유(?) 육아휴직

인줄 알았던 육아의 쓴맛

by 울랄라샙숑

3월 둘째 녀석이 우리의 세상으로 찾아왔다.

코로나가 뭔지 출산 후 병실에서도 그렇고 조리원에서도 그렇고 보호자가 아닌 이는 철저하게 방문 자제를 요청하고 있어 와이프는 홀로 힘겨운 몸조리를 하고 있는 중이다. 고마우면서도 안쓰러운 그대, 내가 미안해.


오늘은 며칠간의 육아로 깨달은 것과 약간의 푸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고로 첫째의 육아는 온전히 내 몫으로 돌아왔고 평소에도 주말이면 한 주간 고생한 와이프를 위해 독박 육아를 자청했던 바 보름 정도의 육아는 감히 첫째와 더 끈끈해질 수 있는 기회 정도로 안일한 생각으로 육아의 문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이젠 안다 이 얼마나 가소로운 접근법이었는지를)


처음 시작한 것은 삼시세끼 고른 영양을 제공할 수 있는 이유식단을 짜는 것으로 와이프가 미리 사둔 유아식 도서의 목차를 훍으며 생각했던 것보다 조리법이 간단하다며 와이프 없이도 만점 육아를 해낼 수 있을 거라며 스스로에게 뽕(?)을 세웠던 것 같다.


첫날 3일분의 반찬과 국을 후다닥 끝낸 후 꽉 채워진 냉장고를 보며 뿌듯해했으며 어쩌면 보름이 지난 후에 아이가 아빠 밥만 찾으면 어하지?라며 내적 자신감이 깨지는 데는 만 12시가 지나지도 않았을 무렵이었다.

"짜", "안먹을래", "간식먹을래"

어쩜 이래? 분명히 도서에서 제시한 대로 간을 했고 내 입맛에도 분명히 밍밍했는데 아이 입에는 맛이 있다 없다 보다 짜다는 말이 먼저 나오는데 집 나간 멘탈은 쉽사리 돌아오지 못했다.

(와이프 말로는 맛이 없으면 그냥 짜다고 하는게 버릇이라고 한다, 맛이 있으면 짜도 잘 먹는다고...)


결국 3일간의 반찬은 아빠의 것이 되었고 유튜브를 찾고 찾아 겨우 아이의 입맛과 간 기준에 들어선 듯, 아이는 겨우 끼니를 때운다..라는 느낌으로 식사를 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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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를 한다고 하는데... 정돈된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노하우의 차이일까..)


삐지기는 또 얼마나 심한지 열 마디를 하면 꼭 한번씩 "흥" 하며 휙 돌아서는데 대체 어느 포인트인 것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연애 와이프를 보는 느낌이 살짝 있는 게 1000% 우리애가 분명하다.

육아휴직이라고 쓰고 반 재택근무라 읽는 상황인지라 회사, 클라이언트, 외주사 돌아가며 문의전화가 오는데 정식 근무 때보다는 훨 가벼운 수준이긴 하나 횟수가 많아지면 아이와 놀다가도 아이가 없는 방으로 급히 들어가 전화를 받고 하는데 어김없이 따라와 방문을 두드리며 "아니 아빠 내말 좀 들어보라니까? 누구랑 이야기하는데 내말 들어주라구~~" 소리치는데 방문을 살짝 닫고 있어도 수화기 넘어로 소리가 들리는지 메일로 보내겠다고 감사한 양해를 해주신다.


문제는 전화를 끊고 나서 미안해 미안해 아빠가 집중할게 뭐라고 했지? 라고 되물으면 "흥! 재미없어 왜 내 말을 안 들어줘~~" ... 대충 10분은 이름을 불러도 대답도 없다. 물론 10분이 지나면 아쉬운 건 아이인지라 다시 재잘재잘이지만^^;; 왜 그러는지 알기에 참 웃기다가도 괜히 미안한 마음에 오버해서 잘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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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소진을 위한 야외 데이트)


의외로 5살 꼬맹이를 달래 방법은 간단하다. 매우.

살랑살랑 꼬셔 옷을 입히고 간식 먹으러 갈까?라고 하면 갑자기 화색 돈 얼굴로 무엇을 먹을 것이냐며 관심을 보이는데 생각할 겨를 없이 일단 들고 야외로 뛰어나가면 어느새 다시 화기애애해지곤 한다.


주말이면 종종 아빠랑 단둘이 데이트를 하곤 하는데 엄마랑 있을 때 차마 못 하는 것(?)들을 과감하게 요청하는 편이다. 아빠 많은 아빠들은 끄덕끄덕 공감하리라.

"나 아이스크림 먹을 거야"

"츄로스 먹고 싶은데? 나도 초콜 소스 줘"

"하나 더 먹을래 다섯개 먹을 거야"

"짜장면 먹을래"

뭐 이것뿐이겠는가 그냥 한풀이를 하는 것이다.


아빠는 관대하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당당하게 이야기하면 딸 가진 아빠들은 그냥 녹아내린다.

이건 여포가 와도 안된다 망설이고 고민할 것도 없이 홱 안아 매장 앞으로 돌진 또 돌진이다. 카드값? 그냥 다음 달 내가 조금 덜 쓰면 된다. 마치.. 연애 초 콩깍지에 지배당한 10년 전 내 모습과 같을지도?


아니 이 정도면.. 너도 양심이 있으면.. 아빠쟁이 흉내라도 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손에 원하는 것을 쥐면 고맙다고 한다.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하고 정말 기뻐한다. 근데 어딜 보고 인사하는 것인지 아무도 없는 곳에 버릇처럼 인사하고 아빠는 나눠줄 생각이 없는지 다 먹을 때까지 간식과 아이컨텍 하며 말 시키지말란다 이것 먹어야 한다고. 안다 이런걸로 쪼잔하게 삐지면 안된다는 걸..

그래 상대는 38개월 5세 여자 아이이다. 그런데 서운한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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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달님이 캠핑편을 보고 갑자기 이것 저것 세팅하는 따라쟁이)


아이는 생각보다 훨~~~씬 더 추진력이 강력하고 종잡을 수 없는 엉뚱함이 있다... 정말이다.

약속된 시간 약속된 분량으로 도서 외 미디어를 최소화하는 엄마와 달리 비교적 관대한 이 아빠는 오늘 엄마가 왜 그렇게 미디어에 대해 민감했는지 알게 된다. 절.실.히.

개인적으로 미디어에 대해 긍정적인 편이다 스토리 속에 교육이 있고 순기능이 있다고 여겨왔고 지금도 어느정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놀라웠던 것은 하고자 하는 것에 고민과 절차 없이 즉흥적으로 실천하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저녁을 먹고 식기세척기를 정리하면서 아이가 심심해 할까 봐 만화 한편을 보여주었다.

주인공인 달님이가 피크닉 모자를 쓰고 캠핑을 다녀온다는 단순한 이야기인데 평생 캠핑이라곤 다녀와본 적 없는 아이가 달님이가 쓴 챙 있는 모자를 써내달라고 하더니 집 안에 어린이 텐트를 쳐달라고 한다.

물론, 뭘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해줄 수 있지 얼마나 귀여운가 하고 싶은 것은 해야지.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더라. 텐트 안으로 테이블과 의자를 들이고 수납장에 있는 인덕션을 기어코 꺼내달라더니 장난감 후라이팬과 고기를 가져와 음식을 하는 흉내를 낸다. 귀엽다. 너무 귀엽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미디어에서 호기심을 얻으면 즉시 흉내를 내는 것을 보니 부정적인 말투와 장면이 나오면 그것도 쉽게 따라 할 수 있겠 생각도 들었다. 출산 전 와이프의 말을 빌리면 어김없이 만화 한편을 보고 저녁을 먹는데 혼잣말로 "왜 이렇게 말을 못 알아듣는 거야, 가져와 당장!, 자꾸 그러면 혼내버린다?"라는 말을 하는데 평소 조심성이 많고 조근조근한 성격을 가진 아이가 쓰는 말이 아니었기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별 것 아니라 생각 할 수 있지만 딸바보 겁쟁이 아빠에겐 심각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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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공감하리라 생각든다. 다소 퇴근이 늦는지라 집에가면 늘 졸려하고 자고 있는 모습만 보다가 하루 풀케어를 하다보니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토요일 문화센터에 가는 날이라 아침 일찍 깨워 밥 먹이고 옷 입히고 혹여나 늦을까 부랴부랴 센터로 달려가 수업 듣고 마트 한 바퀴 돌다가 집 가기 싫다고 울기에 공원 놀이터에서 2시간 놀고 집에와 샤워하고 역할놀이 하다가 잠깐 저녁 먹고 또 다시 활동하시는데 아빠 체력은 아까 이미 공원에서 끝난지 오래였지만 아이의 눈은 점점 더 초롱초롱해진다. 지리고 오진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 듯하다.




물론 38개월 동안 매일 같은 일과를 보낸 와이프 앞에선 웃음도 나오지 않을 정도겠지만, 이제 갓 육아의 길로 들어선 아빠에겐 하루하루 놀라운 하루하루다. 또 한 번 와이프에게 고맙고 조금은 육아를 쉽게 생각했던 미안함을 전한다. 진심.


이제 겨우 4일차 육아.

앞으로 10일 동안 어떤 에피소드가 생길지 벌써 기대되면서도 걱정이 된다.


딸랑구, 아빠가 더 노력할게.

여보, 둘째야 아프지 말고 건강한 모습으로 보자 잘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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