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웃음 장례식 편을 본 적이 있다. 코미디언 박명수의 웃음이 죽었다며 멤버들이 장례식을 치러준 것이다. 이 에피소드의 발단이 된 건 박명수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 출연이었다. 박명수는 마리텔의 웃음 사냥꾼이 되겠다며 호기롭게 출사표를 던졌지만 방송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은 시청자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EDM음악을 주력으로 여러 컨텐츠를 시도했지만 처참하게 실패했고, 박명수는 결국 웃음 사망꾼이라는 불명예스런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박명수는 유명한 코미디언이다. 데뷔한 지 수십 년이 된 베테랑 희극인이며, MBC 방송 연예 대상을 탄 경력도 있다. 웃기는 걸로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다. 그런 그가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자신감의 문제다. 유머는 찰나의 예술이다. 찰나의 망설임은 유머의 타이밍을 놓치게 만들고, 타이밍을 놓친 유머는 그 감칠맛을 잃게 된다. 김빠진 탄산음료, 뜬지 오래된 횟감처럼. 무한도전에서의 박명수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는다. 동료들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다소 자기중심적이고 돌발적인 그의 행동들이 프로그램의 큰 맥락과 어우러질 수 있게 중심을 잡아주는 유재석이 있고, 그의 거친 입담을 살려주기 위해 기꺼이 바보 역할을 자청하는 정준하가 있기 때문에 그는 망설이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무한도전의 박명수는 웃음 사냥꾼이다.
하지만 마리텔에서는 다르다. 마리텔에는 유재석도 없고 정준하도 없다. 그의 돌발적인 행동과 거친 입담을 받아줄 사람이 없다. 무한도전에서 호통개그였던 것이 마리텔에서는 막말이 된다. 그래서 박명수는 망설인다. 웃음 사냥꾼 박명수를 웃음 사망꾼으로 만든 건 그 찰나의 망설임이다.
나도 비슷한 일들을 겪었던 적이 있다. 소개팅녀 혹은 모임이나 회사에서 호감을 갖게 된 여자와 연락을 할 때 자연스럽게 농담을 던지고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 만나서도 소위 말하는 티키타카가 잘 안 되곤 했다.
가장 일차적인 문제는 나 자신에게 있다. 나는 소위 말하는 핵인싸는 아니다. 가볍고 발랄하기보다는 무겁고 진지한 축에 속한다. 언젠가 동호회에서 사람들에게 내 직업을 맞춰보라고 했던 적이 있는데, 힌트로 ‘절대 이건 아닐 것 같은 직업’을 뽑으라고 하니까 바로 맞추더라. 제약회사 영업사원. 뭔가 분위기를 띄우고 사람들에게 살갑게 다가가는 유형의 사람은 아닐 것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눈치가 빠르지도 않다. 눈치가 빠른 이들은 여자들의 화제에 진심으로 공감하지는 못하더라도 본능적으로 여자가 원하는 걸 알고 거기에 공감하는 모습을 의도적으로라도 연출해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겐 그러한 능력이 없다. 내가 재미가 없는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고 보면 내가 그렇게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분명 나는 좌중을 휘어잡는 재담꾼은 아니다. 하지만 재미있다는 말의 의미는 그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코미디 영화는 재미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로맨스 영화나 스릴러 영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재미가 없는 건 아니다. 각각의 장르에는 제각기 다른 종류의 재미가 있다. 즉, 유머라는 건 재미의 여러 하위 범주 중 하나일 뿐이지 재미 그 자체는 아니다. 따라서 재미있는 사람이 되는 건 웃기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도, 대화의 핵심을 짚어내는 예리한 통찰력을 지닌 사람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낼 줄 아는 사람도, 남들이 겪어보지 못한 진기한 경험이나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도 모두 재미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웃기지 않다고 재미가 없는 건 아니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어떤 의미로는 재미있는 사람이다. 나에게도 나를 재밌게 여기는, 나와 보내는 시간을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하지 않는 것, 그게 진짜 문제다.
나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주제에 관심이 없다. 애완동물이나 해외여행도, 인스타그램 핫플레이스나 골프 같은 것들도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호감을 갖고 있는, 하루에도 카카오톡 프로필을 수십 번씩 열어보는 가상의 그녀가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갖는다면 어떻게든 그녀에게 맞추려 노력할 것이다. 관심이 없어도 관심이 있는 척할 것이고, 그렇게 해서라도 도무지 관심이 가지 않는다면 공부라도 할 것이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조금 어렵고 진지한 얘기를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녀가 어떻게든 내 관심사에 맞추려 할 것이다. 그러면 그녀와의 대화를 쉽게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눈을 반짝이며 경청하는 그녀를 보며 나 스스로가 재미있는 사람이 된 것처럼 느낄 것이다. 유재석, 정준하와 함께 할 때 박명수가 재미있는 사람이 되듯이.
하지만 그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그녀는 내가 하는 말에 쉽사리 맞장구쳐주거나 웃어주지 않을 것이다. 마리텔의 시청자들이 박명수에게 그랬듯 냉정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것이고 그 시선은 나를 얼어붙게 만들 것이다.
그러면 나는 고민할 것이다. 어떤 말을 던져야 그녀가 내 말을 귀담아듣게 될지, 어떻게 해야 그녀가 웃어줄지. 하지만 결국 그 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고민하는 순간 이미 타이밍이 지나가버렸기 때문이다. 유머의 유통기한이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웃음이 사망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