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이 사라진 곳에는 무엇이 남는가

냉소

by 김선비

진화심리학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이론의 핵심은 인간은 여타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식물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그 열매에서 씨앗이 땅에 떨어져 또 다시 싹을 틔운다. 동물은 짝을 만나 교배를 하고 새끼를 낳는다. 그리고 죽는다.


인간이 살아가는 것 역시 다르지 않다.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외모를 꾸미기도 하고, 돈도 벌고, 권력 투쟁도 하지만 결국 본질은 번식이다.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외모와 몸매를 가꾸는 것이고, 매력적인 암컷을 쟁취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돈을 벌고, 사업을 하고, 권력 투쟁을 해서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것이다.


우두머리 수컷 바다 사자가 자기의 하렘을 빼앗으려 달려드는 경쟁자들을 날카로운 엄니로 물어뜯어서 죽이는 것이나, 전근대 사회에서 왕들이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역적들의 구족을 멸하는 것이나, 혹은 현대 사회의 기업들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것이나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인간은 동물들보다 조금 더 세련되고 문명화된 방법을 쓰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번식이라는 모든 생명체의 공통 과업을 이루기 위해 호모사피엔스의 수컷인 남성과 암컷인 여성은 서로 다른 전략을 취한다.


남성에겐 양이 중요하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에 빠지면 성욕을 느끼게 되고, 성관계를 맺게 된다. 성관계를 맺으면 아이가 생긴다. 그런데 남성은 아이를 갖기 위해 투자할 것이 많지 않다. 10분 남짓한 시간을 투자해서 사정을 하고 나면 아이를 임신하고 낳고 키우는 건 여성의 몫이다. 현대 사회에서야 일부일처제가 법제화되어있고, 여차하면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유전자 검사를 할 수도 있지만 옛날에는 남자가 씨를 뿌리고 도망쳐도 여자는 붙잡을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 남자는 일단 씨를 많이 뿌리고 봐야 했다.


반면 여성에겐 질이 중요하다. 남성의 번식 기회는 무한하다. 성적 매력과 사회적 지위가 충분히 받쳐준다면 평생 동안 1만 명의 자식을 낳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여성의 입장은 다르다. 한 아이를 낳으려면 최소 10개월 동안 임신을 해야 하고, 임신과 출산은 그 자체로 여성의 몸에 부담이 된다. 이런 것들을 고려할 때 여성이 출산을 할 수 있는 생물학적 한계는 12명이라고 한다. 이건 말 그대로 생물학적 한계다. 여성이 임신과 출산,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건, 아이를 낳다 몸이 상하거나 죽건 아무 신경 안 쓴다는 의미다. 실제로는 그 절반도 버거울 것이다. 그러니 여성은 한 번 한 번의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너무 성욕이 강한 여성, 아무에게나 자기 몸을 쉽게 허락한 여성, 책임감 없고 무능한 남성과 결합하느라 자기의 소중한 번식 자원을 낭비한 여성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지 못했다.



오늘날의 연애 문화도 결국에는 이 논리를 조금 세련되고 예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연애 초반, 남녀가 처음 만나서 관계를 만들어갈 때는 남자가 더 많은 투자를 한다. 먼저 다가와서 연락처를 묻고, 데이트 신청을 하고, 돈을 쓰고, 데이트 코스를 짜오고, 집에는 잘 들어갔냐고 문자를 보낸다. 이런 방법으로 남자는 여자에게 자기는 여성을 이용해서 씨만 뿌리고 도망치는 무책임한 수컷들과는 다른, 헌신적이고 유능한 수컷이라는 점을 증명하려 한다.


물론 여성도 남성을 위해 많은 것들을 한다. 여성이 더 많이 연락하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고, 오래 만나다 보면 데이트 비용도 어느 정도 5:5에 가깝게 수렴하게 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오래 만났을 때의 얘기다.

남자가 자기가 충분히 헌신적이고 유능한 남자라는 걸 증명했으니까, 이 남자가 외부의 위협들로부터 여성을 지켜낼 능력이 없는 나약한 남자이거나, 씨만 뿌리고 도망치는 무책임한 남자가 아니라는 걸, 여성의 소중한 번식 자원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남자라는 걸 충분히 납득시켰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에게 돈과 정성을 들이는 것이다.



이 이론은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개편된 나의 신념 체계에 아주 잘 어울렸다. 과거의 나는 세상에 정의라는 게 있다고 믿었다. 읽고, 쓰고, 생각하고, 고민하다 보면 언젠가 내가 그 정의에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사회 생활을 하면서 그 신념을 버렸다.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정의라는 건 승자가 규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승리하고 봐야 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진화심리학에 매력을 느꼈다. 과거에 나는 로맨스를 믿었다. 중학교 2학년, 처음으로 마음에 두었던 그 소녀가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삶에 질문을 던졌다.


‘사랑이 뭐지?’
‘어른들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행복해질 거라고 했는데 왜 나는 그 소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슬픈 거지?’
‘설령 내가 훗날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그녀를 다시 쟁취하게 된다 한들 그렇게 얻어낸 사랑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돈을 주고 사는 매춘과 다를 게 뭐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사랑이 뭐냐고? 그건 바보 같은 질문이다. 애초에 사랑이란 건 없기 때문이다. 그저 남자는 어리고 예쁜 여자, 여자는 돈 많고 잘 나가는 남자를 만나서 자기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고 싶다는 욕망이 있을 뿐이다. 그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미래에 내 가치를 높이는 전략을 택했고, 같은 학교에 다니던 숙제 제대로 안 해오고 앞니 사이로 가래침을 뱉어대던 녀석들은

일진이 되어서 지금 당장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전략을 택했을 뿐이다. 둘 다 옳고 둘 다 틀렸다. 누구도 완벽히 옳거나 틀리지 않다.


그러니까 이기면 된다. 이긴 자만이 자기 입장을 변호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나는 앞으로 그렇게 믿기로 했다.

keyword
이전 02화나는 정말로 정의로운 인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