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현장에서 05화

가난한 이들의 프로메테우스

종로 여관 화재 현장 취재

by 정준영
그런데 대개 불에 삼켜지는 건 가난한 사람들이다.


허름한 여관에서 성매매 여성을 요구한 남자

토요일 새벽이었다. 수습기자 훈련은 주말에도 이어지지만 평일보다는 첫 보고 시간이 1시간 늦다. 물론 1시간은 찰나와 다름없지만 '주말'이라는 단어가 주는 여유로운 느낌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느긋해졌다. 이런 걸 보면 역시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게 맞는가 보다. 어디선가 비극이 벌어진 것도 모르는 채.


새벽 3시 6분쯤, 서울 종로 5가에 있는 ‘S 여관’에서 불이 났다. 이미 '방화로 추정된다'는 보도가 타전됐다. 5명이 숨을 거뒀고 5명이 다쳤다. 추후 사망자는 6명으로 늘었다. 주말의 여유로움은 산산이 부서졌다. 정신 없이 택시를 잡아 희푸른 새벽을 달려 현장으로 향했다.


여관은 승용차 한 대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좁은 골목에 있었다. 소방차는 가까이 들어오지 못했다. 정육점소방호스가 골목 한가운데서 꿀렁거렸다. 소방대원과 경찰, 기자 그리고 주민들이 한데 뒤엉켰다. 불은 대부분 잡힌 상태였다. 경찰 통제선에 최대한 붙어 육안으로 건물 내부를 살피려 했지만, 동트기 전 칠흑 같은 어둠에 가려 전혀 분간할 수 없었다.


뒤늦게 도착한 만큼 빠르게 상황 파악을 해야 했다. 이럴 땐 경찰이나 소방보다도 목격자를 찾는 것이 급선무다. 사건 초기엔 상황을 가장 곁에서 목도한 사람의 증언이 가장 큰 정보 가치를 지닌다.

지난 2018년 1월 20일 새벽 불이 난 서울 종로구 S 여관 / 직접 촬영

맞은편 다른 여관 사장에 따르면 웬 술 취한 남자와 S 여관 주인 사이 시비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불이 났는데 1층부터 3층까지 순식간에 타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기름을 뿌려 불을 붙였구나 싶었단다. 범인은 그 술 취한 남자가 맞았고 금방 잡혔다. 불을 지른 뒤 스스로 112에 전화를 걸어 자수했던 것이다.


기자들은 주변 CCTV를 샅샅이 뒤졌다. 조각조각 찾아낸 영상으로 퍼즐을 맞추듯 남자의 행적을 완성해 냈다. CCTV엔 남자가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사 오는 모습, 여관에 불을 지르고 골목을 빠져 나오는 장면, 경찰에 자수한 뒤 체포되는 순간까지 고스란히 담겼다.


그런데 남자는 태연한 모습이었다. 흥분하지도 절망하지도 않았다. 마지막엔 마치 친한 친구를 기다렸다는 듯 손을 흔들어 경찰차를 세우고 제 발로 차에 탔다. 경찰 조사에서 남자는 ‘여관 주인에게 성매매 여성을 불러달라고 요구했는데 거절당해 화가 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 당시 취재진이 ‘사람이 죽을 거라고 생각 안 해봤느냐’고 묻자 남자는 “죄송합니다” 한 마디 대꾸하고 법정으로 향했다. 인생에서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사람이 보이는 태도다. 아니면 사이코패스거나.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불에 삼켜지는 건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


인류는 불을 발견하고 다룰 수 있게 되면서 다른 생명체보다 번영할 수 있었다. 불은 날것의 음식을 익히고 추운 방을 덥혀주며 기계를 움직이는 힘을 제공했다.


인류는 불을 살아있는 존재로 여겼다. 불은 주변 나무나 들판, 집을 먹어 치웠다. 주변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며 불꽃은 덩치를 키우고 새끼 불꽃을 만들어냈다. 먹거리가 떨어지면 불꽃은 생을 마감했다.


불꽃의 먹거리엔 인간도 포함된다. 인간의 세포는 불에 닿으면 비가역적인 변성을 일으킨다. 화상을 입고, 심하면 한 줌 뼛가루만 남게 된다.


그런데 대개 불에 삼켜지는 건 가난한 사람들이다. S 여관은 불에 취약한 목조 건물로, 건축된 지 반세기가 넘었다. 스프링클러는 없었다. 1층 창문은 방범 창살로 막혀 있었고 비상구는 잠겨 있었다. 화재 이튿날 종로 5가 주변 다른 여관을 돌아본 결과 사정은 비슷했다.

S 여관 화재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 / 직접 촬영

희생자 대부분은 월 45만 원짜리 ‘달방’에 장기 투숙하던 일용직 근로자나 노점상 등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사망자 중엔 전날 지방에서 올라온 세 모녀도 있었다. 34살 젊은 엄마는 14살, 11살 두 딸에게 서울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저렴한 숙소를 알아보던 중 하루 1만 5000원짜리 S 여관을 발견했다. 세 모녀는 서울에 도착한 첫날 S 여관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날을 고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청했겠으나, 세 모녀는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일주일 만에 발생한 화재, 그곳도 가난한 이들의 보금자리였다.


참사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건만 시간은 무심히 흘러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됐다. 월요일 새벽, 사건을 좇아 경찰서를 옮겨 다니던 중 소방차가 몰려있는 곳을 발견했다. 좁은 골목에 소방호스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여기저기 흥건한 물웅덩이는 혹한 속에서 빙판으로 변했다.


종로구의 한 쪽방촌에서 불이 난 것이다. 이번에도 화재는 가난한 이들의 보금자리를 덮쳤다. 쪽빵촌은 취사 시설이 열악해서 부탄가스를 많이 쓰는데, 그만큼 불도 잘 나고 잘 번진다.


새벽 3시 18분 서울 종로구 피신한 주민 10여 명은 자신들의 무사에 안도하면서도 불의 온기를 그리워했다.

지난 2018년 1월 22일 새벽 불이 난 서울 종로구의 한 쪽방촌 /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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