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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밖에 안팔 거야?

신박한 아이디어가 안 나오는 이유

by 김선비
세스 고딘은 “마케팅을 보면서 누군가 불편해한다는 건 흠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마케팅이 현상을 바꾸는 데 실패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나이키는 시대가 원하는 ‘공정’과 ‘정의’라는 키워드를 그들의 브랜드에 접목했다. 잠시 논란은 있었지만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곧 밀레니얼들이 소비로 그들을 지지해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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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업무를 하면서 가장 답답한 건 회사는 항상 모순된 걸 원한다는 것이다. 많이 팔기 위한 계획을 가져가면 너만의 신박한 아이디어가 없다고 하고, 정말로 신박한 아이디어를 가져가면 그거 밖에 안 팔 거냐고 한다.


많이 팔기 위한 신박한 아이디어, 어찌보면 당연한 요구 같기도 하다. 많이 파는 건 좋은 거고, 신박한 것도 좋은 거니까. 그런데 신박한 아이디어로 많이 파는 건 불가능하다. 어려운 게 아니라, 정말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신박한 아이디어란 남들이 생각하거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대담하고도 도발적인 생각을 말한다. 그리고 대담하고 도발적인 생각이란 호불호가 갈리게 마련이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생각이라면 애초에 그걸 대담하고 도발적이라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담하고 도발적인 아이디어를 낸다는 건 곧 미움받을 용기를 내겠다는 뜻이다. 다수에게 외면받더라도 소수의 추종자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겠다는 뜻이다.


한편, 많이 팔려면 신박해선 안 된다. 무난하고 평범해야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난하고 평범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 역시 쉬운 길은 아니다. 모두가 생각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질적 차별화가 되지 않기 때문에 양적인 차별화를 해야 한다. 더 싸게 팔고, 서비스를 끼워주고, 영업사원들에게 고액의 인센티브를 걸어야 한다. 그러면 마진율이 떨어진다. 마이너스 이익을 감수하며 출혈 경쟁을 하게 될 수도 있다. 회사가 그걸 원할 리가 없다.


물론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아예 세상에 없었던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 경쟁사들이 발견하지 못했던 고객의 숨겨진 니즈를 찾아서 그걸 충족해줄 수 있는 제품을 만든다면 아예 새로운 시장이 창출된다. 아예 경쟁사가 없으니 우리가 1등이다. 물론 그 시장을 뒤늦게 발견한 경쟁사에서도 경쟁에 뛰어들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쯤이면 이미 우리 제품이 오리지날로 입지를 굳힌 상태다. 두통약은 게보린, 잇몸엔 인사돌, 연고는 후시딘이 생각나듯이 말이다. 그러면 이번엔 경쟁사가 더 싸게 팔아야 한다. 더 많은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경쟁사 역시 그걸 감수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1등 자리를 지키게 된다. 하지만 남들이 다 생각해낼 수 있는, 이미 시장에 퍼질 대로 퍼진 제품을 만들어놓고 그걸 시장 점유율 50% 이상 만들라고 하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더 싸게 파는 것 외에는.


이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다 아는 양 이렇게 말하는 게 민망하기는 하다. 몇 년 뒤에는 이 글이 내 흑역사가 될 수도 있다. 제발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흔해 빠진 제품으로 가격을깎지 않으면서 시장 점유율 50%를 만들 수 있는 신박한 마케팅 메시지를 발견해낼 수 있는 마케팅의 귀재가 되어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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