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이 어떻게 영업을 하나요?
아쉬운 소리 못하는 남자가 회사 생활을 하는 법
요 며칠 동안에는 거래처 외근을 다녔다. 신제품 출시에 대비하여 시장 조사를 하러 간 것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거래처 원장들은 처음 보는 본사 직원에게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정보를 공유하지도 않았다. 철저히 피상적이고 비즈니스적인 대화만 오갔다.
실마리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풀렸다. 그냥 물어보면 되는 것이었다. 본사 마케팅 PM인 나는 내가 맡고 있는 제품에 대한 모든 걸 책임지지만, 각 영업 담당자들은 전국에 있는 치과 중 극히 일부만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 거래처에 대해서는 훨씬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작년에 마케팅으로 직무를 바꾸기 전까지 가깝게 지내던 영업 사원 몇 명에게 물어보자 내가 며칠 동안 발로 뛴 것보다도 깊이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내성적인 편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나 용건이 없는 사람에게는 잘 말을 걸지 않는다. 꼭 말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머릿속으로 수십 번 쯤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겨우 말을 건다. 전화를 하는 것도 힘들어서 웬만하면 카톡으로 하는 걸 선호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영업을 해왔다는 걸 의아해했다.
"INFP가 영업을 해요? 영업은 외향인만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영업은 내가 해본 일들 중 제일 잘 맞았다. 잠시 본사에서 영업 관리 직무를 하다가 상사와의 갈등으로 영업으로 밀려난 적도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커리어는 그때부터 잘 풀리기 시작했다. 영업부 선배들도 다들 학부 연세대 나온 주변 머리도 없고 오지랖도 없는 인간이 영업을 하는 걸 의아해했지만 영업은 의외로 할만 했다.
영업은 나 혼자 하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업은 일대일, 각개 전투다. 거래처는 내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나는 그 요구를 들어주면 된다. 그러면 거래가 유지되고 실적이 나온다. 오늘 당장 물건을 팔지 않으면 큰 일이 나는 상황이 아니라면, 내가 거래처에 무언가를 부탁할 일은 거의 없다. 아쉬운 소리를 할 일도 없다.
반면 사무직은 다르다. 팀플레이다. 내가 주문서를 올리면 팀장님은 승인을 해줘야 하고, 물류팀에서는 물건을 내보내야 하며, 영업 사원은 그 물건을 들고 가서 거래처에 팔아야 한다. PM, Product Manager, 이 품목의 매니저인 나는 그 모든 과정에 관여해야 한다. 그러려면 부탁을 잘해야 한다. 팀장님, 승인 좀 해주세요, 물류팀장님, 물건 좀 빨리 내보내주세요, 영업 담당자님, 잘 좀 팔아주세요, 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영업보다 사무직이 훨씬 더 넓은 오지랖과 사교성을 필요로 한다.
흔히 영업을 가리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고 하는데, 생각해보면 사람을 상대로 하지 않는 일은 없다. 오히려 영업이 제일 사람을 덜 상대하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 거래처 원장 하나만 상대하면 되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좋건 싫건 나는 사무직이다. 내일도 나는 머릿속으로 미리 스크립트를 짜보고 심호흡을 몇 번 한 뒤에 전화를 걸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