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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민 Jan 05. 2022

백마 탄 왕자님이 행복을 가져다줄까?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 브리짓의 독백

2022년 새해가 밝았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지금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 더 힘겨웠던 2021년이었다. 말 그대로 제자리에서 버티느라 고생한 우리 모두에게 박수를. 눈에 보이는 것이든 볼 수 없는 것이든 우리를 끝없이 옭아매는 제약이 있는 채로 2년 여를 보냈다. 정신 차려보니 시간은 어찌어찌 빠르게 흘러가버렸지만, 결코 짧다고는 할 수 없던 그 2년. 쓸데없는 공상들로 제약과 자유 사이의 틈을 메우는 것은 뭐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 많은 잡생각들 중 그나마 소득이 있었던 것은 ‘행복’에 대한 고찰이었다. 


언젠가는 사랑만이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굳게 믿던 때가 있었다. 사랑만이 나를 구원하리라. 사랑밖엔 난 몰라. 마치 동화 같은 운명을 믿고, 행여 불꽃같은 사랑이 찾아오면 어쩔 줄 몰라하며 내일이 없는 양 굴었다. 늘 사랑에 목이 탔고 이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것은 연애뿐이라고 생각했다. 잔인하게도, 마지막이라고 믿었던 순간은 단 한 번도 마지막이었던 적이 없었다. 난 매번 연애가 끝나면 잘 읽고 있던 책의 뒷부분을 통째로 뜯겨버린 사람처럼 황망해했고, 당사자들이 떠난 자리에 덧없이 덩그러니 남은 잔상과 허공에 박제되어 버린 약속에 슬퍼했다.


어쨌거나 연애를 종교처럼 믿던 시기, 나는 늘 이상형이 있었다. 이십 대 초반 언저리엔 무려 이상형 리스트도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가 항상 최대의 관심사였다. 누군가 “이상형이 뭐예요?”라고 묻길 바랐고, 묻는 이가 있다면 기다렸단 듯 리스트를 줄줄 읊곤 했었다. 거기서부터가 잘못이었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알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알았어야 했다. 누가 좋은가보다 누구와 있을 때의 나 자신이 좋은가를 먼저 알았어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고심했어야 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홀로 새해를 맞던 서른 두 살의 브리짓(르네 젤위거)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완벽한 남자 마크(콜린 퍼스)와 연애를 시작한 그녀는 그와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며 하루하루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중. 하지만 마성의 바람둥이 다니엘(휴 그랜트)이 그녀 앞에 다시 나타나 그녀의 마음을 또 한 번 뒤집어 놓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회사 업무 때문에 브리짓과 다니엘은 함께 태국에 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브리짓은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태국에서 한바탕 소동을 겪고 겨우 런던으로 돌아온 브리짓.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뒤늦게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마크를 찾아가 그의 앞에 선다. 그리고 페루 무역 장관 산티아고 씨와 차관 헤르난데즈 씨 외 많은 사람들을 관중으로 두고 그녀는 공개 고백을 저질러 버린다. 시작은 다소 황당했지만 결론은 ‘해피엔딩’. 브리짓의 고백을 들은 마크는 프러포즈로 되갚았고, 브리짓은 도움닫기 후 마크의 품으로 뛰어든다. 마지막 장면은 마크와 브리짓의 뒷모습, 그리고 브리짓의 독백과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12월 31일, 한 해를 정리해 본다.

감옥살이: 일 점.

레즈비언과의 키스: 일 점.

몸무게 감량: 실점 하나.

남자 친구와의 결별과 대형 외교 사건을 계기로 재회: 일 점.

결혼 프러포즈: 일 점.

유난히 성과가 많은 한 해였다.

브리짓 존스는 최후의 순간에 모든 걸 거머쥐었다.

보시다시피 마침내 난 행복한 결말을 맞았다.

행복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고 믿는다.

볼링공 2개만 한 엉덩이를 가진 33살에게도."




브리짓이 규정한 ‘해피엔딩’을 여러 번 되읽으며 이십 대 시절 ‘행복’을 정의하던 나를 떠올렸다. 사랑만이, 그러니까, 백마 탄 왕자님만이 행복한 결말을 가져와 준다고 믿던 나, 그것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던 나를 말이다. 늘 누군가와 함께 해야만 행복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결국엔 행복하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와 함께라도 행복할 수 있다”던 구절을 보았다. 무릎을 탁 쳤다. 그날로부터 며칠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누군가와의 행복’이 아닌 ‘나 혼자만의 행복’은 무엇일까. 


하나, 난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무작위의 영화를 보고 행복해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장르의 것을 보았을 때 큰 행복감을 느낀다. 바로 뮤지컬 영화다. 들썩들썩 엉덩이를 가만히 둘 수 없게 만드는 음악이 잔뜩 들어간 작품을 특히 좋아한다. 물론 뮤지컬 영화만큼이나 무대 앞에서 보는 뮤지컬도 좋아한다. 둘, 난 드라이브를 좋아한다. 그리고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한다. 신나는 노래를 빵빵 틀어놓고 드라이브하며 따라 부르는 것, 그때 팡팡 도는 아드레날린은 뭐 말할 것도 없지.


대망의 셋, 난 만화책 보는 것을 사랑한다. 책도 좋고, 영화도 좋고, 노래도 좋지만, 역시 제일은 만화책이다. 몇 번을 생각해도 이것 하나는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 드는 생각이 있는데, 작은 책장을 하나 사서 좋아하는 만화책들을 모아 보는 것은 어떨까 하고 있다. 어떤 책들을 책장에 넣을까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괜히 좋아지는 요즘이다. 어쨌거나 이렇게 난 나의 행복을 찾았다. 마침내 행복한 결말을 맞았다. 그러니 행복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고 믿는다. 이 글을 보는 당신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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