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온 지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다니. 반면 달력을 한 장 넘기며 벌써 한 달이나 지났냐는 엄마의 말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우리가 얼마나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 표현이었다.
보름이 지난 후 우린 예정대로 다음 목적지를 향해 떠났다. 어깨가 내려앉을 만큼 무거운 70리터 배낭을 짊어 드는 건 아직도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보름이라는 시간은 짧지 않지만 그렇다고 길지도 않았다. 호스트들과 정들만하면 헤어지는 게 조금 아쉽긴 했으나 나는 내심 떠나는 날을 기다렸다. ‘다음 목적지에는 내 또래 친구가 있을지도 몰라’, ‘제대로 운영되는 농장에 가게 될지도 몰라!’와 같은 실낱같은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우린 밀턴 케인즈Milton Keynes 근교에 있는 레드필드 공동체Red field Community에 도착했다. 방이 60개나 되는 커다란 대저택에 넓은 부지를 공동으로 임대하여 생활하는 도시형 주거 공동체였다.
공동체 구성원인 데이빗은 노란 수선화로 흩뿌려진 정원을 지나 농장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양을 키우는 목장과 닭장, 작은 과수원, 직접 지었다는 작은 패시브하우스(에너지절약형 주택)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주름마다 깊게 흙물 박힌 손을 가진, 꿈에 그리는 농부는 보이지 않았다. 레드필드 사람들은 대부분 근교 도시로 나가 직장생활을 한다고 했다. 그 많은 농사 거리는 그들의 취미란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복도까지 마중 나온 갓 구운 토스트 냄새에 이끌려 부엌까지 다다랐다.
금발의 숏컷을 한 여성이 내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저는 멘디라고 해요. 반가워요. 지난밤에 잠은 잘 잤어요? 지내면서 필요한 게 생기면 언제든 말해요.”
이어서 멘디는 공동 부엌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달걀은 바로 앞 닭장에서 아침마다 당번이 꺼내 온 거에요. 마음껏 드세요.”
냉장고 옆 찬장 바구니 안에 달걀마다 제각각 다른 연필 글씨로 수확한 날짜가 적혀있었다. 멘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입맛을 다시며 식구들 숫자만큼 달걀을 집어 들었다.
프라이팬에 촤르르 익어가는 노른자 위로 탱글탱글 윤기가 흘렀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먼저 맛본 프라이 맛은 나를 추억 속에 잠기게 했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이 맛은 친구들과 농장에서 키우던 암탉들이 낳은 달걀 맛과 똑같았다.
뒤쪽에서 요리하던 데이빗이 정체불명의 연보라색 핸드메이드 주스를 권했다. 수상쩍어 처음에는 혀끝으로 살짝 맛보고, 즉시 빈 잔을 만들어 버렸다. 환상적이었다. 직접 기른 블랙베리와 레드커런트, 라즈베리로 만들었다고 했다.
‘계란, 꿀, 양고기, 각종 야채 게다가 과일까지라… 전업 농부도 이렇게 알뜰하게 자급하기 어려운데….’
나는 입안에 남은 열매 씨앗들을 오독오독 깨물며 생각했다. 어제까지 가졌던 실망은 없었던 걸로 하기로 했다.
19세 여동생은 학교를 자퇴하고,
53세 엄마는 교회를 그만두고,
55세 아빠는 밭을 맡기고,
26세 나는 가족과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어려운 가족(이라는)여행
성질부리는 큰 딸이 302일 간 기록합니다.
숨겨둔 장면은 여기에서
https://www.instagram.com/travel_of_fami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