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명상법이 있나요?
지난 2020년 여름, 지인이 피크닉 명상 전시를 보러 가자고 하였다. 마침 시간이 돼서 동행하였고, 전시를 보고난 후 차를 한 잔 마시며 전시 이야기를 하였다. 그가 물었다.
“전시 어땠어?”
“음..특이했던 것 같아. 전시 자체가 엄청 좋았다기보다는 나는 명상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생각해 볼 기회였던 것 같아.”
“나는 개인적으로 명상하고 나서 삶이 정말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거든.”
대학생 때 그를 처음 만나 거의 10년을 알았지만 사실 많이 가까운 친구는 아니었다. 내 삶은 많이 달라졌으면서도 상대방의 삶이 달라졌다는 것은 상상을 하지 못했었다. 이 친구가 명상을 하고 있다는 건 더더욱이 놀라운 일이었다. 명상이 도대체 뭐길래 한 사람의 삶까지 바꿔놓는다는 말인가? 궁금했다. 그리고 명상원을 추천받아 다음 달에 바로 등록을 했다.
첫 명상의 경험은 새로웠다. 되돌아보니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노력’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천천히 호흡과 몸에 집중을 하다 보니 뭔가 벌써 변화가 일어나는 것 만 같았다. 쉽지는 않았다. 불쑥 불쑥 다른 생각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그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 이니, ‘알아차리고’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면 된다’고 하셨다. 또한 ‘명상’그 자체와는 별개로, 명상의 과정 이후에 명상 중 떠오른 생각을 정리해 보는 활동을 통해서 나에게 현재 일어나는 일을 생각해 보고, 나에 대해서 조금 더 파악해 보는 작업도 해볼 수 있었다. 그때 나의 마음속은 대략 이러했다.
호흡에 집중해 보자. 들이마시고, 내쉬고…들이마시고, 내쉬고…이렇게 하는 게 맞나? 옆에 다른 사람들은 잘 하고 있나? 아니지. 나에게 집중해야지. 들이마시고, 내쉬고… 선생님이 집중이 어려우면 ‘지금’, ‘여기’를 반복해 보라고 하였는데 그렇게 해보자 들이마쉬는 숨에 ‘지금’ 내쉬는 숨에 ‘여기’,,, 그래 나는 ‘지금 여기’있어. 그런데 이제 일요일도 거의 끝이네, 내일 또 월요일 이군…조금 배가 고픈데, 끝나고 뭐 먹지? 갑자기 헤어진 전 남자친구가 생각이 나네, 갑자기 왜 생각이 나지…..아니 뭐 하는거야! 다시 호흡으로!
정말 마음과 생각을 비우기란 쉽지 않았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가이드가 있는 명상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선생님께서는 가이드에만 매달리면 가이드가 없이는 명상을 할 수 없으니 웬만하면 가이드 없이 수행을 하라고 하셨지만, 아직 나에게는 역부족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아침을 깨우는 명상’, ‘잠자기 전 듣는 확언 명상’과 같은 가이드를 들었고, 그러한 명상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긍정적이고 깨끗한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해주었고, 나에 대한 확신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잠들 수 있었다. 또한 죽음 명상을 할 때면 죽음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어떠한 ‘생각’을 나에게 다시 넣는 것이었지, 나 자신을 비우거나 알아차릴 수 있게 해주지는 못하였다. 그렇게 반쪽짜리 수행을 하며 2년이 흘렀다.
그리고 최근, 김혜리 기자의 <조용한 생활> 팟캐스트 중 ‘김보라 감독의 명상법’에피소드를 듣고 머리가 띵 해졌다.
‘명상이란, 아침에 커피를 마실 때 커피만 마시는 것이다.’
나는 지난 2년 동안 명상이 도대체 무엇일까, 어느 날은 ‘그래, 잘하고 있어.’ 싶다가도 어느 날은 ‘이게 잘 하고 있는 게 맞을까? 이 느낌이 맞을까?’를 계속해서 의심했다. 하지만 명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며, 깨달음을 얻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내가 커피를 마실 때 커피만 마시고, 밥을 먹을 때 밥만 먹고, 지금 이 순간에 있을 때 지금 이 순간만을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얼마 전 절에 갔을 때 그 공간과 자연에만 집중하며 '현재'에 머무르 던 순간이 생각났다.
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밥을 먹을 때 유튜브를 보지 않는다. 밥을 먹을 때는 밥만 먹기 시작했다. 밥만 먹는 건데도 처음에는 5분 이상 하는게 힘들었다. 유튜브에서 좋은 영상 찾아놓은 게 있었는데 싶은 미련이 들고, 핸드폰을 만지고 싶은 욕망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 시간도 점차 익숙해지고 적응하니 비로소 ‘음식 명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처음에 ‘음식 명상’, ‘걷기 명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아무 데나 다 명상을 갖다 붙이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음식을 먹을때 음식을 먹는 순간에만 집중하는 것, 걸음을 걸을 때 걷는 순간에만 집중하는 것, 설거지를 할때 설거지 하는 순간에만 집중하는 것. 우리는 매 순간 명상을 할 수 있었고, 2년 만에 나는 조금이나마 그것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이제 다시 수행의 시작, 그 길로 들어선다.
마치 온 세상이 제게 ‘집에 온 걸 환영해’라고 속삭이는 듯 했습니다. 이 행성에서 난생처음으로 마음이 더할 수 없이 편안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지금 여기에 온전히 존재하고 있었지요. 눈물이 고이고 가슴이 따뜻해 졌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감사’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고 해서 무슨 엄청난 각성을 했다거나 특별한 정신 상태에 도달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잠시 벗어났지요. 그것만으로 놀라운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생각이 온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더는 그 속에 매몰되진 않게 된 것입니다. 마치 한 발짝 물러나 제 마음을 지켜볼 수 있게 된 것 같았지요. 그러자 내가 생각을 하는 것이지, 내가 곧 생각과 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틀릴 수 도 있습니다_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