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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Jun 16. 2016

마당 깊었던 여인숙

그러나 가난의 흔적을 남겼던 곳

여인숙이었다. 


그 곳은 중간에 마당이 있고 방들과 마루가 그 가를 죽 둘러싸고 있는, 마치 어떤 영화에 등장하는 것같은 그런 여인숙이었다. 마당 가운데는 꽃들도 자라고 있어 요즘의 여인숙처럼 낡은 건물만 있는 곳은 아니었다. 왠지 따뜻한 느낌 가득한, 햇살이 한 가득 들어오곤 했던.


일곱 살이었던 시절, 아빠와 나는 그렇게 생긴, 어느 소설의 마당 깊은 집이 있다면 꼭 그렇게 생겼을 것같은 여인숙에서 기거하였다. 아직도 그 모습이 몹시도 생생하다. 여인숙에 살고 있었지만 그 당시에 그 곳이 여인숙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우리 집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 곳에 살면서 동네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 가서 처음 피아노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아빠와도 깔깔거리며 웃던 날이 많았던, 여인숙에 살고 있었지만 그것이 부끄럽고 불행한 것인지도 모르던 그런 날들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곳에서 대체 밥은 어떻게 해 먹었었는지 도대체 무얼 해 먹기는 한 것인지 도통 기억이 나지도 않고 또 참 궁금해지기도 한다. 함께 있었던 아빠는 이제 더이상 함께 있지 않으니 물어볼 사람도 없고, 그냥 이렇게 살아있는 걸 보니 무언가를 먹긴 먹었을테지.



어느 날, 따뜻했던 어느 날... 


허리에 붕대를 칭칭 동여매고 한 손은 아빠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벽을 짚으며 힘겹게 한 발 한 발 내디딘 날이 있었다. 그 날은 유난히도 화창하고 밝았으며, 동네 아이들 소리가 즐거이 울려퍼지던 그런 평범하고 아름다운 날이었다. 동네 길 가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던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귓가에 쨍쨍히 들어오자 곧 그 아이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하였다.


전 날에, 펄펄 뛰어다니던 불행이 나를 덮쳐왔다. 일 곱살의 나에겐 한 순간의 일이었지만 그 날의 흔적는 생생히 내 몸에 남아 아직 숨쉬고 있다. 사고는 살아있는 채로 자신의 몸을 나에게 내던져버렸다. 그 밤에 어디에서 왔는지 의사와 간호사가 우리 방으로 와서 나를 치료하고 붕대를 감아댔다. 연락을 받고 엄마 역시 그 밤에 헐레벌떡 그 곳으로 왔다. 


어린 나에겐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아팠지만 하룻 밤 지나고 나면 금새 나을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울지도 않고 잠을 쿨쿨 잤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아팠고...아팠고...아팠다. 동여맨 붕대가 숨통을 조여와 걷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한 발짝씩 힘들게 걷던 나에게 고무줄 놀이를 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유난히 눈부셨다. 여인숙에 살던 나에겐 그 당시에 함께 놀 수 있는 친구도 없었다. 


그 즈음, 한 동네에 살고 있던 어떤 아이의 사고 소식도 전해져 왔다. 그에 비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다들 이야기하였다. 그래, 아무 것도 아닐 거야. 하지만,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었다. 그 날의 사고로 인해 그건 나에게 큰 컴플렉스를 가져다 주었고,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해 버렸다. 때론 놀림의 대상이었고, 때론 쑥덕거림의 대상이 되었다. 누군가는 혀를 끌끌 찼고, 또 누군가는 그게 뭐가 대수냐고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다. 아빠도 자신의 폭력에 대해서는 마음 아파한 적 없었지만 그 날의 사고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마음 아파했던 기억이 난다.


따뜻한 여인숙이었는데 내 삶에서 없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그런 곳으로 남아 버렸다. 왜 그런 곳에서 기거해야만 했는지 아직도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어진다. 가난은... 그렇게 흉터를 남긴다. 




그 날의 사고의 흔적은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옅어지고 닳아졌다. 그러나 내 앞에 기억들은 더 또렷해져 온다. 잊으면서 산 줄 알았는데, 전혀 잊히지 않은 채 늘 나를 만나러 온다. 아직도 마음 속엔 소용돌이가 친다. 가끔은 그 소용돌이가 자식을 향할 때도, 남편을 향할 때도 있다. 한번 소용돌이에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힘들어진다. 


내 온 몸은 상처투성이이다. 그래서 내 온 마음도 상처투성이이다. 그 안에 자리잡은 컴플렉스를 없애려고 무던히도 노력하던 지난 날들을 보냈다. 아직도 어린 시절의 몸과 마음은 자라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상처를 끌어안은 채 어른이 되었다.



그 날의 어린 나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떼기가 버거울 때가 있다. 내 안에 온갖 추악하고 나약한 역사들이 때론 나를 집어삼킨다. 나는 가끔 그 앞에서 정신 나간 인간이 되어 울었다, 웃었다를 반복한다. 아름다운 인간이 되어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은 나와는 거리가 멀어진 일인 것처럼. 가끔은 제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 내가 신기하기도 하고 또 가끔은 제정신이 맞는 건가 의심스러워지기도 한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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