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이 흔해진 시대에 돌아보는 선물의 의미
몇 년 전부터 카카오톡 생일 알림을 꺼놨다. 가장 큰 이유는 어플상에서 선물하기 기능이 너무 간편해지다 보니 불필요한 선물을 너무 많이 받게 되는 것 때문이었다. 생일이라고 오랜만에 연락이 오는 것은 반갑기도 했지만 보내오는 커피쿠폰은 그렇게 반갑지는 않았다. 또 가까운 친구들도 생일이라고 챙겨주는 핸드크림, 바디로션, 향초 등등.. 다 평소에 별로 쓰지 않거나 너무 많아서 더 이상 필요한 물건도 아니었다. 물론 선물이야 반가운 것이지만 어차피 나도 되돌려줘야 하는 빚인데, 그냥 대기업 배불리기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쓰지 않는 물건을 적절히 나눔을 하거나 당근마켓에 팔기라도 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걸 워낙 귀찮아하는 성격이라 창고에 물건들은 차곡차곡 쌓여만 갔고, 생일선물로 의례적으로 지출하는 돈은 커져만 갔다. 쌓이는 물건들이 스트레스가 되자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렇게 카카오톡에서 생일 알람을 껐다.
생일 알람을 끄고 나니 생일에 연락 오는 횟수가 정말 현저히 줄었다. 정말 생일 당일 연락이 한 두통이 전부 인 날도 있었는데, 그런 날에는 조금 외롭기도 해서 형식적인 축하라도 받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또, 친구들의 생일이 카톡에 떠서 축하메시지를 보낼 때 아무런 선물 없이 축하만 하는 게 왠지 미안하고 머쓱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상대방에 내 생일을 지나치고 넘어갔더라고 내 마음은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불필요한 것은 덜어지고 이제는 홀가분한 마음이 든다.
나는 대부분의 책을 도서관에서 종이책으로 빌려서 읽는데, 며칠 전 오랜만에 전자책리더기를 집어 들었다. 두꺼운 책이고 내용도 꽤 곱씹어야 할 것 같아서 전자책으로 사서 넣어놨다가 제대로 읽어못하고 중단한 책이 기억이 나서 전자책리더기를 충전해서 가지고 나왔다. 오래돼서 확실히 느려진 기기를 보고 있다가 선물 준 사람이 생각났다. 예전직장을 다닐 때 함께 직장생활을 하던 후배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이전직장생활을 끝내고 미국으로 잠시 가서 생활하려고 결정하고 난 후 회사에 알렸다. 8월까지 다니고 퇴사를 하였는데, 8월은 마침내 생일이 있는 달이기도 했다. 생일날 후배는 선물상자를 건넸다. “대리님. 이거 생일선물이자 퇴사선물이에요. 전자책 리더기인데, 좋아하셨으면 좋겠어요. 대리님 퇴사한다고 했을 때부터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그래서 주변에도 많이 물어봤는데, 대리님이 책 좋아하시는데 미국에는 한국책 구하기 힘들잖아요. 전자책리더기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후배 고민과 애정이 느껴져서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사실 고마운 마음과는 별개로, 그때는 전자책에 익숙하지 않아서 과연 내가 이걸 쓰려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미국에 들고 가 보니 정말 나에게 딱 필요한 물건이었고, 지금도 여행을 할 때는 전자책리더기에 읽고 싶은 책을 여러 권 담아서 떠난다. 선물해 준 물건은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하나의 물건이 되기 십상이다. 익숙하게 계속 사용하다 보면 어느새 고마움과 감동은 희석되고, 하나의 물체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이 전자책리더기는 볼 때마다 후배생각이 난다. 그리고 나도 선물을 할 때 내가 주기 편한 것, 적당한 가격에서 선물할 만한 것보다는 정말 상대방이 받으면 좋을만한 것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작년에는 선물을 할 일이 많이 없었는데, 내가 선물하고 나서 기억에 남는 선물도 있다. 친구가 프랑스여행을 다녀와서 모네의 수련을 인상 깊게 보고 온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곧 그 친구의 생일인 것을 알았다. 오일페인팅 원데이 클래스를 함께 하며 좋은 시간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날짜를 맞춰서 수업을 신청하고 함께 만나서 오일페인팅을 해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선물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내가 제안을 했을 때 그 친구가 안 그래도 오일페인팅이 너무 해보고 싶어서 프랑스에서 오일파스텔을 살까도 고민을 했다고 너무 신기하다고 말을 해주었고, 이후에 이런 선물을 받았다고 주변에 자랑도 하며 정말 좋아해 주어서 너무 뿌듯했다. 정말 상대방에게 좋을만한 것을 선물해 준 느낌이 들었다.
선물이라는 게 뭘까. 물건이 귀하던 시절에는 정말 고심 끝에 소중한 마음을 담아 주고받는 게 선물이었을 텐데, 요즘은 ‘선물’이라는 것이 너무 흔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래된 전자책리더기를 보며 다시 한번 선물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