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이 모양인가

단점

by 김선비

“왜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많은 고민을 했다. 책도 읽어보고 유튜브도 찾아보고 주변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몇 가지의 가설을 세워보았다.


어쩌면 나는 너무 우유부단했던 건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연애는 남자의 주도로 시작된다. 다른 남자들과 비교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졌거나, 운이 매우 좋지 않다면 여간해서 여자가 먼저 가만히 있는 남자에게 호감을 표할 일은 없다. 그러니 남자라면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한다. 거절당하고 망신당하고 상처를 받을 걸 감수하고 일단 들이댄다면 작은 확률이라도 있지만 가만히 앉아 인연을 기다리는 남자에게는 단 한 번의 기회도 찾아오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의 감정을 네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아니면 재미가 없었을 수도 있다. 여자들은 유머러스한 남자를 좋아한다. 그래서 코미디언들은 못생기고 뚱뚱하고 키가 작아도 다들 예쁜 여자랑 결혼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 아니다. 텐션이 낮고, 진지하고, 무거운 편이다. 자존감도 높지 않고 질투도 많고 우울도 잘 타고 쓸데 없는 고민도 많다. 사람을 방방 뜨게 만든다기보다 가라앉게 만드는 타입이다.


혹은 남자다운 매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20대라면 모를까 30대의 남자라면 풍채가 있어야 하는데 나는 마른 편이다. 마냥 대책 없이 마른 건 아니고, 나름 열심히 운동해서 만든 몸이긴 하지만 겉에서 봤을 때는 그냥 멸치나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말투가 거칠거나 목소리가 크지 않다. 나긋나긋하다. 대화할 때 이렇게 다양한 어휘를 쓰는 남자를 본 적이 없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전형적인 마초의 느낌은 분명 아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게 꼭 나쁜 건가? 친구 결혼식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친구가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예식은 기독교식으로 진행되었는데 거기서 주례를 봤던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상대방에 대해 권태감을 느낄 때는 당신이 그 사람의 어떤 면을 사랑했는지를 떠올려보라는 것이었다. 권태감에 빠지면 상대방의 모습이 한심해 보이기 시작한다. 게을러 보일 수도 있고, 쪼잔해보일 수도 있고, 너무 우유부단해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엄밀히 말해서 나쁜 게 아니다. 게으르다는 말은 여유가 있고 삶을 즐길 줄 안다는 뜻이 될 수도 있고, 쪼잔하다는 말은 알뜰하고 꼼꼼하다는 말이 될 수 있으며, 우유부단하다는 말은 신중하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줄 안다는 뜻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권태감에 빠지면 왜 상대방의 안 좋은 점만 보일까?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양면적이고 각각 장점과 단점이 있게 마련인데, 사랑할 때는 장점을 먼저 보게 되지만 사랑이 식으면 단점을 보게 되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상대방이 아니라 내 마음에 있다. 그러니 내 마음을 고쳐먹으면 된다. 목사님이 하셨던 말의 속뜻은 그것이었다.


내가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그렇다. 나는 내가 우유부단하고, 음침하고, 남자답지 못한 게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너와의 관계에서 내가 남자답게 리드하고 확 휘어잡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건 너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니까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었다. 내 마음대로 하고 너는 알아서 따라오라는 식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만약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면 나도 남자답게 행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나는 내가 쓸 데 없이 진지하고 무거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누군가에게 나는 무겁고 어두운 사람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진솔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기도 하다. 나의 이런 면을 재미없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히려 더 재미있어하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너는 왜 나의 이런 장점들을 못 알아봤을까?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했더라면 달랐을 것이다. 내가 폭력적인 남자였더라도 터프하고 남자답고 와일드하게 보였을 것이고, 내가 직장을 안 다니고 부모님 돈만 축내는 한량이었더라도 여유롭고 비전 있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사랑하지 않으니까 내가 뭘 해도 좋게 안 보이는 것이다. 설령 내가 더 여유롭고 결단력이 있었다면, 더 재미있었다면, 남성적인 매력이 더 있었다면 달랐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결단력 있는 모습은 경솔하고 대책 없는 모습으로, 유머러스함은 가볍고 경박한 모습으로, 남성적 매력은 허세를 부리는 꼴마초처럼 보였을 것이다.


내가 어떤 정성을 들이더라도, 어떤 점을 고치더라도, 아예 다시 태어나더라도 네가 날 사랑하게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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