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로 정의로운 인간인가

신념

by 김선비

과거의 나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는 의미를 찾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부모님과 갈등을 빚기도 했고, 취업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나는 나의 신념을 지키려 애썼다.


그런데 내가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게 있다. 신념이란 결국 현실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신념이란 이 세상이 어떤 곳이 되어야하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이다. 그러니까 신념을 가지려면 이 세상이 어떤 곳이고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 세상의 모습은 사람들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약자의 입장에서 보기에 이 세상은 불공평하다. 금수저들은 흙수저들이 갖지 못한 돈과 권력, 사회적 네트워크를 날 때부터 갖고 있고, 그걸 활용해서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더욱 공고하게 한다. 한편 흙수저들은 그들의 타고난 처지를 바꿔보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이미 모든 걸 갖고 태어난 이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강자의 입장은 다르다. 금수저가 흙수저보다 더 나은 조건을 타고 났다고 치자. 그럼 그 나은 조건을 얻어낸 건 누구인가. 금수저의 부모일 것이다. 그럼 그 부모는 어떻게 그 조건을 얻어냈을까.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국에는 실패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도전했을 것이다. 부모가 아니라면 조부모가 그렇게 했을 것이고, 조부모가 아니라면 증조부모가 그렇게 했을 것이다. 부모의 부가 자식 세대에까지 세습되는 게 문제라고? 만약 내 자식에게 좋은 조건을 물려주고 싶다는 원초적 욕망이 없었더라면 누가 노력하고 도전할까?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이 세상이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을까? 불평불만 늘어놓는 건 좋은데 들고 있는 휴대폰은 내려 놓고 말씀하시지? 그걸 만들어낸 건 당신들이 천민자본주의의 하수인이라며 비판하던 대기업들이니까.


결국 두 입장은 모두 맞다. 그리고 둘 다 틀렸다. 둘 다 어느 정도 옳지만 둘 다 완벽하게 옳지는 않다. 각자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일 뿐이다. 사람들이 서 있는 위치가 서로 뒤바뀐다면 그들이 보는 세상의 모습이 달라질 것이고, 그들의 가슴 속에 있는 신념도 달라질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회사원이 되자 회사원의 신념을 갖게 되었다. 나답게 사는 것보다 남들의 시선에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행복은 주관적이다. 모든 걸 가졌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못 가졌다고 꼭 불행한 것도 아니다. 내가 느끼기 나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행복이라는 게 오로지 내 마음에만 달린 건 아니다. 타인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그리고 관계는 내가 뭘 가졌는지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진다. 내 한 몸이야 조금 불편해도, 가진 게 없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돈이 없어서 내 자식이 원하는 걸 못해주거나, 연인이 비전없는 내 모습에 질려서 떠나거나, 부모님이 내 모습을 한심하게 여기고 부끄러워하는 걸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많이 가져야 한다. 그리고 많이 가지려면 남들이 원하는 걸 줘야 한다. 사업가라면 고객이 원하는 물건을 팔아야 하고, 회사원이라면 상사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일을 해야 하고, 연애를 하려면 상대방이 원하는 매력적인 모습을 연출해야 한다. 타인에게 맞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살아가겠다는 건 그냥 인생 날로 먹겠다는 심보일 뿐이다.


그리고 절차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하기로 했다. 어차피 세상에는 완전히 옳은 것도 틀린 것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옳거나 그르다고 믿는 것조차도 그렇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을 당시, 중신들은 이에 반대했다. 오늘날의 역사책에 이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민중을 억압했던 탐관오리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이들은 무식한 백성들이 문자를 쓰게 되면 그들의 정제되지 않은 생각을 마구마구 싸질러서 세상이 혼란스러워질 거라고 했다. 그리고 이 견해는 100% 틀린 말은 아니다. 세종이 한글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문자가 엘리트들의 전유물로 남았더라면 오늘날 유명인들에 대한 악플이나 가짜 뉴스, 반사회적 온라인 커뮤니티 같은 문제들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한글이 만들어져서 얻은 이익이 훨씬 크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이들의 생각이 0점짜리는 아닌 건 분명하다. 그런데 이들은 왜 역사에서 탐관오리로만 기록되었을까? 이들은 패배했기 때문이다. 결국 세종이 한글을 만들었고, 우리가 오늘날까지 한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겨야 한다. 패배자에게는 자신을 변론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정의라고 믿고 있는 건 결국 강한 자의 의견일 뿐이다.


뒤처진 이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뒤처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세상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값어치가 있는 물건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열고, 능력이 있는 직원에게 월급을 주고, 유망한 주식에 돈을 투자한다. 그러니까 실패했다면 그 이유는 명확하다. 내가 만든 물건이 안 팔린다면 그 물건이 값어치가 없는 거고, 내가 취직이 안 된다면 내 능력이 없는 거고, 우리 회사에 아무도 투자를 안한다면 우리 회사가 가치가 없는 거다. 물론 고흐처럼 사후에 인정받는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만 극소수다. 대부분의 경우 대중의 눈은 틀리지 않다. 성공한 이들은 성공할 만하니까 한 거고, 실패한 이들은 실패할 만하니까 한 거다.


내가 그동안 신념이라고 믿고 있던 것들은 폐기처분하기로 했다. 내가 외적인 소유가 아니라 내적인 의미를 중시했던 건 가진 것 없는 내 처지를 정당화하기 위해서였고, 한국 사회의 속물주의와 무한 경쟁 시스템을 비판했던 건 내가 그 경쟁에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걸로 생각하기로 했다. 원래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학벌주의 비판하고, 군대에서 적응 못하는 애들이 군대 문화 비판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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