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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Oct 30. 2020

내 안의 다양한 영혼

사람을 정육면체라고 상상한다면 한 사람 안에도 여러 면이 담길 것이다. 어떤 면은 누군가에게 강하게 전달되고, 어떤 면은 누군가에게는 보이지도 않을지 모르고, 또 어떤 면은 다른 면을 부각하기 위해 완급조절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같은 면이라도 누군가에게는 공감의 요소가, 누군가에게는 비난의 요소가 된다. 별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닌데, 자기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뭐, 별 수 없다. 그냥 그러려니 받아들여야지 증명하려 애쓸수록 증명하지는 못하고 내 에너지만 소비하고 말 것이다. 애초에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내가 어떤 증거를 갖다 대도 믿으려 하지 않을 테니까.


 우리는 우리 안의 여러 영혼, 당신 안의 여러 영혼을 이해하기 바쁘다. 하지만 이해받지 못한대도 변명은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변명을 하다가 변명이 먹히지 않게 되면 우리는 변명에 맞게 나를 맞추어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포기하고 말아야 할 것을 그냥 포기하려는 다짐보다 끝장을 보려는 의지가 강해서다. 네가 변하든, 내가 변하든 어떻게든 끝을 봐야하는 것이다. 그러다 자신이 변해도 변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세상은 적당히 더불어 사는 거라며 자기 자신을 위로한다. 


 나의 어떤 한 면을 보고 죽어라 나를 싫어한 사람이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나의 그 한 면을 지독히도 경멸하면서도 또 지독히도 부러워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나의 짐작이다. 부러워하던 것이 미워지는 순간이 오는 뭐 그런. 처음에 그 사람은 자신이 나중에 싫어한 면 때문에 나를 좋아하다가 나중엔 처음부터 나를 싫어한 사람처럼 굴었다. 싫어하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작정과 결심이 서자 그는 나의 싫은 면만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자신의 호오에는 반드시 정당함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고, 자신이 밝혀낸 나의 단점으로 역시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해야만 덜 괴로워지니까. 그녀에게 내 영혼의 다양성 같은 건 아무 짝에 쓸모없는 것이었다. 나는 오직 나쁜 영혼을 가진 사람일 뿐이고, 자신은 나의 영혼이 썩어빠져서 나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뿐이니까.


  

 인간이란 긴 호흡을 가진 존재라 그를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림에도 우리 곁에는 그렇게 오랜 호홉을 가질 만한 사람들이 별로 없다. 관계에서 침묵과 단절은 비일비재하고 작은 것에까지 성실하게 군다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기까지 하니.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아는 것을 쉽사리 포기하거나 애시당초 서로를 경험하기를 꺼린다. 때로는 가족에게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귀찮은데 남이야 오죽할까.


 예전에 나는 사람들에게 내 영혼의 한 쪽 면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보여주고 싶은 면은 달라졌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주로 남성적이고 강인한 면만을 보였고, 어떤 사람을 만나면 여성적이고 차분한 면만을 보였다. 또 어떤 이에게는 차갑고 무뚝뚝하고 매몰찬 면을 보일 때도 있었다. 인간 영혼의 다양성을 알기 전에는 내가 이중인격을 넘어 다중인격인 듯 여겨졌다. 내가 너무 가식적이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한 동안 ‘나는 누구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 진짜 모습은 무엇인지, 나는 왜 이다지도 가식덩어리인지, 나는 왜 일관된 모습을 유지할 수는 없는 건지, 진짜 모습을 찾을 수나 있을지.


 그런데 그런 다면체의 나는 나 스스로를 지키는 생존기제로서 작동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강하게 보여야 상처받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또 때로는 상대가 더 연약한 사람이라 내가 상처 줄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모든 모습이 나였고, 나는 어떤 지점에서 내 모습 중 하나를 선택했던 거였다. 


 이제 나는 내 다양한 모습을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나는 왜 이럴까를 생각하지 않는다. 굳이 주석을 달고 부연 설명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애초에 사람이 한결같아야 한다는 명제가 잘못되었을 뿐. 그러니 다른 사람이 나의 한 단면을 보는 것 역시도 상관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다거나,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은 열망도, 소망도 아닌 허기일 뿐이다. 그리고 그 허기는 내내 채워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 그러니 그대로 내버려 두고 못 본 척 하거나, 잊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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