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는 남자는 왜 연애에 실패하는가

노력

by 김선비

신라의 장군 김유신과 기생 천관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젊은 시절 화랑 김유신은 천관이라는 기생과 연애를 했다. 그런데 이를 어머니에게 들켰고, 어머니는 화랑으로서 무예와 학문에 정진해야 하는 시기에 여색에 빠져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며 그를 꾸짖었다. 그는 다시는 천관을 찾지 않겠다고 어머니와 약속했다.


천관과 연을 끊고 무예와 학문을 닦으며 지내던 어느 날, 김유신은 회식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회식을 마치고 술에 거나하게 취해 집에 돌아가는 길, 말 위에서 잠깐 잠들었다가 깨어보니 천관의 집 앞이었다. 너무나 자주 드나들던 곳이라서 김유신이 별다른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데도 말이 자연스레 천관의 집으로 온 것이었다.


김유신은 주인의 결심을 흩뜨려 놓았다며 말의 목을 베었고, 문밖에 마중나온 천관을 외면한 채 매몰차게 떠나 버렸다. 그리고 훗날 김유신은 천관의 집터에 천관사라는 절을 지었다. 이 전설로부터 [한국을 빛낸 백 명의 위인들]에 나오는 ‘말 목 자른 김유신 통일 문무왕’이라는 가사가 유래하게 되었다.



나는 너를 사랑했다. 그래서 많은 바보짓들을 했다. 그런데 그 바보짓들 중 내 의지로 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이 행동이 나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를 판단하지 못했다. 그냥 정신차려 보니 그 바보짓을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었다. 너, 그리고 몇몇 친구들과 술을 마시기로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따라 할 일이 많아서 8시 반이 되어서야 겨우 퇴근을 했다. 늦게라도 술자리에 참석하려는데 생각해보니 밤 11시에 집에서 화상으로 참석해야 할 미팅이 있었다. 직장에서 집까지는 2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나는 최소 9시에는 출발해야 했다. 너를 만날 시간은 단 30분이었다. 그나마 단둘이 볼 수 있는 자리도 아니었다. 인사 한 번씩 하고 얼굴 도장 찍으면 쏜살같이 지나가 버릴 시간이었다. 그래도 나는 너를 만나러 갔다. 여기에는 어떠한 계산도 없었다. 너와 대화를 할 시간이 충분하지도 않았고, 그 자리에 참석한다고 너와 가까워질 수 있을 거란 생각도 안 했지만 그냥 갔다. 아무런 이유도 계산도 없이, 그저 발길이 움직였다. 김유신의 말이 술에 취한 김유신을 천관의 집 앞으로 데려갔듯이.



자기도 모르게.


이게 중요하다. 의식하는 순간 사랑은 끝난다. 대학교 교양 시간에 프랑스의 어느 거장이 만들었다는 예술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교수님은 이 영화를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명작이라고 극찬했다.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평점도 9점이 넘었다. 박평식도 8점을 넘게 준 영화였다. 그런데 재미가 없었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겠고, 감정이입이 되지도 않았다. 나는 이런 명작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잘못된 건가 싶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이 영화는 재밌다, 이 영화는 유익하다, 이 영화는 명작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영화는 더욱 재미가 없어졌다. 결국 나는 강의 시간 내내 엎어져서 잤다.


또 한번은 한 지인의 가족의 장례식에 갔던 적이 있다. 장례식장에 들어가니 상주와 유가족들이 땅을 치며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왠지 나도 울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들 나를 냉혈한이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그래서 울려고 노력해 봤다. 하지만 그럴수록 눈물은 나지 않았다.


감정이란 게 그렇다. 어떠한 감정을 느끼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오히려 그 감정으로부터 멀어진다.


착한 남자, 좋은 남자였던 내가 버려진 이유는 그것이다. 네가 나를 이용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게 상처를 줄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너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가 착한 말을 하고, 착한 행동을 하고, 착한 태도를 취했을 때 너도 도덕적 부채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렇게 착하고 좋은 사람에게 상처를 줘선 안 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노력도 했을 것이다. 나를 한 번 사랑해보려고. 하지만 그게 잘 안됐을 것이다. 감정은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다. 아니, 오히려 노력하는 순간 끝난다. 미안하다, 고맙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이미 다 물 건너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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