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에게는 지극히 사적인 일상이 두 가지 존재한다.
첫 번째는 유 차장 또는 유 팀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사회적인 일상과, 두 번째는 어쩌면 백수가 체질인 개인적인 일상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나는 라이프스타일 필드에서 다양한 카테고리의 직무를 맡아 왔다. 연차가 쌓여 갈수록 이상적인 라이프 ‘스타일' 보다는 현실의 '라이프'에 더 관심을 갖게 되면서 지극히 사적인 두 가지의 일상 중 어쩌면 백수가 체질인 개인적인 일상이 커져버렸다.
최근 5년 사이 두 번의 퇴사를 했다.
두 회사 모두 퇴사 사유는 같았다. 일만 하기에도 손과 발이 부족했건만 정치질을 위해 부족한 손과 발 그리고 머리까지 써야 하는 시간을 나는 견디지 못했다. 더욱이 내가 줄을 잘서야 팀원과 동료를 지킬 수 있으니 정치질에 대한 책임감은 너무 무거웠다.
퇴사를 후회한 적? 있다. 몇 해전 첫 번째 퇴사를 할 때였다. 결정은 후회하지 않았지만 좀 더 슬기로운 백수를 준비하며 묵은 때를 털고 나오지 못한 게 후회됐다. 퇴사 당시 마음의 준비할 겨를 없이 난 이미 몸과 마음의 게이지가 바닥난 상태였다. 바닥난 게이지는 충전을 이유로 시간이 필요했고, 어느 순간 게으름과 나태함이 휴식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했다. 게으름을 여유로운 시간이란 착각에 나는 일상의 목적성을 잃었다.
그일을 계기로 몇 달 전 퇴사는 조금은 슬기로운 백수 준비를 했다. 퇴사 후 나는 바로 제주도로 갔다. 제주에는 여러모로 나의 최고 파트너인 언니가 머물고 있어서 몇 해전부터 제주의 이곳저곳 우리만의 스폿을 지도에 그려왔다. 제주도에서 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 재료는 충분했다. 아, 제주도.
현재 나는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며 자발적 유휴인으로 살고 있다.
접어 뒀던 드로잉 작업을 다시 시작하고 좋아하는 식물들을 돌본다. 해가 비추는 창문에서 기분 좋은 광합성을 하고, 장이 서는 날엔 장바구니 가방을 들고나가 싱싱한 제철 야채 과일을 한 아름 사 온다.
재밌는 건 사회 경력이 꽤나 찼지만 경제관념은 제로였던 내가 통장이 점점 얇아지니 되려 경제관념이 생겼다. 스스로 학습인 건가.
종종 헤드헌터들의 입사 제안을 받기도 하지만 아직은 유휴인으로 지내고 싶다.
물론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사회 속에서 유 차장 또는 유 팀장의 직함으로 또 다시 불릴 수 있겠지만, 지금은 직함 따위 없이 내 템포에 맞춘 나의 라이프스타일 무드를 즐길테다.
Please, don’t kill my v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