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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Apr 27. 2023

영호는 왜 첫날부터 포기했을까?

4정수가 본 나는 솔로 14기

나는 솔로 14기 영호는 43세의 서울시 공무원이다. 남중, 남고, 공대, 군대를 다녀와서 시공회사를 다니다 공무원이 되었다. 그가 마음에 두고 있는 건 옥순, 38세의 전직 승무원이자 현직 한국어 강사로 40대 특집의 유일한 30대다.


그는 첫인상 선택으로 옥순을 선택하고, 첫날밤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옥순과 1 대 1 대화를 시도한다. 그는 옥순에게 첫인상 선택을 혹시 자기를 뽑았는지, 자기가 다가간다면 마음을 열 여지가 있을지 묻는다. 하지만 옥순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자기는 모두에게 열려있는 상태이며, 시간이 된다면 대화를 할 수 있을 것도 같다는 모호한 말로 대화를 끝맺는다.


대화를 마친 영호는 출연진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공용 거실로 가서 자기는 옥순을 포기했다고 선언한다. 다른 출연자들이 아직 첫날일 뿐이고, 자기 소개도 안 했는데 너무 성급한 게 아니냐고 묻자 시간이 4박 5일 뿐이라 빨리 빨리 해야 한다고 답한다. 그리고 속이 상했는지 혼자 술을 마시다 들어가서 옷을 벗고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며 잔다. 이런 그의 행보에 MC들은 놀라워한다. 데프콘은 오랜만에 재미있는 사람 나왔다며 즐거워한다.


그런데 영호의 접근법은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솔로나라라는 장소에 맞지 않을 뿐이다. 나이트 클럽에 가면 웨이터가 부킹을 해준다. 하룻밤에 적게는 대여섯 명에서 많게는 열다섯 명 정도의 여성과 매칭이 된다. 그런데 이 중 한 명과도 제대로 연결이 되기 어렵다. 나이트 클럽이라는 공간의 특성 때문이다. 이 곳은 매우 시끄럽고 어둡다. 서로 제대로 된 대화를 하기도, 상대방의 스타일이나 외모, 매력을 알아보기도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느낌이 전부다. 5초 만에 서로 끌리지 않으면 이후에 어떤 노력을 해도 의미가 없다. 시간 낭비, 술 낭비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느낌이 통하지 않으면 바로 보내야 한다. 만약 느낌이 통하지 않는 여자에게 술을 따라주고, 대화를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같이 놀러온 친구가 아래 그림 같은 표정을 지으며 입모양으로 말할 것이다. '야, 빨리 빨리 보내!'


물론 그가 나이트에서나 할 법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건 아니다. 현실 연애에서도 영호의 행동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남녀가 소개팅을 할 때는 보통 한 끼 식사나 커피를 같이 하며 시간을 보낸다. 짧게는 두어 시간에서 길게는 한나절을 같이 보낸다. 상대방을 알아보기에, 자기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하지만 그건 그날 그 자리 한정이다. 만약 내가 상대방에게 남자로서 충분한 설렘과 안정감을 주지 못했다면 두 번의 기회는 없다. 집에 가서 연락을 해보면 벌써 연락이 안 된다. 연락을 받더라도 반응이 미적지근하다. 그 다음 만남이 이어질 확률은 매우 낮으며 설령 만나더라도 잘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영호처럼 하는 게 맞다. 빨리 빨리 해야 한다. 안 되는 건 접어야지, 되지 않을 걸 붙들고 있는 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가 딱 하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게 있다. 이곳에서의 4박 5일은 생각보다 길다는 것이다. 보통 소개팅이 2~3시간이라면, 이곳에서의 시간은 24시간 내내 이어진다. 4박 5일이면 100시간이 넘는다. 그 시간 동안 보여줄 수 있는 건 무궁무진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간밤에 출연자들이 어질러놓은 거실을 치우는 부지런함을 보여줄 수도 있고,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건강한 삶의 태도를 보여줄 수도 있다. 요리를 할 줄 안다면 요리실력을 뽐낼 수도 있고, 다른 출연자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분위기를 이끄는 리더십을 보여줄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한 번 거절을 당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현실 소개팅에서는 연락처를 차단 당해버리면 애프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지만 여기서는 할 수 있다. 내가 옥순을 데이트 상대로 선택한다면 옥순은 좋건 싫건 나와 데이트를 해야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장점을 가졌는지 보여줄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여기서는 천천히 해도 된다.


내가 그보다 잘나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나도 촬영할 때는 몰랐다. 4박 5일 뒤면 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고, 이 안에 있는 6명의 여자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카메라가 이런 나의 찌질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있다고 생각하니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많은 바보짓들을 했다.


하지만 그게 이 프로그램의 참맛이다. 한 번도 카메라 앞에 서본 적이 없는, 남들의 눈에 자기가 어떻게 비춰질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진짜 일반인들의 진솔한 모습을 보기 위해 우리는 수요일 밤 10시 30분에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일 뿐이다. 그의 행동은 하나도 이상한 게 아니다. 우리도 다들 그렇게 하고 있으며, 우리가 저기에 나가더라도 다들 저렇게 할 것이다. 그러니 그를 너무 이상한 사람 취급하지는 않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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