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마케터의 의문
나는 연매출 1조원 규모의 의료기기 회사에 다니고 있다. 국내 점유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세계에서도 3~4위를 다투고 있다.
그런데 이런 우리 회사의 공식 유튜브 채널이 영상 평균 조회수 100을 못 넘는다. 만들지 두달 된, 다이소에서 5천원 주고 산 삼각대랑 5만원짜리 중국산 마이크 외에는 땡전 한 푼 안 들어간 내 채널도 평균 1천 정도는 나오는데 수십 명의 전문가들이 수십 억의 예산과 수천 시간의 공을 들여 만들고 있는 이 유튜브 채널의 조회수가 100이 안 된다.
더욱 심각한 건 이 채널의 구독자가 1만 명이 넘는다는 것이다. 아직 만들지 얼마 안된 채널이라면, 영상이 몇 개 없다면 조회수가 안 나올 수도 있다. 유튜브에서 알려지려면 알고리즘의 파도를 타야 한다. 그게 없다면 아무리 잘 만든 영상이라도 널리 퍼지기 어렵다. 그런데 이 채널은 이미 구독자가 1만이다. 그런데 조회수가 100이다. 구독자 중에서도 1%밖에 안 본다는 이야기다.
나는 작년까지 영업을 하다 올해 마케팅 업무를 시작했다. 그래서 팜플렛이나 광고 영상 같은 홍보물들을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는데, 그 때마다 듣는 코멘트가 감성적이거나 재미를 유발하는 요소를 배제하고 그냥 제품의 홍보 포인트만 넣어서 만들라는 것이다. 우리 회사의 고객인 의사들은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흥미나 감정에 호소하는 콘텐츠를 보면 유치하게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의사와 미팅을 하러 진료실에 들어간 영업사원이라면 그게 맞다. 의사들은 시간이 돈인 사람들이다. 진료를 더 보고 돈을 더 벌 수 있는 시간을 영업사원들에게 할애한 것이다. 그러니 그 기회비용에 상응하는 유용한 정보를 줘야 한다. 제품이 좋던지, 아니면 싸던지. 감성이나 재미 같은 요소들은 낭비다. 영업사원이 의사 앞에서 사담을 나누려 한다면 "저랑 친해요?", "피차 바쁜 사람들끼리 무슨 쓸데 없는 얘기를 해요?"할 것이다.
그런데 유튜브는 다르다. 영업사원과 미팅을 하려면 진료시간을 할애해야 하지만 유튜브는 그냥 시간 남을 때, 심심할 때 보면 된다. 아무런 기회비용이 없다. 그러니 꼭 유용한 정보가 있을 필요가 없다. 재밌으면 된다. 아니, 재밌어야 한다. 진료실에서나 의사지 나오면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다. 재밌거나 감동적인 걸 보고 싶어하지 유튜브에서까지 무겁고 진지한 걸 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특히 그게 광고 영상이라면 최악이다. 의사가 아니라 의사 할아버지가 와도 광고 영상은 끝까지 안 본다. 광고인 걸 안 순간 바로 뒤로 가기를 누른다.
하지만 회사에서 하라는 게 이것이니 어쩔 수가 없다. 이걸 하면 월급을 주고, 이걸 안하면 안 주니 어쩔 수가 없다. 조회수가 안 나온다고 월급이 깎이지도, 잘 나온다고 인센티브를 주지도 않으니 내가 신경쓸 필요도 없다. 다만 조금은 씁쓸하다. 회사 생활로부터 의미나 보람을 찾고 자아 실현을 한다는 건 허상에 가까운 일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영혼 없이 보내야 한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