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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첸 Dec 09. 2018

#08  런던에서 브루더호프까지  


  런던 한복판을 걷는 동양인 가족. 무지막지한 배낭을 들고 한 줄로 걸어가니 다들 그 모습을 보고 웃거나 놀라더라. 길잡이 역할을 맡은 내가 가끔 뒤를 돌아봐도 웃음이 났다. 암탉 뒤를 졸졸 쫓는 병아리들 마냥 배낭이 차례로 씰룩씰룩. 

  이틀간 런던에서 숨 고르기를 한 우리들은 첫 번째 호스트를 만나러 다시 배낭을 짊어맸다.

  나는 처음 와본 영국임에도 현지 여행 가이드처럼 숙소에서 기차역까지 정확하게 길을 안내했다. 아빠는 못내 따라가기만 하는 게 불안했는지 기차 시간을 재차 확인하며 지도를 놓지 않았으나 나의 철저한 준비성은 가족들이 한 치 오차 없이 제시간에 기차에 탑승할 수 있도록 했다. 

  대도시를 지나 널따란 들판이 펼쳐지고, 기차 속 따뜻한 기운이 이른 아침부터 긴장했던 우리들을 금세 노곤하게 만들었다. 동생은 등받이에 머리를 숙인 채 바로 골아떨어졌다. 뒤에 앉은 엄마도 숙면 중. 나는 눈을 꿈뻑 꿈뻑, 내려야 할 곳을 놓칠라 기차가 설 때마다 매번 화들짝 일어나 밖을 살폈다.


  “방금 톤브리지Tonbridge 역이었어.”


  아빠만 유일하게 깨어 있었다. 비행기에서도 잠을 자지 못한 아빠의 눈꺼풀은 매우 무거워 보였다.

  

  “내가 볼게. 아빠는 좀 자.”


  아빠는 못 들은 척 고개를 휙, 괜찮다는 말을 꼭 그렇게 했다.      








  로버트브리지Robertsbridge 역에 내렸다. 한 숨 깊이 들이마시니 봄기운 섞인 시골 공기가 강원도 우리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우리를 마중 나온 젊은 부부의 복장이 심상치 않다는 건 배낭을 업고 나서야 알았다. 여자가 머리에 쓴 하얀 민무늬 두건은 백 년 전 물 길러 나온 아낙네를 떠올리게 했다.


  “저는 제롬이라고 해요. 옆에는 제 아내 칼멘이에요. 반가워요.”


  아빠보다도 훨씬 큰 키의 젊은 부부는 길을 안내하겠다며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갔다.

  낯선 외국인을 따라가는 초행길은 아직 잠에서 덜 깬 상태처럼 얼떨떨했고, 길가에 나란히 심긴 활엽수 가지는 앙상하나 왠지 모를 따뜻함이 느껴졌다. 낮은 들판을 따라 내려가며 우리들은 곧 첫 번째 목적지인 브루더호프Bruderhof 공동체를 한눈에 담았다. 몇 백 년은 되어 뵘직한 측백나무들 사이로 빨간 벽돌이 켜켜이 쌓아 올려진 집들이 세모 반듯하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새 집집마다 주홍 불빛이 저녁을 맞이했다. 300여 명의 공동체 식구들이 모두 모이는 식사시간, 은은한 촛불과 작은 꽃병이 자아낸 분위기는 영화 해리포터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꼬마아이부터 노인들까지 수백 명이 우리가 자리에 앉기까지 환영의 인사를 건네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환대를 받아보기는 처음이라 어색한 내 볼때기는 움찔움찔. 과분한 첫 신고식이었다.









학교를 떠난 19세 고3 동생
교회를 떠난 53세 목사 엄마
밭을 떠난 55세 농부 아빠
집을 떠났던 26세 오춘기 나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어려운 가족(이라는)여행
1년 간의 유럽가족여행기는 매주 토요일마다 찾아옵니다.

사진은 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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