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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지지 않은 마음 그대로

by 요술램프 예미

“얼룩말은 온순해 보이지만 한 번도 길들여진 적이 없습니다.”


어느 날 노트북을 켰는데, 시작 화면에 이런 문구가 떠 있었다. 온순해 보이지만 결코 길들여진 적이 없다는 건, 친근해 보이지만 의지와 주관이 뚜렷해 보인다는 뜻이거나, 온순하게 여겨지는 것과는 달리 꽤나 강하다는 뜻이겠다. 어쩌면 얼룩말의 검정과 흰 줄무늬가 그런 뚜렷함을 증명해주는 것만 같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룩말에 대한 어떤 동경이 생기던 순간이었다. 함부로 색이 섞이지 않고, 흰 것은 흰 것대로 검은 것은 검은 것대로 선명히 자신의 특성들을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결연하고도 굳건함의 상징을 온 몸으로 표현하는 것만 같아서.


나는 수시로 변화하는 내 성격에 의문을 가진 적이 많았다. 이 사람과 만나면 이런 사람이 되고, 저 사람을 만나면 저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과 저런 사람의 갭이 너무나 커서 어떤 사람은 나를 지극히 여성적으로 평가하고, 어떤 사람은 나를 지극히 남성적으로 평가하는 등의 극과 극을 오가는 정도이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약간 내숭을 떨다가 친해지면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특성이지만, 나는 오히려 처음 보는 사람이 더 편하다. 나에 대해 어떤 모습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는 내 모습을 꾸미지 않아도 되고,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아도 되니까.


문제는 몇 번의 만남을 가지면 사람들은 으레 평가를 하기 시작한다는 데 있다. 누군가는 한 번의 만남만으로도 평가의 말들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앞으로 그 사람 앞에서 어떻게 내 모습을 만들지에 대한 결과론적인 말이 되어버리곤 한다. 누군가 나를 따뜻하다고 말하면 나는 따뜻한 사람으로 나 자신을 포지셔닝하고, 누군가 나를 당차다고 말하면 나는 세상 누구보다 당찬 장군이 돼버린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못돼먹은 사람으로 평가하면 아무렇게나 막 행동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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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우관. "상처의 흔적들을 유배시키기 위해, 무용이 유용이 될 때까지 쓰고 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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