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강사 일을 그만두었다. 회사에 다시 들어가기로 했다. 철저히 현실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강사로 성공해서 큰 돈을 버는 사람은 소수다. 그중에 내가 속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노력하고 인내해야 할까. 그때까지 내가 부모님의 한숨과 눈물,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견뎌낼 수 있을까. 견뎌내서 성공한다는 보장이나 있다면 모르겠지만 만약 내 생각이 틀렸다면 내가 날려버린 기회와 시간들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생전 하지 않던 면접 스터디를 시작했다. 면접은 함께 일할 사람을 뽑는 자리다. 지원자들 중 이 회사와 가장 어울리는 게 누군지 뽑는 자리다.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회사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연출된 모습을 보여준다면 당장 합격할 확률을 높일 수는 있겠지만 막상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면서 맞지 않는 점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아예 회사를 그만둘 것이다. 그건 나에게나 회사에게나 손해다. 이게 이전까지 면접 스터디에 대한 내 생각이었다.
생각을 바꿨다. 진짜 모습? 가짜 모습? 그런 게 뭐가 중요한가.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 자기 진짜 모습을 보여주면서 다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사장조차도 직원들 앞에 설 때나 다른 거래처와 미팅을 할 때는 가면을 쓸 것이다. 가면을 써야 하니까, 그건 힘든 일이니까 돈을 주는 것이다.
어려울 것 없다. 지금껏 늘 그렇게 살아왔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을 대할 때, 군대에서 고참들을 대할 때 나는 진심이었나? 아니었다. 그들이 원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줄 사람은 우리 부모님 말고는 없다. 이게 현실이다.
그러니까 일단 붙고 보는 거다. 보통 사람들이 걷는 삶의 궤도에 올라타겠다. 다음 일은 나중에 생각하겠다. 그게 나의 계산이었다.
그리고 술 마시는 친목 모임에 들어갔다. 헌팅 포차에도 몇 번 갔고 나이트 클럽에도 갔다. 나름 거금을 주고 룸도 잡아봤다. 어차피 너에 대한 기억을 영원히 간직할 수 없다면 아예 즐겁고 자극적인 기억들로 덮어서 빨리 잊어버려야지 했다. 혹여나 언젠가 다시 만날 일이 생기더라도 이렇게 동굴 속에 갇힌 우중충한 인간이 되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유쾌하고 발랄한 인싸가 되어있는 게 네가 보기에도 더 나을 것 같았다.
쉽지는 않았다. 친목 모임 사람들과는 결이 맞지 않았다. 인싸들의 텐션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잠깐 휴대폰을 보고 있지 않으면 단톡에 안 읽은 메시지가 300개씩 쌓여있었고, 그중에는 무엇하나 영양가 있는 내용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9시나 10시 정도까지 아무 말이 없으면 누구 하나가 “오늘은 톡이 조용하네요.” 하면서 운을 띄웠고, 그러면 참새들이 지저귀는 수준의 쓸데없는 이야기들이 하루 종일 오갔다. 모임은 퇴근 이후 8시나 9시 정도에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는데도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금요일이나 토요일에는 밤을 샜다. 술자리 자체가 재미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런 생활 패턴에 계속 맞추는 건 술도 잘 못 마시고 시끄러운 자리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겐 힘든 일이었다.
회사 생활 역시 쉽지 않았다. 보톡스를 파는 회사였는데 나는 피부과 레이저 기기를 파는 신사업부에 영업 담당자로 배치되었다. 회사의 시스템은 당연히 대부분의 매출을 책임지는 보톡스 사업부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비주류인 나로서는 회사의 시스템을 충분히 활용할 수 없었다. 선배들과의 관계를 쌓아가기도 어려웠다. 서로 다른 일을 하기 때문에 공감대가 통하지 않았고, 선배들은 훨씬 많은 인센티브를 받고 회사의 주류로 성장할 수 있는 보톡스 영업 부서가 아닌 신사업부로 간 나를 별종으로 취급했다. 어차피 신사업부는 곧 없어질 부서이고, 실적이 안 나와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테니 그냥 상부에 보고만 가라로 하고, 대충 다니라고 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영어 학원을 다니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 맞는 말이고, 나라도 선배 입장이라면 그렇게 조언할 것이다. 하지만 회사에 처음 들어와서 뭐라도 의욕적으로 해보려고 하는 신입 사원의 입장에서 그런 말을 듣는 건 분명 유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5년 동안 회사에 다녔다. 매출부진으로 신사업부서가 폐지되기도 했고, 그 이후 배치된 영업 지원 부서에서 상사와의 갈등으로 다시 영업부로 밀려나기도 했지만 어찌 저찌 버텼다. 모두들 내가 금방 나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조차도 나가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나는 나가지 않았다.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오랫동안 나는 너를 붙들고 있었다. 네가 나를 버렸다고 나까지 너를 버릴 수는 없어서 악착 같이 너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려 했다. 별 비전도 없는 일을 계속하면서, 대순진리회에 나가서 얼토당토 않은 강의를 3주 동안 들으면서, 끊임없이 내가 살아온 날들과 해온 생각들, 그 밖에 모든 것들을 부정하면서 나는 너를 기억하려 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너를 만나지도 못했고 너에 대한 마음을 간직하지도 못했다. 무겁고 음침한 인간이 되어버린 내가 홀로 서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반대의 의미를 추구하기로 했다. 이상이 아니라 현실을 추구하기로 했다. 예전에는 논술 강사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택한 이상을 끝까지 밀고 나가겠다고 했지만 이제는 그 이상을 접고 회사원이 되었다. 그리고 회사원 중에서도 현실주의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영업 사원이 되었다. 내 이상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는지, 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래서 실적이 얼마나 나왔는지, 하는 결과를 추구하기로 했다.
그리고 무거움이 아니라 가벼움을 추구하기로 했다. 소규모의 사람들이 모여서 도란도란 삶에 대해 진지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를 하는 독서 모임보다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 마나한 이야기를 하는 모임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견뎌낼 수 있었다. 처음 보는 병원에 가서 처음 보는 간호조무사들에게 말을 걸 때, 나를 잡상인 보듯 하는 그들의 시선을 느낄 때, 그 눈빛을 알면서도 애처롭게 원장님 만나게 해달라고 매달릴 때, 당연히 자괴감이 들었고, 때려치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보내왔던 지난 몇 년을 부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너를 잊고 새출발하고 싶었기 때문에 너를 기억하려던 방식들을 부정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의미가 아닌 무의미에 매달렸다. 뜬구름 잡으며 살아왔던 지난 시간을 속죄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