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그 선택을 스스로 저버리는 것 사이

by 지민

겨울이 오고 있다. 전대미문의 팬데믹과 함께 맞은 봄은 기억도 잘 나지 않고, 유난스럽게도 긴 장마와 함께 역대급 끈적한 여름을 보내고 나니 찰나 같던 가을은 즐길 새도 없이 돌연 끝나버렸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항상 하는 일이 있다. 지난 계절 내 입던 옷을 정리해 집어넣고 그 빈자리를 새로운 계절의 옷들로 채우는 것이다. 그저 반팔과 긴 팔의, 반바지와 긴 바지의 자리를 바꾸는 것뿐인데 꼭 그렇게 자리를 바꾸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매번 헌옷 수거함으로 가는 옷들이 한 무더기씩 나온다. 당시의 내가 그 옷을 산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터. 단 돈 몇만 원이든 그보다 더 비싼 것이든 어쨌거나 수많은 옷들 중에서 나름대로 엄선해 값을 치르고 산 것인데, 어느 순간 그것들은 버려야 할 것들 중 하나가 되어버린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몇 번 입어 이젠 질려버린 것이기도, 헤지고 망가져 더 이상 입을 수 없는 지경인 것이기도, 유행이 지나 촌스러워 보이는 것이기도, 기타 등등.


지난 봄과 여름 사이 여느 때처럼 또 한바탕 정리를 하고는, 이제 더 이상은 없겠지, 싶었다. 지난 겨울과 봄이 바톤터치를 하던 때에도 그랬다. 그 전에도, 더 전에도. 옷을 샀던 과거의 나와 그 옷을 버리는 현재의 나 사이에는 그저 계절 하나만 있을 뿐인데 그때마다 체를 두고 거르고 걸러내고도 또 거를 것이 생긴다.


선택을 하는 것과 그 선택을 스스로 저버리는 것이 반복되면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가 줄어들고 의심이 커진다. 내가 지금 선택하는 이것이 맞는 것일까. 조금 더 신중해야 하는 건 아닐까. 조금 지나 후회해버리는 건 아닐까. 시간이 갈수록 선택에 앞서 자문하는 횟수가 늘어나지만, 종국에 달라지는 건 없다. 사고 싶냐고 묻는 자체가 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므로.


왜 자꾸 버리는 옷이 나올까. 이만큼 쓰고 보니 이제 답을 알 것도 같다. 내가 애초에 버릴 만한 옷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고심해봤지만 여기에 대한 답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난 또 미래의 어느 순간에 헌옷 수거함으로 갈 현재의 새 옷을 고를 것이다. 그게 내가 하는 선택이라는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