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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매트릭스의 현실 시작

[Essay] 상상과 현실 사이에서 꾸는 꿈

by 한은

[15] 오만과 책임


큰 세상 속에 나의 작음을 보게 되니 큰 영향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스타트업과 연구실 라이프와 과외, 그리고 알바들이었다. 생존을 위한 용돈벌이로 많은 것을 했지만 돈을 벌 수 있는 만큼의 개인적인 능력을 만들고 싶었고, 20살인데 고생을 해도 된다는 나름의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선교를 다녀오고 남아있는 방학기간 동안 밀린 업무들도 처리하느라 정신 없었지만 내가 자리 잡고있는 공학 분야에서 나름의 경력과 커리어도 준비해보겠다며 대학병원 연구실 인턴까지 신청하며 허드렛일까지도 머뭇거리지 않고 했다. 하지만 열정이라 하더라도 너무 많이 잡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많은 일을 동시에 하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고, 그런 정신적 체력도 없었던 것이 나의 오만이었다.


할줄 아는 것이 많은 것은 감사했지만 항상 피곤에 절여져 있어서 맡은 업무를 더 빠르게 끝내지 못했다. 가끔은 졸기도 하면서 빨리 끝낼 수 있었던 일들도 늦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구실에서 기구들을 많이 깨뜨리거나 폭발 위험성이 있는 액체 폐기물들을 대충 버렸다가 큰일 날뻔 하기도 했다. 1학년 2학기를 준비하는 방학기간 동안 혼나기만 했다. 고향으로 내려가야 하는 시간조차 없었기 때문에 이 모든 감정과 어려움들을 내가 직접 받아내야만 했다. 학창시절부터 나를 외롭게 만드는 상황들이 너무 많아서 대학가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 그런 감정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지만 똑같이 외로웠다.

시간이 약이었을까? 실수를 많이 하고, 외로움을 더 많이 느끼면 느낄수록 나의 잘못된 판단에 무덤덤해지는 것이 아닌 나의 감정과 잘못된 판단들을 하지 않는 유연함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천천히 생각해보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솔직히 혼나기 싫고, 외로운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힘을 빼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다. 그래서 혼은 나고 있지만 자세히 듣게 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제야 실수가 줄어들고 쓸모 없는 감정 소모를 하지 않게 되었다. 이 유연함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생존하기 위해 너무 붙잡고 있었던 알바들을 조금씩 줄여가기 시작했다. 알바를 하나씩 줄이니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 생기면서 생각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생각이 맑아지니 나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잘 돌아보게 되었다.


현실을 더 잘챙겨야 한다. 내가 미래에 무언가를 준비한다고 급하게 이것 저것 준비했다가 소중한 사람, 소중한 건강, 소중한 시간이 무의미하게 사용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너무 현실에 급급해서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그 현실 속에만 갇혀있게 되는 아이러니함을 20살에 배우게 되었다. 분명 매트릭스에서 나온 것 같은데 현실을 살아보니 매트릭스 속이 더 좋았다고 말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 그것만큼 불쌍한 모습은 이 세상에 없다. 현실을 받아드려야 한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꿈을 꾸어야 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전문가가 되고 싶은 꿈과 영향을 나타내고 싶었던 꿈이 있었다. 그 꿈이 매트릭스보다 현실이 그래도 좋더라 말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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