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4

퇴원과 입원

by 울타리

아버지는 소원을 이루었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결국, 고향을 방문하지 못하고 호스피스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입을 다물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고, 혼자 거동이 어려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비록 어제보다는 기온이 올랐지만, 싸늘한 냉기가 감돕니다. 병원을 옮기는 과정조차 아버지에게는 너무 가혹해 보였습니다. 핏기 없는 얼굴에, 가스가 차 불룩해진 배, 퉁퉁부은 발까지... 점점 생의 기운이 빠지는 아버지를 따라 추위가 매섭게 달려듭니다. '언제 사 드렸더라??' 칠순잔치로 떠난 남미 여행 준비할 때 사드렸으니, 아마 9년 전일 텐데. 다 해지고 볼품없는 노란 오리털 재킷 하나 걸치고 큰형 차에서 내렸습니다.

하루 만에 또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병원에서 준비한 휠체어를 타고 급히 병원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병원을 올려다보니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지은 근대식 병원이라는 게 느껴집니다. 적벽돌에 초록색 양철지붕으로 마감한 건물입니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규모에 야산 중턱 고갯마루에 지어졌습니다. 시간이 말해주듯 어른 팔뚝만 한 굵기의 덩굴이 외벽을 감싸고 있습니다. 5월의 풍경에는 초록빛 나뭇잎이 아침 햇살을 받아 싱그러웠을 텐데, 12월은 그야말로 흙색, 죽음의 기운이 하늘로 뻗쳐있습니다. 어찌 보면 생에 대한 의지로도 볼 수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환자가 망자가 됩니다. 그들의 고통은 사라졌으나, 끄트머리에서 놓지 않았던 삶의 기대가 이 덩굴 가지 속에서 남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해마다 찾는다면 아버지의 산소보다 이곳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께서 무엇인가를 그토록 원했다면, 아마 이곳에 내려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의 소원은 이루었지만, 또 내일의 소원이 있을 테니까요. 더 절박하고 간절하겠죠. 아마 다시 고향 방문을 꿈꿀 수도 있겠습니다. 또, 실낱같은 회복의 망상에 빠질 수도 있겠습니다.

모든 것이 폐허 위에 지어졌고, 자식의 그 자식이 오늘날 살아있습니다. 역사는 기록으로 남고, 사람은 DNA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모든 것이 잉태된 후 생명의 빛을 발하다가 흔적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자연의 이치요, 생명의 순환입니다. 안타까움과 슬픔은 남은 자의 몫이 되겠죠. 그 몫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아버지에게 다가갑니다. 차마 꺼내지도 못한 '사랑한다'는 말도 전해드리고, 손과 발도 주물러 드립니다. 마지막 가실 때 따뜻한 사랑을 남기고 가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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