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과 차를 운전하여 팔당대교 방향으로 진행 중이었다. 올림픽도로를 지나 양수리 방향으로 가는 길은 수없이 다녀서 눈에 익은 코스였다, 최근 아파트가 들어선 미사지역을 제외하고. 강동대교를 지나면 예전에는 팔당대교 쪽으로 넓은 왕복 2차선 도로였 다. 양양고속도로가 들어서면서 그쪽이 주 진행방향이 되었고 팔당방향은 그 보다 좁아졌다. 그리고 미사지역이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팔당대교 쪽으로는 편도 1차선으로 연결되었다. 사과 농부가 된 후론 예전만큼 다니지 않았지만 좁아진 길로 진입하여서도 여전히 예전의 넓은 길을 기대하며 혼란스러워진 자신을 느끼며 길을 잘못 들어 우회를 하여야 했다. 팔당대교를 진입하기 위해서도 유턴지점 이전에 서울행과 대교행 차선을 잘 보지 않아서 다시 한번 우회를 했다.
늘 다니는 길이 아니니 변화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예전과 다른 점은 눈 앞의 좁아진 길을 보면서 " 아 , 바뀌었구나"라고 느끼는 것외에 '좁아진 길'을 보면서 '옛날엔 넓었는데'라고 생각하며 혼란스러워하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 아 , 이런 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일 수도 있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자신의 주관적인 나이와 객관적인 나이에 대한 개념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개는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기에 더욱 그렇다. 남의나이 67이란 숫자 앞에서는 '나이 좀 먹었네 혹은 낼 모래 70이네'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내 나이 67 앞에서는 매우 어색하다. 타인의 나이에는 너그럽고 내 나이에는 인색하다.
옆에 있던 집사람이 드디어 한마디 했다. " 당신도 정말 예전 같지 않아, 하긴 낼모레 70이니". 즉각 응대를 했다. " 무슨 말씀을.. , 우리 나이 67, 만 65세 9개월인데. 낼 모래 70은 68세는 되어야 하는 말이지." 맞는 말 아닌가? 5 단위 반올림을 적용하면 66, 67과 68,69의 사이에는 엄청 넓은 간격이 있다.
친한 친구들 모임에서 몇십 년 만에 다시 불붙은 당구 게임은 예나 다름없이 우열을 가리기 힘들어 즐겁다. 실력으로 안되면 말로 라도 이긴다. 참 오랜만에 다시 당구장에서 만나기 시작했는데 이도 나이의 공헌이 크다. 어느 휴일 오후 4시에 들어선 당구장은 우리 나이 또래로 20여면의 당구테이블이 빈 곳이 없었다. 그 광경을 보고 매우 놀라고 걱정이 되었다. 젊었을 때 당구장에 우리 같은 젊은 사람들로 꽈 차있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고 걱정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상해하고 걱정하는 것이 비정상이었다.
지하철/전철이 적자라는 신문기사에는 꼭 나온다. 노인 무임승차가 전체 운임의 13% 정도여서 적자가 커지고 있다고. 나는 경북도민이어서 무임승차카드가 없어 매번 1회용 우대권을 이용하는데 그런 방법이 있다는 것도 올해 들어 얼마 전 발견했다. 어쨌건 지하철 내에 나이 든 사람이 많으면 신경이 쓰인다. 한편으론 '지난 60년 서울 살면서 내가 낸 세금이 얼마인데, 바퀴 몇 개는 샀겠다'라는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가뜩이나 적자라는 지하철에 도움 안 되는 승객으론 눈치를 안 볼 수 없다. 승객 중에 동년배가 많으면 걱정되고 당황스럽다.
지하철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지하철에서는 책만 보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아주 예쁜 젊은 처자가 다소곳하게 앉아서 이어폰을 사용하여 바로 앞의 옆자리에 서있는 내게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말투로 가끔씩 미소도 지어가면 통화 중이었다. 여기까진 나무랄 바가 전혀 없었다, 다만 그 앞에 서있는 승객이 대 여섯 살 정도의 어린아이라는 것을 빼고는. 서너 정거장 뒤에 그녀가 내리고 아이는 그 자리에 앉았다.
내 옆에 남자가 서있었고 그 옆에는 젊은 아가씨가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여자 친구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열차가 서고 그 남자의 앞에 앉았던 사람이 내리자 얘기를 하던 아가씨가 친구에게 여기 앉으라고 의자 바닥을 손으로 두드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내 옆의 남자가 자기 앞자리가 비었으니 무시하고 자리에 앉았고 그제야 그가 백발의 노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친구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의자 바닥을 두드리는 대신에 그녀가 일어나서 그 남자에게 자리를 양보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경우였는데 ( 내 견해로는) 친구를 끔찍이 생각하는 그 젊은 처자를 보면서 나는 반성했다. "역시 지하철을 타면 책을 읽어야지 시간낭비를 안 하고 정신건강에도 좋은데..."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 한결같은 듯 그렇게 몇십 년이 흘렀지만 내 안의 강은 거의 흐르지 않았다. 오로지 내 밖의 강물이 폭포처럼 흐르는 것이다. 거울 속의 나는 늘 같은데 몇 개월 만에 보는 주위 사람은 왜 그리 늙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