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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명으로 산다는 것

by 요술램프 예미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이나 실존주의 심리학자들과 같은 무수한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을 진단명으로 특정짓는 것을 거부하곤 한다. 현실치료를 주창한 Glasser같은 학자는 보험회사의 요구와 같은 특별한 경우 외에는 내담자에게 진단명을 붙이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리적 문제가 나타나는 것은 불행하기 때문이며, 불행은 정신적 질병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와 같은 상담사들 역시 정신과에서 내담자에게 붙인 진단명을 참고만 할 뿐, 그를 진단명 자체로 보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 시대에는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과적 진단명 자체가 하나의 경험적 이력이 되기도 하고,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은 듯 하다. 어떠어떠한 책을 지은 사람들이 강연장에 나와서는 본인의 신경증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밝히며, "저는 우울증 환자입니다" 혹은 "저는 공황장애입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 자신을 소개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이들은 사람은 이름처럼 산다고 말한다. 부모들은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 아이가 좋은 사람으로 자신의 소명을 다 하는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면서 그 염원을 이름 하나에 담는다. 그래서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이름은 부모에게 있어서만큼은 더 이상 좋은 이름은 나올 수 없다고 결론내릴 정도로 좋은 것이어야 한다. 아이의 이름은 곧 부모의 염원이자, 축복이며, 앞으로 아이가 담게 될 세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진단명으로 자신을 소개한다거나, 자신의 역할로부터 파생된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것은 자신의 세계를 축소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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