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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Jul 07. 2022

신이 인간에게 온 모습

『포르투갈의 높은 산』얀 마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독후감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다른 해석이 무궁무진할 수도 있겠지요. 그게 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1부 집을 잃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잃고 떠난 험난한 여정 끝에 찾아낸 십자고상. 하지만 그가 바라던 모습이 아니었다.


1904년 포르투갈 리스본. 고미술 박물관 학예 보조사 토마스는 1주일 사이에 아들 가스파르와 아내 도라 그리고 아버지를 모두 잃었다. 그 충격으로 토마스는 뒤로 걷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율리시스 신부의 일기장을 발견한다.


율리시스 신부는 노예무역이 이뤄지던 17세기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노예들에게 세례를 주던 사제다. 하루는 가르시 농장에 갇힌 네 명의 콩고인을 보며 충격을 받는다. 한 여자는 끌려오던 중 상처가 곪아 죽었고, 그의 아이도 함께 숨을 거뒀다.


율리시스 신부는 살아남은 두 명을 찾아가 마가복음을 읽어줬다. 자신이 더위와 악취에 나가떨어질 때까지. 그들 중 사춘기 여자아이는 율리시스 신부의 눈을 잠시 바라보더니 신부에게서 몸을 돌렸다. 신부가 복음을 읽어준들 자신의 처지가 달라지는 건 없기 때문이었으리라.


"그 짧은 눈길은 그 순간까지 마음속에서 울려 퍼진 적 없는 비참함을 보게 만들었다. 나는 내가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고 그 감옥에 들어갔다. 나는 내가 로마 병사라는 걸 깨닫고 그곳을 나왔다. 우리는 동물보다 나을 게 없다. 오늘 내가 다시 갔을 때 그들은 죽어 있었고 시신은 치워져 태워진 상태였다. 이제 그들은 자유롭다, 내내도록 그래야 마땅한 것을." 134쪽


율리시스 신부는 주교에게 '노예 해방'을 주장한다. 자신은 '동등하지 않은 자들(노예)'을 만났고, 그 만남에서 그들이 동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우리가 그들보다 나을 게 없다고. 하지만 주교는 "하늘에는 천사들, 지옥에는 천벌 받은 자들의 위계가 있으므로 여기 지상에도 위계가 있다"며 율리시스 신부를 파문했다.


"이제 나의 사명이 무엇인지 안다. 죽음이 나를 데려가기 전에 신을 위해 이 선물을 만들 것이다. 감사하게도 가르시아의 농장에서 지옥처럼 갇혀 있는 그녀를 만났을 때 스케치를 해두었다. 그녀의 눈은 내 눈을 뜨게 했다. 나는 인간이 자초한 파괴를 증언할 것이다. 우리가 동산에서 몰락한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를!" 135쪽


위대한 깨달음 뒤 만들어진 십자고상. 토마스는 이 십자고상을 찾으면 가족을 잃은 슬픔을 채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는 태어나서 처음 본, 몰지도 못하는 자동차를 타고 십자가상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찾아 긴 여행길에 오른다.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운전도 힘들었거니와 구경꾼들이 차로 달려들었다. 차바퀴가 터지고 불도 붙었다. 여정이 길어질수록 토마스의 몰골은 짐승을 닮아갔다. 며칠이나 씻지 못한 몸에 이가 들끓었다. 그는 몸을 정신없이 긁으며 쾌감을 느꼈다. 동물처럼 소리를 질러대면서. 그는 더 이상 부잣집 도련님이 아닌 차라리 한 마리의 유인원이었다.


그는 온몸에 털이 많다. 그의 가슴 털을 쓸어내리는 도라의 손길에서 항상 위로를 받았지만 그 기억을 제외하면 털이 많은 게 혐오스럽다. (중략) 지금 이 순간 그는 가려움증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다. 그는 구두를 내던지고 양말을 벗고, 바지의 한쪽 가랑이에서 발은 뺸 다음 다른 발을 뺀다. 양손으로 엉덩이를 공략한다. 그는 동물 소리를 내고 동물 표정을 지으면서 아아아아아! 하고 신음하고, 오오오오오오! 하고 신음한다. 113쪽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가는 길, 토마스는 한 어린 남자아이를 자동차로 친다. 아이는 숨을 거뒀고 토마스는 어쩔 줄 몰라하며 현장을 벗어난다. 뒤돌아보니 한 남자가 달려와 아이를 안아 올린다. 이 남자는 2부에 나오는 라파엘이고 죽은 아이는 그의 아들이다. 토마스는 그때부터 심한 구토에 시달린다. 죽은 아이가 토마스의 몸 안에서 밀어대고 있는 것처럼.


토마스의 내면이 곤두박질친다. 그는 도둑질의 피해자였고 그리고 이제 도둑질을 저질렀다. 두 사건 모두 아이를 빼앗아 갔다. 그는 갑자기 집어삼켜지는 기분이다. 마치 그가 물 위에 떠서 버둥대는 벌레이고, 거대한 아가리가 그를 꿀꺽 삼키는 것 같다. 149쪽


포르투갈의 높은 산 일대를 뒤졌지만 율리시스 신부의 십자고상을 찾지 못했다. 토마스는 잠시 진정을 취하기 위해 투이젤루라는 마을에 들렀다. 자급자족과 물물교환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작은 마을이었다. 토마스는 우연히 한 교회를 발견한다. 그는 통증과 죄책감으로 얼룩진 슬픔을 잊기 위해 교회에 들어가려 했지만 교회 문은 잠겨있었다. 그때 마리아라는 여인이 나타난다. 마리아는 라파엘의 아내이자 죽은 아이의 어머니다. 마리아는 아직 아들의 죽음을 모르고 있었다.


친절한 마리아는 토마스에게 교회 문을 열어준다. 라파엘은 그 교회의 관리인이었다. 토마스는 마리아에게 감사를 표한 뒤 교회에 들어간다. 토마스는 이곳저곳을 구경하던 중 제단 위에 걸린 십자고상을 흘끗 보게 된다. 길쭉한 얼굴에 가늘고 긴 팔, 축소된 다리. 순간 토마스는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십자고상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그는 십자고상이 율리시스 신부가 만든 것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토마스가 묻는다. "저게 뭡니까?"
여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지요."
"여기 당신들이 갖고 있는 것은 침팬지입니다! 유인원이죠. 확실히 그의 스케치입니다. 당신들의 사람의 아들은 신이 아닙니다. 그는 십자가에 달린 유인원일 뿐입니다!" 156쪽


토마스가 보기에 십자고상의 예수는 침팬지의 모습이었다. 율리시스 신부가 가르시에 농장에서 만난 사춘기 여자아이의 모습을 본떠 만든 십자고상. 토마스는 손으로 입을 막고 도망치다시피 교회를 나온다. 그리고 생각한다.


다윈이 태어나기 오래전, 광적이지만 명석했던 한 신부는 아프리카의 외진 섬에서 침팬지 네 마리를 만났다가 대단한 진실과 마주쳤다. 우리는 진화된 유인원일 뿐 타락한 천사가 아니다. (159쪽)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인간은 평등하다. 피부색이나 얼굴 생김새, 눈 색깔은 모두 달라도 우린 모두 진화한 유인원일 뿐이다. 하느님은 자신의 아들을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보내셨다. 하지만 토마스는 유인원 예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여정 끝에 구원은 없었다. 다시 맞닥트린 현실에 토마스는 절규한다.


"아버지, 당신이 필요합니다!"


2부 집으로

늦은 밤 사무실로 찾아온 마리아의 영혼. 그리고 새끼곰과 침팬지와 함께 남편 안에서 잠드는 또 다른 마리아


1939년 포르투갈의 브라간사. 의사 에우제비우 로조라는 시신을 부검하는 병리학자다. 그는 다리에서 떨어져 숨진 여인의 시신을 부검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있었다. 그런데 누가 밖에서 문을 요란하게 두드린다. 그의 아내 마리아다. 별안간 마리아는 에우제비우에게 예수가 기적을 행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마리아에 따르면 예수의 기적은 두 부류다. 하나는 인간의 육신에 은혜를 베푸는 기적들. 맹인을 눈 뜨게 하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고 다리를 저는 사람을 걷게 하는 식이다. 기적을 입은 자는 불구에서 해방되며 큰 감동을 받는다.


두 번째 영역은 해석의 기적이다.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표현은 아니다(작품 속 에우제비우도 이해하지 못한다). 마리아는 예수가 물 위를 걷는 기적을 예로 들었다. 예수는 왜 물 위를 걸으려 했을까. 물 위를 걷는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특별한 득이 되지 않는다. 그 순간 물 위를 걸어야만 할 필요가 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예수는 기적을 보였고, 베드로는 예수를 따라 물 위를 걸어가다가 빠진다. 물속으로 가라앉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위를 쳐다보게 된다. 베드로는 예수를 보았다. 숨 막히는 어둠에 삼켜지는 순간 예수가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목숨을 건진 베드로는 예수를 공경하고 두려워하게 됐을 것이다.


그리고 마리아는 왜 예수의 대한 일들이 정확한 기록이 아닌 이야기로 구전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이야기는 인간의 정신에 은혜를 베푼다. 예수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를 감동시키며 우리의 상상력에 지문을 남김으로써 우리와 함께한다. 그래서 예수가 이야기를 타고 온 것이란다.


그리고 애거서 크리스티에 빗댄다. 마리아는 "복음서만큼 높은 도덕 수준을 보여주는 유일한 현대적 장르가 바로 저평가되는 살해 미스터리"라고 주장한다. 둘 다 '죽음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에우제비우는 침묵을 지킨다. 예수와 애거서 크리스티가 딱 맞아떨어진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에우제비우에게 애거서 크리스티의 책 『죽음과의 약속』을 선물한다. 그리고 마리아는 사무실을 나선다. 그런데 마리아는 이미 죽었다. 에우제비우가 이날 밤 부검해야 하는, 다리에서 떨어진 여인의 시신이 바로 마리아였던 것이다. 에우제비우가 아내를 잃고 정신이상을 일으킨 것일까, 아니면 마리아가 일으킨 기적일까.


"이성은 그 자체로는 우리를 어디로도 이끌지 못해요. 역경을 앞두고는 특히 그렇죠. 그 둘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야 될까요. 당신에겐 이야기가 해결책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야기는 이성을 멋지게 내보이는 동시에 당신을 나사렛 예수의 곁에 있게 하니까요. 그렇게 하면 당신은 흔들릴 지라도 신앙을 고수할 수 있어요." 200쪽


잠시 후 누가 또 문을 두드린다. 에우제비우는 자신의 아내가 다시 온 거라 생각하고 문을 연다. 문 앞에 서있는 여인은 마리아 도르스 파수스 카스트루. 1부에 나온 라파엘의 아내이자 죽은 아이의 어머니다. 에우제비우의 아내 마리아와 이름이 같지만 다른 사람이다. 저자는 '마리아'라는 이름에 어떤 의도를 담은 것일까.


마리아는 자신의 여행가방에 남편의 시신을 담아왔다. 마리아는 에우제비우에게 자신의 남편 라파엘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고 싶다며 부검을 부탁한다. 에우제비우는 부검에도 밟아야 할 절차가 있다고 설명하지만, 부검을 거절하면 마리아가 시신을 들고 이곳저곳 방황할 것이 뻔하기에 어쩔 수 없이 승낙한다.


에우제비우는 부검 순서를 설명한다. 먼저 환자의 외관을 보고 흉부를 절개한 뒤 머리를 연다. 나도 부검을 두 번 직접 본 적 있다. 메스로 환자의 가슴을 열면 누런 피하지방이 드러난다. 갈비뼈를 잘라낸 뒤 안에 있는 장기들을 플라스틱 용기에 옮긴다. 톱질로 이마를 뚜껑처럼 열어 뇌를 조심스럽게 꺼낸다. 그밖에 근육의 상태를 살피며 물리적 충격이 있는지 등을 살핀다.


그런데 마리아는 "발에서 시작하세요"라고 주문한다. 에우제비우는 순간 자신이 제대로 들었는지 헷갈린다. 포르투갈어로 'pé'는 '발'을 의미하고 'fé'는 '신앙'을 의미한다. '신앙에서 시작하세요'라고 말한 건 아닐까? 근데 또 그건 무슨 뜻인가 에우제비우는 생각한다. 신앙에서 시작하라니,


'그리스도의 몸은 다른 데 있다. 여기에는 그저 인간의 몸이 있을 뿐이다.' 237쪽


마리아의 거듭된 주문에 에우제비우는 시신의 발바닥을 가르기 시작한다. 그러자 갈라진 틈으로 토사물이 나온다. 마리아는 예상했던 대로라는 반응이다. 마리아는 아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라파엘은 자신의 친구 일터에 아들을 데려갔다. 그런데 라파엘이 한눈 판 사이 아들은 토마스가 모는 자동차에 부딪혀 죽었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라파엘은 아들이 왜 죽었는지 모른 채 비탄에 잠긴다.


그때 마리아는 투이젤루에 있었고, 토마스는 아이를 죽인 죄책감에 토악질을 해댔다. 우연하게 교회에서 만난 두 사람. 마리아는 토마스가 자신의 아이를 죽인 남자라는 사실을 몰랐다. 토마스도 이 친절한 여인이 자신이 죽인 아이의 어머니란 사실을 알 턱이 없다. 침팬지를 닮은 십자고상을 보고 실망한 토마스가 또다시 토악질을 해댄다.


죽은 아이를 안고 마을로 돌아온 날 라파엘은 뒷걸음질 치며 마을을 떠나는 토마스를 목격한다. 라파엘 역시 토마스가 자신의 아이를 죽인 남자인지 모르던 상태다. 라파엘도 그때부터 뒤로 걷기 시작한다. 아들 가르파스를 잃고 뒤로 걷기 시작한 토마스처럼. 라파엘은 아이가 죽은 후 아이를 '새끼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닌 동면하고 있다고 믿었다.


에우제비우가 메스로 라파엘의 흉부를 열자 그 안에서 침팬지 한 마리와 갈색 새끼곰이 나온다. 새끼곰은 침팬지에 안겨있는 모습이다. 마리아는 에우제비우에게 침팬지의 털을 조금 잘라달라고 부탁한 뒤 가방에 담는다. 이후 옷을 모두 벗고 라파엘의 몸 안쪽으로 누워 침팬지와 새끼곰을 끌어안는다. 그리고 에우제비우에게 몸을 꿰매 달라고 부탁한다.


라파엘의 몸 안에 있던 침팬지는 신을, 새끼곰은 그의 죽은 아들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토사물은 토마스가 게워낸 것일지 모른다. 그의 인생에서 중요했던 것들이 죽음으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안에 영원히 간직된 것이다. 에우제비우의 아내 마리아가 말한 것처럼 신이 행한 기적일지도 모른다.


라파엘의 몸을 꿰맨 에우제비우. 서류철에 부검에 대해 기록하다 잠든다.


라파엘 미구엘 산투스 카스트루, 83세, 포르투갈의 높은 산 투이젤루 출신


3부 집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슬픔. 그리고 침팬지에게서 얻는 위로.


3부의 배경은 1980년대의 캐나다, 주인공은 피터 토비 상원의원이다. 그도 아내 클래라의 죽음으로 1, 2부의 남편들처럼 상심에 빠진다. 동료 상원의장은 피터에게 기분 전환할 겸 미국 오클라호마 출장을 권한다. 오클라호마에 도착한 피터는 동물원에 가고 싶어 하지만 동물원은 마침 문을 열지 않았다. 대신 침팬지 보호소에 가기로 한다.


피터는 그곳에서 침팬지 '오도'를 만난다. 3부에도 침팬지가 등장한 것이다. 다만 이번엔 일반적인 진짜 침팬지다. 피터는 오도에게 단 번에 끌렸다. 오도의 눈은 무언가를 원하는 듯해 보였다. 피터는 직원의 경고도 무시하고 오도에게 다가가 손을 잡는다. 피터는 충동적으로 오도를 사겠다 제안한다.


피터는 침팬지와 함께 살 장소를 고민하다가 포르투갈을 떠올렸다. 포르투갈 태생 피터는 두 살 때 캐나다로 이민 왔다. 그의 부모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 출신이었다. 그곳엔 아직 먼 친척들이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널찍하고 인적 드문 조용한 곳이라면 침팬지와 살기 맞을 것이다.


결국 피터는 정치를 비롯한 자신의 인생을 캐나다에 두고 오도와 함께 포르투갈로 향한다. 무작정 투이젤루 마을에 도착한 피터. 막상 지낼 집이 없었다. 피터는 마을 주민들에게 살 집을 하나 구해달라고 청한다. 주민들은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2층짜리 집을 소개해준다.


전깃불도 전화도 없는 곳이지만 피터는 만족한다. 오도와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주변을 탐험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오도는 피터 대신 냄비 안의 죽을 휘젓기도 하고 잡지를 탐독하기도 한다. 오도의 본질이 힘센 짐승인 만큼 두려울 때도 있지만 오도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사교성이 좋아 마을 유명인사가 됐다.


이제 피터는 캐나다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같은 종인 인간은 그에게 피로만 안겨준다. 인간은 시끄럽고 성미가 까다롭고 너무 오만하며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도의 곁에서 느끼는 강렬한 고요가, 대단히 간결한 수단과 목적이 더 좋다. 하루는 그의 여동생 테레사가 전화로 묻는다.


"종일 그거랑 뭐 하는데?"
"우린 산책을 해. 가끔 레슬링도 하지. 주로 그냥 빈둥거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피터?"
"나도 몰라. 그게…." 그게 뭐 어떻다고? "…흥미로워."
"흥미로워?"
"그래. 사실 온 마음을 사로잡아."
"그거랑 사랑에 빠졌군." 364쪽


피터는 사랑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항상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집중할 것을 요구하는 사랑. 그들은 서로의 털을 골라준다. 황홀한 경치를 말없이 함께 바라본다. 피터가 죽은 아내의 사진을 보고 흐느끼면 안아주고 위로한다. 피터는 말을 할 줄 알고, 인지능력을 가졌고, 구두끈을 묶을 줄 알지만 그건 단순한 기술에 불과하다.


어느 날 피터의 아들이 그를 찾아 온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 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오도가 책 한 권을 가져온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죽음과의 약속』이다. 2부에서 에우제비우가 자신의 죽은 아내 마리아로부터 선물 받은, '죽음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오도는 가축우리에 있던 옷 가방에서 책을 발견했다. 라파엘의 아내 마리아가 남편의 시신을 들고 온 뒤 그의 시신에서 나온 물품을 담아놨던 그 가방이다. 이 책은 3부에서 복선으로 작용하는게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가방에서 검은 털이 나온다. 피터는 그 털이 오도의 털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이 털은 40여 년 전 라파엘의 몸 안에서 발견된 침팬지의 털이다. 두 침팬지는 모두 오도였던 것일까, 아니면 단순한 피터의 착각일까. 만약 오도의 털이 맞다면 오도는 일반적인 침팬지가 아닌 초월적인  존재인 것인가.


피터는 '라파엘 미구엘 산투스 카스트루, 83세, 포르투갈의 높은 산 투이젤루 출신'이라고 적힌 종이를 발견한다. 라파엘은 피터 할아버지의 형제였다. 죽은 라파엘의 아들은 피터 할아버지의 조카가 되는 셈이다. 피터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의 가족의 집에 돌아와 살고 있던 것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피터와 벤은 자신들의 뿌리를 확인하기 위해 마을의 교회를 찾아간다. 교회엔 라파엘의 아들 사진이 보관되어 있었다. 아이의 죽음은 당시 미스터리로 남았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가 입은 상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상처와 흡사하다고 하여, 신이 아이를 데려갔다고 생각했다. 이후 아이는 마을 사람들에게 특별한 존재로 여겨졌다.


교회 안을 둘러보던 피터와 벤은 십자고상을 발견한다. 침팬지의 형상을 한 예수다.


교회에서 나온 피터와 오도는 산책길에 나선다. 그런데 별안간 오도가 동요를 일으키더니 큰 바위 위로 순식간에 달려간다. 그러다니 피터에게 손을 흔들며 따라올라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피터는 그렇게 다급해 보이는 오도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마치 무(無)에서 태어난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개인적인 존재, 고유한 존재, 침팬지로부터 올라오라고 요청받은 존재.


겨우 바위 위로 올라온 피터.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는다. 알고보니 바위 아래쪽에 전설의 동물 이베리아 코뿔소가 있었다. 오도가 자신을 다급히 부른 이유였다. 피터와 오도는 서로를 마주 보며 씩 웃는다. 하늘은 파란색, 빨간색, 오렌지색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 순간 피터는 자신이 나직이 흐느끼고 있음을 깨닫는다.


피터는 더 높은 바위로 올라간다. 그의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린다. 똑바로 앉아있기조차 힘에 부친다. 오도가 몸을 돌려 피터를 껴안는다. 한쪽 팔로 피터의 등을 감싸고, 다른 팔로 피터의 두 팔을 받친 채 세워진 무릎을 끌어안는다. 마치 라파엘의 몸 안에서 새끼곰을 껴안고 있던 침팬지처럼.


그렇게 피터는 오도의 품 안에서 숨을 거둔다. 오도는 피터를 바위의 평편한 곳에 가만히 눕힌 뒤 슬픔에 겨워 기침을 해댄다. 오도는 반시간쯤 피터 곁을 지킨 뒤 바위를 내려가 벌판으로 나간다. 잠시 피터가 누워있는 큰 바위를 돌아본 뒤 몸을 돌려 이베리아 코뿔소가 있는 방향으로 내달린다. 책은 이렇게 끝난다.


신의 모습


1부를 다 읽은 뒤 2부 책장을 넘기면 혼란이 찾아온다. 갑자기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단편소설집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그런데 2부 중후반으로 들어가면 '뭔가가 이어진다'는 느낌이 다. 마리아 도르스 파수스 카스트루가 자신의 죽은 아이를 설명하는 부분부터다.


알쏭달쏭함이 느낌표로 바뀔 것 같다가도 이내 물음표가 뜬다. 죽은 라파엘의 몸 안에서 침팬지와 새끼곰이 나오는 장면은 미스테리다. 좌우간 왜 사람의 몸에서 침팬지와 곰이 나오는가. 이것이 작품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때까지만 해도 침팬지라는 소재는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않았다.


3부에선 침팬지와 함께 사는 남자 이야기가 전개된다. 침팬지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보니 그 존재를 중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난 이때까지도 침팬지의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1부의 율리시스 신부는 콩고에서 잡혀온 흑인 노예의 모습을 본떠 십자고상을 만든다. 토마스는 십자가상의 예수를 보고 침팬지 또는 유인원이라고 생각한다. 토마스는 콩고 원주민의 모습이 유인원에 가깝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마리아에게 "당신들은 예수가 아닌 침팬지에게 기도를 해온 것"이라며 "당신들의 '사람의 아들'은 신이 아니다"라고 소리친다.


교리에 따르면 하느님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셨다. 그렇다면 예수는 백인의 모습일까 아니면 아시아인이거나 흑인일까. 율리시스 신부의 말대로 인간이 평등하다면, 예수의 피부색이 하얗든 노랗든 검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리고 긴 팔에 짧은 다리, 길쭉한 얼굴을 가졌다고 해서 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마리아도 속으로 대꾸한다.


예수님이 유인원이라면 그러라지 뭐. 그는 유인원이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신의 아들'이다. 157쪽


그렇다. 신의 아들은 유인원의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라파엘의 몸 안에 있던 새끼곰과 침팬지는 무엇일까. 신의 아들이 라파엘의 죽은 아들을 껴안고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라파엘의 신앙과 아들에 대한 사랑이 그의 몸 안에서 현현하는 기적을 일으킨 것이라고.


그럼 3부의 오도 또한 유인원의 모습을 한 신의 아들인지 궁금해진다. 오도가 피터와 어울리는 모습이 일반적인 침팬지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가 신묘한 기적을 행하는 것은 아니다. 오도는 그저 피터와 함께 자연을 탐방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털을 고른다. 그리고 피터가 슬플 때 그를 가만히 안아준다. 피터는 그런 오도에게서 큰 위안을 얻는다. 클래라의 사후 텅 빈 것 같았던 인생이 오도로 인해 충실해졌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적 아닐까.


그러자 1, 2, 3부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게 됐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그리고 방황하는 과정에서 신의 아들을 만다. 다만 각자 이야기의 마지막이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힘들 때 그 곁에 신의 아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인간이 절망할 때 독생자는 자신의 모습을 나타낸다. 그리고 구원으로 가는 길을 드러낸다. 그 길을 걸을지 말지는 인간의 선택에 달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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