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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Jun 02. 2024

AI는 발명자·저작권자가 될 수 없나

2024.5.16. 서울고등법원 2023누52088 판결 분석

가히 인공지능(AI) 만능의 시대다.


브런치 글에 넣는 삽화도 AI가 만들어준다. 시도 짓고 노래도 작곡하며 영상도 만든다. AI가 거짓 정보를 진실인 것처럼 전달하는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의 리스크가 있긴 하지만, 명령어를 세밀하게 입력하고 검토만 잘하면 오로지 인력으로 했을 때보단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AI는 신제품도 개발해 낸다. 엔비디아는 AI를 활용해 '성능은 같지만 크기는 작은 반도체'를 설계했고, 중국의 IT 기업 바이두는 AI 재설계를 통해 효능이 100배 이상 올라간 코로나19 백신을 만든 바 있다. 인간이라면 불가능하거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 일이다.


이처럼 인공지능은 창작자로서, 발명가로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행법상 AI가 저작권이나 특허권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즉 AI가 타인에게 해당 저작물과 발명품의 무단사용을 금지하고 사용료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느냐는 이슈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이에 대한 서울고등법원의 최신 판례를 분석해 보자. 미국인 스티븐 엘 테일러 씨가 개발한 AI '다부스(DABUS)' 사건이다.

2024.5.16. 특허청 보도자료 중

'다부스'라는 AI 프로그램이 '눈꽃 모양이 무한히 반복되는 프랙털 형태의 그릇'과 '신경 동작 패턴을 모방해 눈에 잘 띄는 램프'를 발명했다. (개인적으론 이 두 상품이 특허권을 받을 정도의 고도한 발명인 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는 별개의 논점이다.)


테일러 씨는 지난 2019년 16개 나라에 국제특허출원(PCT)하면서 '발명자' 항목에 다부스만 적어냈다. AI는 사실 발명의 도구일 뿐, AI 개발자나 소유자 이름을 발명자로 적는 것이 상식적일 것이다. 이에 대해 테일러 씨는 "이 발명은 인간의 아무런 개입 없이 AI가 독자적으로 도출한 건데 어떻게 거짓으로 기재하느냐"라고 재판에서 주장했다.


특허청은 특허법 상 '발명한 사람'이라는 문구를 이유로 특허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슨 말인고 하니 특허법 제33조에선 '특허를 받을 수 있는 자'로 발명을 한 사람 또는 그 승계인이라고 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사람'은 누가 봐도 자연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아닌 AI는 발명자가 될 수 없다는 논리다.


반면 개발자 측은 현행법 어디를 뒤져봐도 AI가 발명자가 될 수 없다는 문구는 없다고 주장한다. 위 '사람'이라는 문구가 AI를 배제하는 취지라고 해석할 순 없고, 애초에 특허법은 AI가 없던 시절에 만들어진 만큼 AI의 발명자성을 부정하는 근거가 돼선 안 된다는 뜻이다.


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을까? 1심인 서울행정법원과 2심 서울고등법원 모두 AI의 발명자성을 부정했다. 우리 특허법이 '발명자 주의'를 따르고 있다는 점이 주요 논거를 구성한다.


상기한 특허법 33조에 따라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권리는 발명한 사람에게 원시 귀속된다. 그런데 특허권 말 그대로 권리다. 발명을 독점해 돈을 벌 수 있고, 그에 따르는 특허침해나 손해배상 등 민·형사상 책임과 관련한 주체가 돼야 한다. 우리 민법은 이러한 권리의 주체로 사람(제3조)과 법인(제34조) 두 가지만 정하고 있다.


그런데 법원은 AI를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결합인 '물건'으로 본다. 현 수준의 AI는 인간의 명령을 통해 기존의 데이터를 이용해 결과를 내는 '약한 인공지능(weak AI)'에 불과하다는 시각이다. 만약 스스로 사고하고 결론 내는 '강한 인공지능(strong AI)'가 있다면 별론이지만, 전 세계 어디에도 현존하지 않는다고 봤다.


특허권은 발명자에 원시 귀속(발명자 주의) → 발명자는 특허권을 누릴 권리능력의 주체가 돼야 함 → 권리능력은 사람과 법인에게만 있음 → AI는 물건임 → AI는 발명자가 될 수 없음


특허청 특허제도과에 전화해서 물어봤더니 "발명자로 인공지능을 인정하면 인공지능에게 권리만 부여하고 의무를 부여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며 같은 취지의 답변을 했다.


앞서 얘기했듯 다부스 출원은 세계 16개국에 국제특허출원 됐는데, 마찬가지 과정을 겪고 있다. 미국과 유럽, 호주, 영국에선 이미 재판이 대법원을 거쳐 확정됐다. 독일 하급심에선 발명자 항목에 사람의 이름과 AI 이름을 병기하는 정도는 인정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긴 했지만 대동소이하다.


유일하게 특허가 등록된 국가가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하지만 남아공은 심사 없이 특허를 주는 '무심사 주의'를 따르는 곳이어서, AI가 발명자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별도로 내린 건 아닌 듯하다.


하지만 인간의 지시 없이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AI가 등장하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우리 법원도 강한 인공지능이 미래에 등장한다면 제도 개선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지식재산권 학계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한국지식재산연구소에 따르면, 회사의 경우 '법인격'을 인정받아 권리능력을 지닐 수 있는 것처럼 'AI 인격권'도 법제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불가능해 보이진 않는다. 회사는 명백히 자연인이 아님에도 여러 권리를 갖고 손해배상의 책임을 지거나 형벌을 받기도 한다. AI라고 불가능하진 않을 듯하다. 아마도 실제 책임은 AI와 관련된 개발자나 소유주, 회사가 지게 되겠지만 어쨌든.

2024.5.16. 특허청 보도자료 중

한편으론 AI를 권리능력의 주체로 인정하면 AI를 만드는 '빅테크' 기업에 특허권이 쏠릴 거란 우려도 있다. 우리 법원도 소송을 기각하면서 이 부분을 지적했다. 이에 대한 원고 측 입장을 변호사에게 전화해 물어봤다. 김동환 덴톤스리 변호사는 "AI 발명에 대해 특허권을 부여하면 제도권 내에서 적절한 규제를 할 수 있는 추가적인 장점을 기대할 수 있다"라고 했다. 어느정도 이해가 간다.


개인적으론 이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재 이슈는 'AI를 발명자로 인정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이념적인 논쟁일 뿐, 발명자 항목에 사람 이름만 적어 내면 AI를 이용한 발명은 얼마든지 특허로 등록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빅테크 기업에 특허권이 쏠리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연구시설과 첨단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더 많은 특허출원하고 지니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다.


우리 특허청도 현행법 때문에 출원을 무효로 할 뿐이지, AI 발명자에 대해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번 서울고등법원 판결 결과를 분석한 뒤 이번달(6월)에 열리는 세계 주요 5개국(IP5) 특허청장들과 만나 의견을 나눌 예정이라고 한다. 전향적인 논의가 오갈지 궁금해진다.



거진: 법원위스키


법원 출입기자가 늦은 밤 퇴근 후 집에서 위스키 한 잔 곁들이며 쓰는 취재일기.

제목은 '버번 위스키'에서 음을 따온 언어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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