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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Nov 01. 2022

이미 태풍이 된 강원도의 날갯짓

레고랜드發 회사채·기업어음 시장 경색 이슈 이해하기

강원도가 레고랜드 사업을 진행한 강원중도개발공사(GJC)의 보증채무를 1215일까지 갚겠다고 10월 27일 발표했. 강원도는 "채권자를 비롯한 금융시장의 부담을 덜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지속 검토하고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왔다"며 "금융시장 안정에 대한 '책임'을 느낀다"라고 했다. 강원도가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만기일을 하루 앞두고 GJC 회생신청 계획을 발 9월 28일 이후 한 달 만이다.


허나 강원도의 기자회견과 상관없이 자금시장 경색 상황은 현재 진행형이다. 현시점을 기준으로 사태의 전말을 하나의 글로 쭉 정리보고 싶었다.


레고랜드 사업은 최문순 강원지사 시절인 2011년부터 추진되기 시작했다. 사업은 GJC가 맡았다. GJC는 레고랜드 테마파크를 건설하기 위해 2012년 설립된 강원도 산하 회사다. GJC는 레고랜드 사업 자금을 조달하 특수목적법인(SPC) 아이원제일차를 설립, 2021년 11월 아이원제일차에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받는 식으로 2050억원의 건설자금을 마련했다. 아이원제일차는 이 대출채권을 담보로 ABCP를 발행해 투자자들에게서 돈을 모았다. 여기에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섰다. 만기일까지 GJC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강원도가 대신 아이원제일차에 돈을 지급하구조다. 그 덕에 해당 ABCP는 최상급인 'A1' 신용등급을 받았다.

출처: 한국신용평가
특수목적법인(Special Purpose Company)이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법인이다. SPC를 설립한 모기업의 재무 상태에 영향을 받지 않고, SPC가 돈을 빌려도 모기업의 빚으로 잡히지 않기에 운신이 자유롭다. 설립 목적이 달성되면 언제든지 쉽게 청산할 수 있다. 유동화전문회사라고도 한다.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란 SPC가 단기자금 조달을 위해 자산을 담보로 발행하는 기업어음이다.

자산유동화(Asset-Backed)란 각종 대출채권이나 매출채권, 부동산 기타 다양한 형태의 자산을 담보로 잡아 돈을 마련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현금화되지 않은 자산을 현금으로 바꾸는 것이다.

기업어음(Commercial Paper)은 기업이 일정기간 뒤에 갚을 것을 약속하면서 돈을 끌어올 때 발행하는 증서다. 보통 만기가 1년 이내로, 단기자금을 마련하는 방법 중 하나다.

그런데 레고랜드 사업이 잘 풀리지 않으면서 GJC는 자력으로 2050억원을 갚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강원도에 따르면 2050억원에 대한 이자만 연 100억원이 넘고, GJC의 확정 수익은 레고랜드 입장료 2억원(연간 입장객 수 200만명 기준)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기반 시설 공사, 유적공원·박물관 건립 추진에 따른 사업비가 추가로 필요해 향후 적자가 누적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강원도는 덧붙였다.


이에 강원도는 "2050억원을 대신 갚는 사태를 방지코자 GJC에 대해 회생 신청을 하겠다"며 9월 28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생 절차에 들어가면 법원이 지정한 법정관리인이 기업을 대신 관리하고 새 인수자를 찾게 되는데, GJC의 자산을 잘 매각하면 대출금을 갚을 수 있을 거란 취지다. 김진태 강원지사는 "도가 안고 있는 2050억원의 보증 부담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번 회생 신청의 목적"이라고 했다. 요약하자면 도의 보증채무 최소화 전략이다.


기자회견 하루 뒤, ABCP 만기일인 9월 29일 아이원제일차는 GJC에 대해 기한이익상실(EOD)을 통지하고 강원도에 지급금 지금 의무 이행을 촉구했지만 강원도는 이날 자정까지 이행하지 않았다. 결국 ABCP는 부도 처리됐다.


이후 기업어음 금리와 신용 스프레드(회사채와 국고채 금리 차이)는 13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신용 채권 금리가 올라갔다는 건 시장 참여자들이 느끼는 투자 위험도가 높아졌다는 뜻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니까. 하지만 많은 이자에도 불구하고 신용 채권은 팔리지 않았다.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는 상황에서 만기가 긴 채권에 돈을 묶어두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작동했다. 이 와중에 초우량 등급에 금리까지 매력적인 은행채와 한전채가 그나마 없는 시중 자금을 빨아들였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한 ABCP가 부도났다'는 소식까지 퍼지 채 시장경기를 일으켰다. 안 그래도 고물가·고환율·고금리로 인화물질이 곳곳에 뿌려진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강원도가 불을 댕긴 거다.


돈줄이 말랐다. 10월 회사채 순발행액이 마이너스 4조8000억원을 넘어섰다. 즉, 회사채를 산 투자자에게 기업이 돌려줘야 할 돈이 4조8379억 원에 달한다는 뜻이다. 같은 기간 장내외 채권 거래금액은 355조 원으로 계산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12월 채권 거래 규모(372조 원) 보다 쪼그라들었다. 통상 채권 거래금액은 400조~600조 원 규모였다.


유동성이 좋지 못한 기업들 사이 '줄도산' 공포가 퍼졌다. 10월 19일엔 '○○회사, △△회사가 위기에 처했다'거나 '금융위원회가 시중은행 자금담당 임원을 긴급 소집했다'는 내용의 증권가 정보지가 돌아다니기도 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나니까 우리 같은 일반기업 회사채는 쳐다도 안 보게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 롯데건설이 주주배정 유상증자로 2000억원을 조달하고, 롯데케미칼에서 5000억원을 차입했다는 공시는 증권가 정보지를 더욱 극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여의도 증권가에선 '이렇게 금융시장에 대해 무지할 수 있느냐'며 강원도에 대한 원망이 터져 나왔. 증권업계는 저금리가 이어지던 기간에 PF-ABCP를 발행하며 부동산 개발사업에 투자해왔다. 그런데 이번 레고랜드 사태로 시장에서 ABCP가 외면받자 위기에 몰린 것이다. 연말까지 만기가 오는 증권사 보증 ABCP 규모가 27조원인데, 차환발행에 실패한 증권사들은 이 돈을 떠안게 된다. PF 비중이 높거나 유동성이 좋지 않은 증권사를 중심으로 부실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정보지가 돌아다닌 다음날 강원도 담당 부서에 전화를 걸어 '금융시장에 파장이 갈 줄 몰랐느냐'라고 물었더니 "다각적으로 검토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검토는 했지만, 2050억원에 대한 강원도의 예산 부담 최소화가 더 중요했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이런 '눈덩이 사태'까지 예상했는지는 모르겠다.


마른 들판에 불길 번지듯 공포가 확산하자 강원도는 10월 21일 오후 4시에 기자회견을 열었다. 채권시장 투자자 보호 및 금융시장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2050억원의 도 예산을 편성, GJC 보증채무를 늦어도 내년 1월 29일까지는 이행하겠다는 내용이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더 이상 '불필요한 혼란'이 없길 바란다"면서 기자회견을 마쳤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중앙 정부가 옆구리를 찔렀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10월 23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 왼쪽부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

하지만 이후에도 '불필요한 혼란', 혹은 '불가피한 혼란'은 계속됐다. 급기야 일요일인 23일 추경호 부총리를 위시한 경제·금융 수장들이 긴급히 모여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진행, 50조원 이상의 유동성 공급방안을 발표했다. 그러자 곳곳에서 '2050억원짜리 호미로 막을 걸 50조원짜리 가래로 막게 됐다'는 탄식이 나왔다.


물론 강원도 입장에서는 억울한 측면도 있을지 모르겠다. 엄밀히 말하면 강원도가 보증채무를 아예 부정한 것은 아니다. 다만 GJC의 회생신청을 통해 도가 갚아야 할 빚을 기술적으로 줄이려던 건데, 이 방식이 신용 시장에 미칠 파장까진 예측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어쩌나. 강원도의 날갯짓은 이미 태풍이 됐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일각에선 앞으로 한두 번의 유동성 위기가 더 올 수도 있다는 우려 나온다. 내년까지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5% 선까지 올릴 가능성이 큰데, 우리나라도 어느 정도 따라 올릴 수밖에 없는 만큼 돈줄은 더 말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태풍이 완전히 지나 뒤 강원도가 느낀 '금융시장 안정에 대한 책임'은 과연 어느 정도의 무게로 평가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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