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에서 먹고 자는 생활이 한 달 넘어갈 즈음 평창 동계올림픽 취재진으로 파견됐다. 경기 내용을 다루는 건 아니었고 올림픽 관련 이모저모를 취재하는 것이었다. 김이 새긴 했지만 아무튼 좋았다. 하루에 두 시간씩 자며 한파 속에서 경찰서를 전전하는 것보단 무조건 나았기 때문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88 서울 올림픽 이후 대한민국이 30년 만에 개최하는 2번째 올림픽이자 최초의 동계올림픽이었다. 또 여자 아이스하키가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하고 한반도기를 들고 남북 선수단이 공동 입장키로 하면서 화제가 됐다.
회사차를 타고 서울에서 평창까지 이동하는 동안 잠귀신에 굴복해버렸다. 평소 수면이 절대적으로 모자란 탓이다. 동행하는 선배 눈치가 보였지만 불가항력이었다. 수습기자 시절엔 언제 어디서든 단 몇 초 만에 잠들 수 있었다. 버스나 택시 등 교통수단을 탈 땐 물론이고 심지어 야외 벤치에 드러누워 한 시간 가까이 자본 적도 있다. 지나가는 사람이 이상하게 여겼겠지만 남의 시선을 신경 쓰기엔 그때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우리가 현지에서 묵을 숙소는 외진 산자락에 동떨어진 2층 통나무집이었다. 어떤 기업 재벌이 지어 별장으로 쓰다가 팔아버린 곳이란다. 마당엔 큰 개와 닭, 오리가 있었다. 오리가 그렇게 사나운 동물인 줄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 허벅지 정도는 올 정도로 큰 오리가 꿱꿱거리면서 돌진해오는데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대충 여장을 푼 뒤 강릉아트센터로 이동했다. 하늘은 눈 시리게 쨍한 파란색이었다. 거리에선 올림픽 분위기가 물씬 났다. 세계 각국의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고, 형형색색의 겨울 스포츠웨어를 입은 외국인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센터에선 IOC 총회 개회식이 열릴 예정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오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개회식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첫 번째 미션은 올림픽 자원봉사자들을 취재하는 것이었다. 당시 숙소나 셔틀버스 운영 등에 불만을 품은 자원봉사자들이 개회식을 보이콧한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취재는 쉽지 않았다. 그들의 반응은 날씨만큼이나 쌀쌀했다. 기자라고 소개하자 본 체 만 체 그대로 지나쳤다. 언론과 접촉하지 말라는 내부 방침이 있었을 것이다. 유의미한 멘트는 따내지 못했다. 선배의 판단에 따라 자원봉사자 취재는 접기로 했다.
강릉항. 만경봉 92호는 이곳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 직접 촬영
그다음 강릉항으로 이동했다. 이튿날 북한 예술단이 ‘만경봉 92호’를 타고 올 것으로 예측되는 항구 중 하나였다. 북한 응원단이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생활하는지 국내외 언론의 관심이 쏠려 있었다. 북한 응원단을 취재하는 것이 우리가 투입된 목적이었다.
북한 응원단은 항구에 도착한 뒤 배에서 먹고 잘 것이라고 했다. 이는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과 입항을 금지하는 '5·24 조치' 때문이었다. 이에 따르면 배가 우리나라 해역에 들어오는 것조차 불가능했지만 정부는 올림픽이니만큼 예외를 만들겠다고 했다.
언론은 만경봉 92호가 어디로 들어오는지 알아내려 혈안이 돼있었다. 촬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안을 이유로 일정은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는 주변에 있는 항구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주민과 어민을 만날 때마다 붙잡고 물었다. 혹시 북한 선박이 온다는 얘길 들어봤느냐고. 하지만 소득은 없었다. 우리 회사는 만경봉 92호가 들어올 곳으로 강릉항과 속초항이 가장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아쉽게도 실제 북한 배는 다른 곳으로 들어왔다.
첫날 일정을 마무리한 뒤 마트에서 간식거리를 샀다. / 직접 촬영
선배 기사가 마무리된 뒤 다 같이 마트에 들러 간식거리를 샀다. 숙소에 돌아오니 펜션 사장님 내외가 저녁밥을 해놓으셨다. 갓 지은 흰쌀밥에 갖가지 반찬으로 오래간만에 푸진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경찰서에 있을 땐 보통 아침엔 편의점, 점심엔 패스트푸드, 저녁은 김밥천국 같은 적당한 식당에서 해결하곤 한다. 그야말로 눈물 콧물 젖은 밥이 아닐 수 없다.
따뜻한 물로 샤워한 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펜션은 장작을 때워 난방을 했다. 훈훈한 온기와 함께 땔감 타는 냄새가 매캐하게 퍼졌다. 소파에 앉아 저녁 뉴스를 보는데 몸이 노곤 노곤한 것이 순간 놀러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울에서 경찰서를 전전하고 있을 동기들을 생각하니 혼자만 호사를 누리는 것 같아 미안했지만, 뭐 어쩌나 인생은 각자 팔자 아닌가.
북한 사람들. 살면서 다시 보기 힘든 취재원일 것이다. 대학교 때 새터민들을 만나본 적은 있지만 아예 북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말은 통하지만 체제가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 이들을 상대로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떤 모습을 담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내일은 만경봉 92호가 들어온다. 과연 입항하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을까. 강원도에서의 하루가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