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난 시애틀에서 객사했을지도 모른다

시애틀에서 구세주를 만나다

by 지민

철은 없고 객기만 한 가득이었던 스무 살이 가끔 그립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새로웠던 그때. 부모님을 포함한 주위 사람 모두가 말렸던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미국 시애틀로. 그 여행은 내게 <트루먼 쇼>의 바깥세상과 같았다. 내가 그동안 진짜라고 믿고 있었던 모두 다 가짜였고, 가짜 바다 끝에 진짜가 있었다. 풍파를 뚫고 당도한 파아란 가짜 벽 위 계단에 서 인사했다. “굿 모닝,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가짜와 영원히 이별하는 순간. 그리고 그 문 뒤에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만들어갈 진짜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보니 무모했다. 처음이어서 그랬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계획이란 것이 없었다. 한국에서 준비한 건 왕복 비행기 티켓과 가장 싼 가격에 찾은 숙박업소, 2주 치 짐을 대충 욱여넣은 캐리어 하나가 전부였다. 참, 정확한 액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흰 봉투에 소중히 넣어둔 몇 백 달러도 있었다. 한국에서 쓰던 돈 그대로 하루에 이 정도 쓰면 되겠지 하고 환전한 액수였고, 물론 교통비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2주 동안 그곳을 걸어 다닐 생각이었다. 미국이 얼마나 넓은 가를 가늠조차 하지 못한 나였다. 이 많은 불행 중 다행은 '그녀'를 만났다는 것이다.


탑승 수속을 하고, 짐을 부치고, 기내 수하물 검사를 하고, 출국 심사를 하고, 면세점을 지나, 게이트 앞에 앉아 있다 비행기에 탔던 것 같다. 오래전 일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첫 출국에 몹시도 긴장했던 탓인지 비행기에 타기 전까지의 과정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한 건 내 자리가 39K였다는 것. 잠깐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으려던 중년부부가 아들과 자리가 떨어졌다며 자리를 바꿔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그러겠다고 하곤 그 아들이 앉아있던 바로 뒷자리로 갔다. 바뀐 자리는 40K.


그리고 얼마 후 내 옆자리에 한국인 아줌마 한 분이 앉으셨다. 아직도 아빠가 '구세주'라 부르시는 아줌마가. 1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아줌마와 난 밥을 두 끼나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고, 쉴 새 없이 이야기도 나누었다. 아니, 이야기라기보다는 아줌마의 질문이 계속되었다. 그곳에는 왜 가고, 아는 사람은 있으며, 얼마나 있을 거고, 숙소는 정했으며, 운전은 할 줄 아냐는.. 딱히 이유는 없었고, 아는 사람도 없었고, 2주 동안 머물 숙소가 있었지만, 면허증도 없는 나였다. 그 뒤로도 비슷한 패턴의 질의응답 시간은 계속되었다.


그러다 비행기가 착륙하기 몇 시간 전 아줌마는 내게 말씀하셨다. "너, 나랑 같이 가자." 무서웠다. 아줌마는 분명 착하고, 친절하고, 멋있는 분이셨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몇 시간 전 처음 본 사람을 따라가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2주라는 시간을 함께 보내도 된다는 뜻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니까. 하지만 인연이란 것은 그렇게 쥐도 새도 나도 모르게 시작되고 있었다보다. 정신 차려보니 난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미국 차도 옆에 인도 따윈 없구나...' 한국 고속도로 옆에도 인도가 없다는 걸 깨달은 건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다.


얼마간 달려 우린 어번Auburn의 어떤 집에 도착했다. 아줌마의 딸인 조다나Jordana 언니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었는데, 아줌마를 통해 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언니도 날 두말 않고 흔쾌히 받아주었다. 문제는 숙소였다. 서울에서 숙소를 잡아 2주 치 결제를 한꺼번에 해놓은 그 숙소, 그저 "싼 곳!" 무조건 "싼 곳!"을 외치며 찾은 그 숙소. 한국에서 프린트해 온 숙소 이름과 위치와 전화번호가 적힌 바우처를 언니에게 보여줬다. 언니와 아줌마는 그곳의 주소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내게 말했다.


내가 구했던 숙소는 시애틀에서 우범지역으로 소문난 곳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거리에 있었다는 것. 아줌마와 언니는 펄쩍 뛰며 여기는 절대 가면 안 된다고 했다. 특히 내가 묵을 집이 있는 곳은 더욱. 어쩐지 과하게 쌌던 이유가 있었다. 여전히 그곳이 어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심지어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으니 기억날 리 만무하다. 어쨌든 아줌마는 더욱더 강하게 같이 있어야겠다고 말씀하셨고, 조 언니는 그곳에 전화해 바로 예약을 취소해주었다. 당일 취소였으니 당연히 환불은 받지 못했다.


비행기에서의 인연은 이렇게 필연이 되어 난 2주 동안 아줌마와 함께 지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14일의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처음 3일간은 막장 드라마 같은 상황에 휘말려 진땀을 뺐고, 처음으로 미국의 대형마트에 가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놀라버렸고, 난생처음 먹어 본 아보카도와 사랑에 빠졌고, 미국 영화관과 볼링장도 가 보았고, 한국과는 정반대의 크리스마스도 경험하며 특별하지 않아 더욱 특별했던 시간을 보냈다. 14일의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엔 떠나기 싫은 마음에 엉엉 울고 말았다.


내가 한국에 돌아오고 두 달쯤 뒤 아줌마와 나는 대전에서 재회했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난 후엔 서울에서도 만났다. 아빠는 아직도 아줌마를 구세주라고 부르신다. 내 생명의 은인이라며. 하긴, 그때 정말 그 숙소에 묵었더라면, 2주 내내 걸었더라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다녔더라면. 이 끔찍한 가정법이 모두 현실이 되었다면 정말 무엇이 어떻게 됐을지 모를 일이다. 이후로도 계속된 여행길에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이토록 강렬했던 경험은 없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때 만난 놀라운 인연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립다. 무모함 덕분에 반짝였던 그때 그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