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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Apr 04. 2023

인간적으로 영식은 까지 말자

4정수가 본 나는 솔로 13기

1.

나는 솔로 13기의 영식은 37세의 역도 코치이다. 과거 국가대표로 활동했던 경험이 있고, 역도계의 올타임 레전드 장미란 선수와도 누나 동생 하는 사이이다. 재테크도 잘 해서 부산에 아파트 두 채를 갖고 있다. 


그가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는 영숙(34세, 약사)이다. 첫인상 선택부터 최종 선택을 하루 앞둔 지난주 방송분(3월29일)까지 쭉 영숙 뿐이었다. 아마 다음 회차에도 그럴 것이다. 그런 영숙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영식은 많은 노력을 했다. 영숙을 위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도 했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정성스레 쓴 편지와 꽃다발을 주기도 했다.


MC들은 그런 영식의 모습을 너무나 다정다감하고 스윗하다며 칭찬했다. 그런데 네티즌들의 반응은 좀 달랐다. 퐁퐁남이다, 직업도 안정적이지 않고 키나 외모도 특출나지 않으니까 약사 마누라 얻어서 셔터맨 되어보려고 발악한다, 상철이나 영수처럼 전문직이면 굳이 그렇게 안해도 여자들로부터 아침 식사를 대접받지 않냐, 여자한테 먼저 숙이고 들어가는 건 베타 메일이나 하는 짓이다, 하는 반응이었다.


2.

물론 일리있는 말이다. 남녀 관계에서는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다. 아쉬우니까, 더 보고 싶으니까 더 많은 시간과 노력, 감정 에너지를 들인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대체로 실패한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해서 나를 온전히 사랑해주는 사람, 내게 맞춰주는 사람을 원하다가도 막상 그런 사람을 만나면 금방 질려버린다. 그리고 내게 맞춰주지 않는 사람, 속내를 보여주지 않고 애매하게 구는 사람, 나를 애타고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에게 끌린다. 그래서 짝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자기가 슬픈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왜 내 진실된 마음을 몰라주는 건지, 한 번만 나를 돌아봐주면, 내가 널 사랑하는 10분의 1, 100분의 1만큼이라도 날 사랑해준다면 평생 행복하게 해줄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웃긴 건, 그런 그들조차도 자기를 사랑해주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똑같이 행동한다는 것이다. 내 진실된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누군가를 원망하면서도 막상 다른 누군가가 내게 진실된 마음을 표현하면 질려 한다. 어떤 이들은 그 마음을 이용하기도 한다. 섹스 파트너 관계로만 지내거나, 비싼 선물 사주는 물주로 써먹기도 한다. 결국 모두가 똑같다. 구애를 하는 쪽이라고 선한 게 아니고, 받는 쪽이라고 악한 것도 아니다. 연애에는 선과 악이 없다. 더 매력적인 쪽과 덜 매력적인 쪽이 있을 뿐이다.


영식도 마찬가지다. 영식이 더 돈이 많고 키가 크고 잘 생겼더라면, 영숙 정도의 여자는 발에 채일 정도로 인기가 많았더라면 영숙에게 숙이고 들어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물론 영숙도 다르지 않다. 이 곳 솔로나라에서는 영식이라는 사람을 평가하고 그의 마음을 받아줄지 말지 결정하는 '갑'의 위치에 있지만 그녀 역시 '을'의 연애를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잘 생기고 키 크고 돈 많고 잘 노는 어떤 남자에게는 영숙 역시 너무나 쉬운 여자였을지 모른다. 저들이 말하는 "영식은 선한 사람이 아니다, 선해야만 하는 사람, 선한 거 말고는 내세울 게 없는 사람일 뿐이다"라는 말은 이런 뜻이다.


3.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건 아니다. 세상에 100%의 절대선과 절대악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선과 악이라는 관념 자체가 무의미한 건 아니다. 현실 세계에 부처님이나 예수님, 조커나 한니발 렉터는 없지만 어느 정도 좋은 사람과 어느 정도 나쁜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꽤나 명확하다. 남을 위하는 건 선이고, 남을 희생시켜서 제 이득을 챙기는 건 악이다. 유치원생만 돼도 다 아는 것이다. 설령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거라고 해도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거액을 기부하는 건 대단한 일이다. 학폭 가해자나 연쇄 살인범에게도 인간적인 면모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선하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영식은, 좋은 사람이다. 물론 그가 공자님 같은 성인군자는 아닐 것이다. 게으름을 피울 때도 있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무시할 때도 있고, 누군가를 속일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대체로 좋은 축에 속하는 사람이다. 제일 일찍 일어나서 남들이 먹고 즐긴 술자리의 뒷정리를 하는 것, 망신당하고 버려질 걸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설령 카메라 앞이라고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4박 5일 24시간 내내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4.

그런데도 많은 이들은 영식을 폄하한다. 그건 아마 우리가 전통적 가치가 무너진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릴 적 부모님과 선생님들에게 근면하고 성실하게 살라고, 남을 배려하고 겸손하게 행동하라고 배워왔다. 그땐 정말로 그게 통했다.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면 집을 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집을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차라리 코인 한 방에 인생을 거는 게 더 확률이 높은 세상이 되었다. 미디어도 변했다. 이제 러브 하우스나 만원의 행복 같은 프로그램은 없다. 돈 많은 이들이 대놓고 돈 자랑을 하는 세상이 되었다. 대단히 잘나거나 돈이 많지는 않지만 자기 위치에서 우직하게 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이제 설 자리가 없어졌다.


그리고 남녀 갈등은 이런 도덕적 냉소주의를 더욱 부추겼다. 우리 바로 윗세대까지만 해도 영식의 접근법은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자신의 진실된 마음을 보여주고, 여자는 그 마음을 받아주는 건 가장 정석적이고 이상적인 형태의 남녀 관계였다. 중세의 기사들은 여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마상창 시합을 벌였고, 음유시인들은 아름다운 노랫말로 사랑을 고백했다. 헌화가의 목우노인은 수로부인을 위해 절벽에 핀 꽃을 꺾어다주었다. 원래 다 그런 거였다. 그런데 그걸 성갈등의 프레임에서 해석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자가 원치 않는 성적 접근은 강간과 같다, 그런데 여자들은 못생긴 남자를 원치 않는다, 따라서 못생긴 남자가 여자를 쳐다보는 건 시선 강간이며, 못생긴 주제에 여자에게 접근하는 건 남자로서의 지위를 악용하여 여자를 성적 대상화하는 여성혐오다, 하는 식의 요상한 논리를 펼치는 이들이 생겨났다. 이제 못생긴 남자들은 거절당하는 것도 억울한데 잠재적 성범죄자라는 오명까지 쓰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피해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들을 대신해 여자들을 혼내줄, 그들 앞에서는 구름 위의 천사인양 고매한 척하던 여자들의 추악한 욕망의 민낯을 까발려줄 알파 메일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런데 영식은 그 반대다.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여자들의 뚝배기를 깨주기는커녕 자기만 바라보는 해바라기라는 여자들의 로망을 실현시켜준다. 그래서 꼴보기 싫은 거다.

출처: 유튜브 촌장엔터테인먼트

5.

이제 내일이면 최종선택이다. 영철이 간파했듯, 아마 영식은 영숙의 최종 선택을 받지 못할 것 같다. 방송 촬영이 끝나고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만나고 있을 가능성은 더욱 낮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것의 소중함을 너무나 쉽게 잊는다. 그래서 내게 헌신하는 사람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서 진실된 마음은 대체로 실패한다.


하지만 성공과 실패, 이득과 손해와는 상관없이 정직하게 행동하는 것,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 하는 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가 멋진 남자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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