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잡한 지하철 안에서, 여자 둘이서 서로의 머리를 잡고 있다. 누군가는 안 보인다고 나와 보라며 적극적으로 싸움 구경을 했고, 누군가는 비명을 지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호들갑도 아니다. 한 여성의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피를 보면 긴장하고 심호흡이 가빠지면서 동공이 확장되고 그로 인해 두려움과 공포에 의한 반사작용으로 입에서는 큰 소리가 나가면서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당연한 생리적 반응이니까. 코피를 보며 물론 키득대는 사람도 있었다. 남의 불행에서 기쁨을 느끼는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라기보다 간이 남들보다 좀 더 크거나 그저 웃을 일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 믿고 싶다. 내가 어디에 해당했는지는 굳이 밝히지 않겠다. 나는 중재자가 되었다가 파이터가 되었다가 하는 기질의 사람이라 그 날의 기분에 따라 다르다는 것만 밝힐 수 있을 뿐.
이야기는 이랬다. 한 사람은 지하철 문 옆 통로에 서 있었고, 문이 열리자마자 탄 사람은 피하지 않고 그를 치면서 탔고 발까지 밟았다. 물론 나는 지나가는 사람이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을 피해서 지나가는 게 먼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서 있는 게 사람이었으니 안 피한거지 전봇대나 다른 물체였으면 본인을 위해서라도 피했을 테니까. 그런데 전봇대는 자기한테 누가 와서 부딪혀도 말이 없지만, 사람은 분명히 무슨 말을 할 거란 것도 예상 가능한 일이고. 어쨌든 그는 자신이 피하지 않으면 네가 피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말로 사과의 말을 대신했다. 이 정도면 싸우자는 거지. 누가 싸움을 걸었을 때 피할지, 맞서 싸울지를 결정하는 것은 별개로 치더라도, 싸움은 발을 밟은 사람이 먼저 걸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사람이 많은 출근길에서는 자신의 프라이빗한 공간을 확보할 수 없어 모두가 신경이 곤두서 있지 않나. 내 몸에 모르는 사람 몸이 닿는 것도 짜증나는데, 그것이 고통까지 준다면 전의 아니라 뭐라도 불사질러야 하지 않겠나. 사람 많은 곳에선 특히 남의 발을 밟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만 한다. 한번 밟혀 본 적이 있는데 이건 다른 곳보다 훨씬 더 고통이 심했다. 옆구리를 누가 툭 치는 수준의 몇 십 배에 해당하는, 눈물이 찔끔 나는 고통이 뒤따른다. 제일 더럽게 여겨지는 신발의 바닥이 내 신의 등을 밟았다는 느낌이 깔끔하지도 않고 말이다.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발을 밟았더라도 사과를 반드시 해야 한다. 피해라는 것은 나의 의지여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고통의 여부, 피해에 따른 결과의 여부에 달렸으므로. 파이터의 기질이 충분한 사람의 발을 잘못 밟았다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의 머리를 쥐어뜯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으니. 누가 자신을 영상으로 찍어 영상이 삽시간에 퍼지는 일을 상상하면 너무 아찔하기까지 하니까.
그래도 여성들의 싸움은 머리를 쥐어뜯는 것으로만 끝나는 게 보통이어서 당사자들도, 보는 사람들도 싸움 이후에 뭘 더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남성들의 싸움은 그보다 더 커지고 치열하니 제발 걸으면서 남의 발에도 시선을 주는 것이 어떠한가. 너무나 목표물(빈자리)만 보고 걷지 말고.
예전에 거의 두 시간을 들여 서울의 끝에서 끝으로 출퇴근을 한 적이 있었다. 길에서 버리는 시간은 사람을 더 피곤하게 한다. 그 시간 동안 어떠한 생산적인 일을 못 한다는 것에 일단은 피곤하고, 모르는 사람들과 좁은 공간에서 부비부비하는 것에 또 피곤하다. 출퇴근 시간에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등의 행위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이 타자마자 어떻게 해서든 빈자리에 앉아야 했고,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취침할 준비를 해야 한다. 목적지에서 내리지 못하고 더 가더라도 자야만 하는 것이다. 어떤 날은 너무 피곤한 나머지 목을 뒤로 완전히 젖힌 채 입을 하아 벌리고 있다는 의식이 살짝 들면서 깼다. 누가 거기에 씹던 껌을 넣어도 몰랐을 거다. 정말 이미지 관리라는 것을 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이었다.
어느 날 쩍벌남 한 명이 내 옆에 앉았고 나는 누가 내 몸에 자기 몸을 붙이는 걸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게 남자라면 불쾌감을 드러내는 편이다. 내 다리에 그쪽 다리가 자꾸 들러붙으니 다리를 오므려줄 것을 요구했고, 그는 자리를 옆으로 옮기는 척 하다가 더 내 옆에 바짝 다가와 앉으며 더 넓게 다리를 벌렸다. 따지려고 하자 남자가 엄청나게 화를 내면서 소리를 질렀다. ‘뭐 어쩌라고’ 대충 이런 내용이었고 내가 남자가 아님이 그렇게 억울했던 적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는 결국 나를 끌고 같이 내리자고 했다. 순간 무서웠다. 이 남자가 나를 끌고 내려서 지하철이 들어오는 철로로 나를 던져버리면 어쩌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크린 도어가 없는 곳이었으므로, 충분히 가능한 상상 아닌가. 그런 상상을 했던 건 당시에 드라마에서 사이코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친구를 들어 올려 계단에서 던져버리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다른 남자가 나타나 나를 구해주었다. 역시 힘은 더 큰 힘으로만 이길 수 있는 것인가. 나에게 큰 소리 치던 사람이 찍소리도 못하고 내리는 것을 보며 통쾌하면서도 스스로가 초라했다. 육체적 힘에서 밀리는 싸움이라니. 그걸 주체적으로 이길 수 없는 연약함이라니. 보통은 이런 일을 계기로 연인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입이나 벌리고 자는 내게 뭐 그런 로맨스까지 생기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도 여자 친구가 있었고, 나도 남자 친구가 있었으니. 자기 여자 친구가 당해도 억울할 텐데 도와주는 게 당연하다고 말해서 그에게 여자 친구가 있음을 알았지 짧은 시간 동안 여자 친구의 유무를 물었던 건 아니다.
출근 길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혹은 도로 위에서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과 싸운다.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열불을 내면서 싸우고 생전 하지 않던 욕을 하면서.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밀치는 것도, 끼어드는 것도, 욕하는 것도 더 쉽다. 특별한 이유 없이 싸우고 싶어 싸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번 보고 말 사람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 것이 더 쉬운 것처럼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취약을 드러내는 게 더 쉬우니까. 거기다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니.
길에서 괜히 모르는 사람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을 보면 ‘나는 여태 아무에게도 불만도, 고통도, 비밀도 말하지 못했단 말이야!’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보인다. 쌓인 걸 그때그때 풀지 못해 애먼 사람에게 풀고야 마는 취약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