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이 강릉아트센터에서 공연을 열기로 했다. 살면서 북한 공연을 언제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티켓 구매는 하늘의 별따기요, 중고거래 플랫폼에선 암표 거래가 성행했다.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언론은 북한 예술단원의 일거수일투족을 포착하려 애썼다. 특히 공연 레퍼토리에 '모란봉'과 '백두와 한나(한라)는 내 조국' 두 곡이 담겼는지를 파악하는 게 관건이었다. ‘태양조선 하나 되는 통일이여라’ ‘혁명의 수도’ ‘사회주의 건설 좋을시구’ 등 체제 선전 가사가 포함된 노래들이다.
전날 모 일간지 기자 한 명이 아트센터 내부에 숨어들어 공연팀의 연습 장면을 취재하다 쫓겨났다. 이런 경우엔 다른 언론사에게까지 불똥이 튄다. 이후로 건물 주변 경비가 더 삼엄해지면서 취재가 더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건물 주변을 돌며 보안이 허술한 곳을 찾아다녔다. 기자들은 이를 '개구멍'이라고 불렀다. 그러던 중 어느 환풍구에서 음악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관현악이 흘러나오기도 했고 아리랑 합창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여분으로 가져간 스마트폰의 녹음 애플리케이션을 켜서 환풍구 주변에 세워놨다. 다만 문제의 체제 선전 노래는 들리지 않았다. 녹음한 음악을 선배에게 보고했다. 신문이나 통신기자였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길 일도 방송기자에겐 소중한 취재 소스가 된다.
보이는 사람마다 붙잡고 북한 예술단원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소공연장에서 점심 거르고 연습하더라"는 공연장 관리자의 말을 듣고 무작정 잠입했다. 뒷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몸이 한껏 긴장됐다. 왠지 기자임을 대번에 들킬 것 같아 불안했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았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어두운 곳으로만 몸을 숨겨 다녔다. 얼마나 안쪽으로 잠입했을까, 무대에서 고수 북소리에 맞춰 부채춤을 추는 사람들이 보였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어 회사에 보고했다. 부장은 "수습이 큰 건 했다"며 치하했다. 곧바로 시사프로그램에 영상을 틀겠다고 한다. 하지만 미심쩍은 마음에 재차 확인해보니 북한 예술단이 아닌 일본인 공연팀이었다. 특종을 하고 싶은 욕심에 사실 확인을 소홀히 한 탓이다. 체면이 구겨졌다.
이후 다른 개구멍을 찾으려 부지런히 돌아다녔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결국 공연이 시작될 때까지 연습장면은 포착하지 못했다. 실제 공연에서 예술단은 'J에게'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등 남한 가요와 '달려가자 미래로' 등 북한 노래, 유명 팝송을 불렀다. 문제의 노래는 등장하지 않았고 공연은 훈훈한 분위기 속에 마무리됐다.
허탈한 기분이었다. 이날 만큼은 뭔가 해내고 싶었다. 기자들은 '단독'취재에 매달린다. 누구나 쓸 수 있는 기사는 요즘처럼 언론이 홍수 시대에 별 의미가 없다. 당시 수습기자였기 때문에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더 컸다.
돌아간 관현악단, 남은 지푸라기는 응원단뿐
남한에서 계획된 두 차례 공연을 마친 삼지연관현악단은 육로를 통해 북한으로 돌아갔다. 평창엔 북한 응원단만이 남았다. 국내 언론들은 응원단에 모든 취재 역량을 집중 시켰다. 이날 응원단은 북한 알파인스키팀 경기에서 첫 야외 응원을 선보일 예정이었지만 강풍 탓에 경기가 취소됐다. 경기가 없으니 응원단도 나올 일이 없다. 종잡을 수 없는 일정이었다.
계획이 틀어졌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었다. 매일 밤 뉴스는 진행된다. 뭐라도 취재해야 했기에 응원단 숙소인 인제 스피디움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차로 한 시간 반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현장엔 비슷한 생각을 하고 온 취재진이 벌써 한 가득이었다. 기자들은 어떻게든 건물 가까이에 붙어 북한 응원단의 육성을 따기 위해 안간힘이었다. 우리도 숙소를 올려다보면서 마이크를 하늘 높이 쳐들었다. 그런데 딱히 물어볼 건 없었다. 북한 응원단원의 목소리라면 ‘아무 말’이라도 상관없었다.
"경기 취소됐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올림픽 일정은 재밌나요" "손 한 번 흔들어주세요" "안녕하세요"
그야말로 아무 말 대잔치였다. 하지만 단원들은 언론을 흘깃 쳐다보기만 할 뿐 대꾸하지 않았다. 그렇게 또 별 소득 없는 하루가 지나갔다. 그런데 근본적인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북한 응원단을 대상으로 무슨 말을 듣고 싶었던 걸까. 북한 응원단은 왜 남한 취재진을 상대로 아무 말도 해선 안 되는 걸까.
식당으로 줄지어 이동하는 북한 응원단 / 직접 촬영
언론만큼 북한 응원단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집단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보수단체다. 이들은 북한 경기가 있는 날마다 집회를 열었다. 특히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경기엔 경기를 일으켰다. 북한이든 남북 단일팀이든 어느 경기도 없는 날이었다. 간만에 쉴수 있겠다 싶었지만 오산이었다. 갑자기 북한 응원단이 나들이를 나온다는 소식이 돈 것이다. 경포대 해수욕장과 오죽헌 관광 일정이 구체적으로 나왔다. 아마 전략적으로 흘린 정보였을 가능성이 컸다. 부리나케 경포대로 향했다. 국내 언론은 물론이고 외신까지 경포대는 취재진으로 바글바글했다.
경포대 해수욕장에서 북한 응원단을 기다리는 취재진 / 직접 촬영
영상취재기자 선배는 "남들과는 다른 그림을 찍어야 한다"며 경포대 주변 한 호텔 옥상을 섭외했다. 비밀작전하듯 다른 언론사 몰래 호텔 옥상으로 장비를 옮겼다. 경포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그곳에서 북한 응원단이 줄지어 오는 모습과 그들을 둘러싼 취재진 무리를 촬영할 수 있었다.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래사장 위를 이동하는 개미떼 같았다. 응원단은 붉은 개미, 취재진은 검정 개미.
경포대 해수욕장으로 나들이 온 북한 응원단 / 직접 촬영
원거리 촬영을 마친 뒤 땅으로 내려왔다. 그간 국정원과 경찰의 철통 보안 속에 가까이 갈 수 없었던 북한 응원단을 드디어 마주했다. 정말 코앞이었다. 연예인을 만나더라도 이처럼 기쁘진 않았을 것 같다. 취재진이 북한 응원단 주변을 둘러싸고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한 기자가 응원단에게 "바다를 보니 느낌이 어떠냐"라고 묻자 한 단원이 “기자 선생 분들이 너무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주변에서 폭소가 나왔다. 재치 있는 대꾸였다.
응원단은 강릉의 한 웨딩홀에서 점심을 먹었다. 뒤늦게 도착한 우리는 정신없이 뷔페 안으로 들어가 카메라를 돌렸다. 그런데 좀 의외였다. 단원들은 밖에서완 달리 무덤덤한 얼굴로 접시에 음식을 담고 먹고 마셨다. 경포대에서의 '자본주의 미소'는 온데간데 없었다. 아, 이 경우엔 '사회주의 미소'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어찌 보면 그들도 지금 '소울리스(영혼 없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 테니까.
강릉의 한 웨딩홀 뷔페에서 식사하는 북한 응원단 / 직접 촬영
한참 영상을 찍고 있는데 국정원 직원들이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다"며 제지했다. 우리는 떠밀리듯 건물 밖으로 쫓겨났다. 주차장에선 식사를 마친 북한 취재진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식후땡' 문화는 인류 공통인가 보다. 그들은 전부 짙은 갈색의 스키복을 입고 있었다. 참고로 북한엔 민영 언론이 없고 관영 언론과 선전매체뿐이다. 기자라기보다는 군인처럼 느껴졌다.
식사를 마친 뒤 흡연하는 북한 취재진(오른쪽)과 남한 취재진(왼쪽) / 직접 촬영
응원단의 다음 행선지는 오죽헌이었다.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집이다. 이곳에서도 북한 응원단과 밀착해 있을 수 있었다. 경호라는 것이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새카만 취재진 떼가 붉은 행렬에 들러붙었다. “오죽헌 어때요” “나들이 나온 기분 어때요” “한 마디만 해주세요” 목이 터져라 외치는 모습이 마치 구애하느라 개굴개굴 울어대는 개구리 떼 같았다. 단원들은 그저 웃으며 손을 흔들 뿐이었다. 구경은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이었다. 인천국제공항 무빙워크에 올라선 것처럼 정해진 코스를 지나칠 뿐이었다. 몇몇 단원이 전시품에 호기심이 동해 발걸음이 느려지기라도 하면 곧 따라오는 행렬에 등 떠밀리곤 했다.
그들의 발길이 멈춘 곳은 오죽헌 내 너른 공터였다. 눈 깜짝할 새 응원단은 공연 복장으로 갈아입고 손에 악기를 들고 나타났다. 깜짝 공연이 펼쳐졌다. 응원단은 관악기와 타악기로 ‘반갑습니다’ 등 북한 가요를 연주했다. 레퍼토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을 보니 사전에 기획된 게 분명해 보였다. 주변으로 구름 인파가 몰렸지만 대부분 취재진이었고 일반인들은 때마침 오죽헌을 구경하고 있던 몇 명이 고작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언론을 위한 일정이었던 것이다.
북한 응원단의 깜짝 공연 / 직접 촬영
궁금했다. 서로 보여줄 건 보여주고 취재할 건 취재하면 되는 일 아닌지. 쉬운 일을 왜 이렇게 변죽을 울리며 밀당하듯 해야 할까. 또, 남한 취재진은 북한 응원단의 어떤 모습을 담고 싶었던 걸까. 옛날에는 자신들보다 못살았으나 지금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부유해진 남한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는 북한 사람들의 표정을 원했던 걸까. 북한 사람들은 시종일관 웃는 얼굴 너머로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꼈을까.
생긴 것도 같고 같은 말을 하지만, 대화할 수는 없는 남북의 사람들. 이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