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초, 미국의 'DoNotPay(두낫페이)'라는 리걸테크 업체는 형사재판 피고인이 변호인 없이 인공지능(AI)만으로 변론을 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 계획이 알려지자 변호사협회가 강하게 반발했다. 급기야 처벌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두낫페이는 계획을 철회했다.
두낫페이의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AI 변호사는 허위 광고'라며 각종 소송이 걸렸고,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지난달 두낫페이에게 19만 3000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AI 변호사의 가능성이 어느 수준인지 확인해 볼 새도 없이, 두낫페이는 관련 사업을 접은 것으로 보인다.
리걸테크를 둘러싼 갈등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올 초 프랑스에선 1년에 13만 원 정도만 내면 스마트폰으로 언제든 법률상담이 가능한 AI 'i.legal'이 출시됐는데, 역시 프랑스 변호사협회의 강한 반발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법무법인 대륙아주가 올해 3월 'AI 대륙아주'를 론칭했다가 대한변호사협회라는 벽에 부딪혀 7개월 만에 서비스를 중단했다. 현행 변호사법상 변호사가 아닌 자는 돈을 받고 법률사무를 할 수 없는데, AI 대륙아주가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변협은 대륙아주 변호사들을 상대로 징계를 추진하고 있다.
대륙아주는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판 붉은 깃발법"이라며 변협을 강하게 비판했다. 붉은 깃발법이란 19세기 영국에서 마차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의 속도를 제한했던 법이다.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를 뜻한다. 변호사 업계가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리걸테크에 족쇄를 채웠다는 비판이다.
그러자 변협은 "기술 발전을 막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있는 행위에 대한 원칙적 입장을 견지한 것"이라며 "AI에 대한 대한변협의 입장은 회원들의 총의를 수렴하고 법무부와의 협의를 거쳐 조만간 발표될 것이다"라고 입장문을 냈다.
변협의 입장에도 일리는 있다. AI는 완전무결하지 않고, 거짓 정보를 사실인 것처럼 제시하는 할루시네이션 현상도 잦다. 물론 최근에는 신뢰할 수 있는 지식 출처에서 관련 정보를 검색하는 RAG(Retrieval Augmented Generation)이란 기술을 통해 거대언어모델(LLM)이 보완되지만, 법이란 결국 인간 해석의 영역에 있기 때문에 AI의 판단을 100% 믿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 법률 조언 자체를 가로막을 건 아니라고 본다. AI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지금도 인터넷 포털에서 법률 정보를 검색하고 있다. 이 과정을 AI가 조금 더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찾아주는 정도일 것이다. 오히려 AI 상담 결과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임을 절감하고, 변호사를 더 많이 선임할 수도 있다.
이 갈등을 잠재우려면 아무래도 정부의 중재가 필요해 보인다. 그 형태는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다. 지난해 일본에선 AI가 간단한 계약 업무나 법률 조언을 할 수 있는 지침이 만들어져, 관련 산업이 방향성을 잡고 성장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이 잘 만들어지고 있는지 법무부에 직접 물어보았다. 그러자 법무부는 "변호사제도개선특별위원회의 논의를 통해 인공지능을 비롯한 리걸테크 전반에 관하여 법조실무계·산업계·학계 등 각계각층의 의견을 널리 수렴하여 객관적인 운영 기준 마련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보내왔다.
하지만 너무 늦을까 걱정이다. 생성형 AI는 언어의 장벽이 낮은 만큼 국내 법령과 판례 등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만 잘 갖춘다면, 얼마든지 해외 기업도 국내법을 대상으로 한 법률 AI를 만들 수 있다. 실제로 모 미국의 대형 리걸테크 업체는 기회만 된다면 국내법 서비스를 출시할 것이라고 내게 귀띔했다.
국내 업계와 변협이 싸우고 정부는 뒷짐 지는 사이에 해외 업체가 한국 시장을 선점한다면 얼마나 만시지탄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