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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남자들에게 "연상"

[Essay] 상상과 현실 사이에서 꾸는 꿈

by 한은

[17] 따뜻한 책임


살아왔던 환경과 완전히 다른 모습, 그리고 사람들을 세상 모든 20살이 경험하게 된다. 선배들을 가장 먼저 만나기 때문에 선배들과 붙어 다니는 경우도 많다. 당시 학과에서 09학번 선배들의 이유 모를 군기들이 연구실 생활에 큰 어려움을 내게 주기도 했었다. 내가 학부 연구생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12, 13학번 선배들이 있었는데 그 선배들이 아니었다면 학교를 빠르게 자퇴했을 것이다. 한 학기를 마치며 이제 조금 연구실 생활이 익숙해진 20살에게 험한 말과 부당한 일을 시킬 때면 12, 13학번 선배들이 나를 막아주었고, 도와주었다. 그래도 나는 이것도 내가 가져야 하는 통과의례라며 나름의 열정을 가지고 내 스타트업과 과외, 연구실 생활을 이어갔다.


13학번 선배 중에 K남선배, L여선배가 있는데 부당한 일을 당하면 왜 가만히 있냐며 나를 종종 혼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눈물 한번 없던 내가 갑자기 서러워서 눈물을 흘리며 나의 상황과 환경들을 모두 이야기를 했을 때 두 선배는 등을 토닥이면서 한 사람씩 나를 안아주었다. 그런 따뜻한 품은 처음 경험했다. 누군가 나의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과 책임을 진다는 것에 깊은 뜻을 알게 되면서 그 품에서 그동안의 모든 서러움들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후로 K, L선배와 형, 누나로 부르며 대학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나는 K형, L누나뿐만 아니라 학번 동기 형, 누나들 덕분에 내가 가장 "나" 다운 모습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나"를 잃을 만큼 어려워지거나 힘들어질 때쯤 항상 나를 먹여주고, 도와주었다.


형, 누나라고 부르다가 꽤 친해지면서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나도 돈이 한참 모이던 때였기 때문에 그동안 받아왔던 도움을 갚기 위해 맛집을 가거나, 같이 예쁜 곳을 가며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내가 카드를 내밀 때면 다들 환호하는 게 나름 재미있긴 했었다.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었던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따뜻할 수 없었던 내가 함께 따뜻해지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을 겪게 되면 추억이 된다. 반대로, 가장 쉽고 적당한 일을 겪게 되면 쉽게 잊어버리는 순간이 된다. 나에게 가장 어렵고, 힘든 대학 생활 속에서 어렵지 않고, 힘들지 않다며 나에게 와준 사람들 덕분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재미있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방법이 아닌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즐거워하는 가장 "나"다운 모습을 배우는 1학년 2학기의 낭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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