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이었던 경제전문지에는 사건팀이 없었다. 그래서 수습기자들에게 하리꼬미 대신 남대문시장으로 꽤 오랫동안 출퇴근 시켰다. 시장을 밀착 관찰하면서 르포르타주(르포)를 작성해보란 취지에서다.
르포란 기자가 현장을 탐문하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생동감 있게 적어내는 기사의 한 종류다. 어려울 것 없어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과제였다. 남대문시장에서 무슨 강력사건이 일어난다면 모를까, 평화로운 시장에서 기사가 나올지 의문스러웠다.
그런데 성급한 생각이었다.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으로서의 모습은 평범하기 그지없지만, 시장이라는 시스템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니 흥미로운 부분이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노점상들은 그 큰 리어카를 어디에 보관하고, 나이 지긋한 상인들은 그 무거운 것을 어떻게 끌고 다니는 것일까? 알고 보니 건당 몇 천 원씩 받고 아침저녁 리어카를 옮겨주는 건장한 남성들이 있었다. 그밖에 덩치 크고 험악한 인상의 경비원(우리는 ‘왕주먹’이라고 불렀다)이나 쓰레기를 처리하는 미화원, 화재 진화를 담당하는 소방대 등 시장엔 상인 말고도 다양한 구성원이 존재했다.
특히 시장 골목 곳곳에 야트막한 책상을 놓고 하염없이 앉아계시는 할머니들이 있다. 책상 위에는 계산기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가만 보면 물건을 팔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른바 '거리의 환전상'들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쓴 달러를 상인들이 모아 오거나 원화나 외화가 필요한 관광객들이 돈을 바꿔간다.
정식 환전소에선 환율에 일정 수수료가 더해지지만 할머니들은 그런 것 없이 조용히 계산기를 두드린 뒤 금액을 제시한다. 어떤 할머니는 환전소보다 유리하게, 어떤 할머니는 짜게 쳐준다.
할머니들이 남루해 보여도 실은 현금부자들이란 소문도 있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100달러 환전하면 100원 정도만 남는데 무슨 부자가 되겠느냐"며 손사래를 친다. 혹자는 할머니들이 모은 외화가 어둠의 루트로 흘러간다는 음모론도 제기한다.
사회부장에게 환전 할머니를 소재로 기사를 쓰겠다고 했다가 "애먼 사람 밥줄 끊을 일 있느냐"라고 잔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나는 시장의 '지게꾼'으로 소재를 바꾸고 며칠 동안 그들을 관찰했다. 아래는 내가 작성한 르포 기사 습작이다.
<지게꾼이 들어올린 남대문시장>
“어이, 지게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건장한 사내 여럿이 상가 계단을 앞 다퉈 오른다. 2등이나 3등은 의미가 없다. 오로지 1등만이 일감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무질서해 보이는 지게꾼들의 세계에도 규칙은 있었다. “지게꾼도 순서가 있다”는 유명한 말은 남대문시장이 기원이다. 그들은 절대 남의 일감을 가로채거나 훔치는 일이 없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인생이지만 규칙은 엄중했다.
지게꾼은 시장 가장 깊은 곳까지 스며든 사람들이다. 오토바이가 제아무리 날쌔도 계단을 오르거나 좁은 골목을 누빌 수는 없다. 지게꾼들은 그 우직한 발걸음으로 어느 곳이라도 갈 수 있었다. 그들은 시장의 '피' 같은 사람들이다. 피는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물질을 신체 곳곳으로 전달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피가 통하지 않는 곳은 썩어버리고 만다.
“짐 한 번 옮기는데 3000원 받아. 그렇게 한 달을 일하면 150만 원이나 벌까 말까…”
30년 경력의 지게꾼 예순다섯 살 신 모 씨는 E동 꽃상가에서 짐을 나른다. 용달로 상가 앞까지 배달된 생화를 3층 꽃매장과 옥상 창고로 옮긴다. 한정된 시간에 최대한 벌려면 한 번에 많은 짐을 옮겨야 한다. 그래서 신 씨는 지게 하나에 자신 몸집의 두세 배 되는 짐을 싣는다. 흡사 묘기를 보는 것 같다.
“옛날에는 지게꾼들 엄청 많았죠. 경쟁도 심했고. 근데 이젠 얼마 안 남았네요.”
대도 E동에서 꽃상가를 운영 중인 정 씨가 회상했다. 정 씨 말대로 지게꾼은 30여 년 전 150명에서 2017년 현재 14명으로 그 수가 대폭 줄었다. 오토바이 택배가 보편화되면서 경쟁력이 줄어든 것도 요인이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재래시장의 몰락 때문이다. 남대문과 명동 일대에 백화점과 마트가 속속 들어서면서 시장을 찾는 손님이 줄었다.
2016년 9월부터 시행된 ‘김영란법(청탁금지법)’에 따른 화환 시장 침체도 큰 영향을 줬다. 중국과 외교 마찰이 발생할 때마다 중국 손님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2017년 3월의 남대문시장엔 일감을 만나지 못한 지게들이 C동과 D동 상가 사이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상가 계단을 오르는 지게꾼 / 직접 촬영
“지게꾼이 없어지는 날이 남대문시장이 망하는 날이야.”
지게꾼 신 씨의 말이다. 지게꾼이 물건을 나르지 않는다는 것은 물건이 팔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각종 언론은 지게꾼을 통해 남대문시장의 침체를 논한다. 대화가 끝나자 신 씨는 무릎을 꿇어 어깨에 지게를 걸쳤다. 지팡이를 이용해 있는 힘껏 몸을 일으킨다. 지팡이를 쥔 팔뚝에 힘줄이 굵게 선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는다. 천천히, 그러나 우직하게. 지게꾼이 짊어진 건 남대문시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