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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Apr 07. 2019

개구리 울고 벚꽃 피는  이유

1.

추운 이 곳에도 봄이 왔다. 사과 꽃눈의 인편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스치듯 지나가는 봄비에도  두꺼비들은 활동을 시작한다. 논 한편의 조그만 웅덩이에서 알을 낳는라 법석이다. 아직은 봄이라 해도 일기가 불순하여 작년처럼 영하 4-5도가 될 수도 있고 알들이 부화되어 두꺼비 혹은 개구리가 되는 2주 사이에 논에 물을  넣지 않을 수도 있다. 앞으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있다면 두꺼비들은 아직은 땅속에서  더 있다 나왔을 것이다. 어제 그 논에는 주인이 부른 포클레인이 논바닥을 휘저으며 논두렁 보수작업을 하며 말라가는 물웅덩이를 없애버렸다. 앞으로 2주간의 날씨도 모르지만 논 주인의 작업 스케줄은 더욱 알 수 없는 일, 앞날이 어떻든 조건만 맞으면 그들은 일단 임무를 완수한다. 그러나  알을 낳은 두꺼비들은 올해는 다시 기회가 없을 것이다.


어떤 두꺼비 하나가 조물주에게 따졌다, " 다른 두꺼비들은 아직 땅속에 있으면서 조건 좋을 때 나오게 해 놓으시고 왜 나는 빨리 나가게 하셨나요? 물러주세요."

대답은 ' 그것이 네 역할이야, 모든 두꺼비가 다 새끼를 낳아 키우면 두꺼비는 멸종이 된다."

지금은 잘 볼 수 없는 광경이지만 예전에는 교통순경이 신호위 반등의 이유로 길에서 범칙금 스티커를 발부하는 것이 흔했다.  그럴 때 가끔 하는 말은? " 저 앞 차는 안 잡고 왜 나만 잡아요?" 신호위반은 했으되 나만 잡히는 것에 대해 뭔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어찌 보면 그 많은 차들 중에 내가 뽑혔으니 선택받은 것 일 수도 있다. 선택받은 것이 다 좋은 일 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어느 정도 세상 살면 알았어야 했다.  일찍 나오도록 선택받은 두꺼비들도 뭔가 억울하겠지만 어쩌겠는가? 강밭을 오가며 일찍 나온 두꺼비들의 열창과 분주함이 물거품이 되는 것을 보면서 한 치 앞도 모르면서 할 일을 걱정하는 내 얼굴을 보았다.


2.

일본 친구들이 잘한 것 중에 하나가 벚나무를 국화로 한 것이다. 원산지가 제주도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무궁화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배가 좀 아프다. 원산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어 국제적으로 공인된 곳은 아직 없다고 한다. 꽃을 꽃으로 보면 꽃에 원산지가 나타나지 않으니 원산지가 의미 없는 논쟁일 수도 있다.  다만 피우기 전에 꽃망울의 색이 번져나와 밝은 갈색의 나무 색과 어울려 있는 모습도 예쁘고, 피었을 때 그 화사함, 그리고 바람에 날리는 꽃잎까지 피기 전부터 질 때까지 흠잡을 데가 없는 꽃이어서 남 주기가 아까울 뿐이다. 올해는 벚꽃 구경 많이 한다. 김대령 덕에 울진 망양정 근처의 벚꽃을 보았다. 울진의 벚꽃 개화시기가 진해보다 하루나 이틀 정도 빠르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리고  서울 집에 가서 탄천변의 개나리와 벚꽃의 앙상블을 보았다. 어제는 영주시내의 가로수 벚나무가 절정의 상태를 자랑하고 있는 풍경도 보았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 과원 주변의 벚나무들은 신중하다.  오늘부터 꽃망울들이 본격적으로 부풀기 시작했다. 어제의 상태보다 두어 배 이상 꽃망울이 커졌다. 원래는 나무 크기가 현재보다 두세배 컸었기에 꽃이 피면 정말  풍성했는데 사과나무에 그늘을 지게 하여 오는 사람마다 없애라고 했다. 과원을 하는 입장에서 나무를 없애는 것에 일말의 부담감도 있고 전 소유주의 안주인처럼 나도 벚꽃이 좋아 축소하는 것으로 타협하였다.


그러나 나무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빨리 자란다. 혹은 시간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빨리 가는지고 모르겠다. 어쨌거나 벚나무는 다시 위험수위 수준으로 진입하고 있다. 농사를 지으면서 알게 된 진리 중에 하나는 나무를 심을 때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생각보다 훨씬 빨리 자라기 때문에 (혹은 심어 놓고 신경을 안 쓰기 때문에 ) 어느 날 큰 나무를 앞에 놓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일이 먼 훗날의 일이 아니다. 선택받아 심어졌고 철마다 예쁜 꽃을 보여주었지만 반토막이 날 수도 있고 뿌리째 뽑힐 수도 있다. 나무를 심을 때는  지금은 조그마한 묘목이지만 앞으로 10년 20년 이면 주위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큰 나무가 된다는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한 일이다. 화단에서 일, 이년만에 사라지는 꽃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 과원 주위의 벚나무는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듯  보이는데 저들의 운명은 타인인 내가 정한다.  그 운명이 어찌 되었건 조건이 맞으면 알을 낳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은 그들이 사는 이유이고 존재의 의미 그 자체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또 자신에게도 "열심이"하는 것보다는 "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파했었는데 존재의 의미가 "잘 하는" 것에 있기 보다는 내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혹은 열심히 하는 것 일수도 있다, 이는 잘 하면 잘하는대로 못하면 못하는대로 결과는 의미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

의미, 나에게 혹은 타인에게 혹은 세상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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