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티 플레저
언젠가부터 널리 알려진 표현중에 ‘길티 플레저’가 있다. 일종의 악취미 라고 번역하는 것이 올바르려나.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취미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평소에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나 생활양식과는 꽤 거리가 있는 어떤 특정한 분야에 탐닉하거나 본인이 몸담고 있는 집단의 행동양식과는 잘 맞지 않는 부분에 호감을 가지고 있을 때 주로 쓴다. 이를테면 90년대 저항정신의 상징이었던 펑크 록 밴드 크라잉넛의 기타리스트 이상면은 크레용팝의 열정적인 팬이었다고 한다. ‘팝저씨’라고 불리던 크레용팝의 아저씨팬들 중에서도 굉장히 열정적인 분이셨다는데, <말달리자>를 연주하던 크라잉넛의 기타리스트가 ‘점핑! 점핑! 에브리바디! 점핑! 점핑! 다 같이 뛰어 뛰어!’를 외치는 광경은 뭐랄까 음악은 하나 라는 마이클 잭슨의 메시지를 생각나게 한다.
중학교 1학년 때, 그날도 어김없이 집에 가서 삼국지 조조전을 할 생각에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음반가게가 있었는데, 주인아저씨는 장사에 별로 관심이 없는 양반이었다. 지나가면서 가게 안을 슬쩍 내다보면 그때마다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가게 밖에 설치된 야외용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음악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뭔가 처음 들어보는 음악이었고 에너지가 넘치는 음악이었다. 어서 조조전을 켜서 보물도감을 모을 생각에 들떠있던 나의 시간을 4분이나 뺏어간 음악이었다. 나는 어딘가에 홀린 것처럼 가게 안으로 들어가 지금 나오고 있는 음악을 물어보았다. 물론 잠들어 있는 아저씨를 깨워서 물어보았다. 퉁명스럽게 아저씨가 음악과 가수를 적어주었다. 본 조비의 <It’s My life> 였다. 가게에서 나올 때 내 손에는 테이프가 들려있었다. 집에 돌아와 조조전을 켜는 것도 잊고 본 조비의 <Crush> 앨범을 들었다.
본 조비가 사실은 굉장히 촌스러운 밴드였다는 것을 알 때 즈음(물론 지금도 나는 본 조비를 좋아한다) 나는 조금 ‘있어 보이는’ 밴드와 ‘잘 안 알려진’ 밴드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즈음에 동방신기가 나타났다. 그때 내 눈에 비친 동방신기의 모습을 설명하자면.... 죄송하지만 유치원 아이들이 재롱잔치 하는 걸 방송으로 보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주기적으로 동방신기의 <Catch Me>나 <Something>을 듣는다) 나는 마음껏 우쭐해 하면서 나의 취향에 자부심을 느꼈다.
물론 나의 이 자랑스러운 취향은 군에 입대하면서 깨발살 났다. 그 시절 나에게 유일한 구원은 엘리엇 스미스도, 안토니 앤 더 존슨즈도, 조이 디비전도, 윌코도, 벡도, 수프얀 스티븐스도, 벨벳 언더그라운드도 아니라 소녀시대 뿐이었다. 소녀들이 “지지지지 베이베 베이베 베이베”를 할 때만큼은 당직사관도 우리를 부르지 않았다. 나는 아름다운 소녀들의 무대가 영원하길 바랐지만 3분 20초가 지나면 다시 암흑이었다.
한동안은 내가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그 이전의 나는 아이돌을 음악의 범주에 넣는 것조차 동의하지 않았고 어떤 감동을 느낀 적도 없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음악은 음악이고 취향은 평등한 것이다. 취향은 한 사람이 삶에서 쌓아온 역사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 역사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 타인의 취향과 위계질서를 성립시키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건. 그들이. 내 삶을. 이 세계를. 조금 더 견딜만한 어떤 것의 차원으로 옮겨다 준다는데 있다. 그야말로. 숭고하지 않은가.
※ 결론: 요즘 나의 최애캐는 오마이걸의 효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